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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말부터 오늘(9일)까지 열흘이 넘도록 단 하루도 35℃ 아래로 내려간 적이 없는, 가마솥더위의 진수를 보여주고 있는 대구. 밤에도 늘 25℃를 웃돌며 대기록을 세우며 시민들을 잠 못 들게 하는 '열대야'의 도시 대구.

하지만 이런 대구에서 태어난 나는 이미 어릴 때부터 더위를 이기는 적자생존(適者生存)의 법칙을 깨닫고 자연스럽게 무더위를 이기는 체질을 만들어 온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이 내가 대구에 산다고 하면, "그렇게 더운 곳에서 어떻게 사느냐?"고 이구동성으로 말하지만 이런 대구에도 나름의 좋은 점이 있다. 다른 도시 사람들이 덥다고 엄살(?)을 부릴 때 '이쯤이야'하는 쾌감을 느낄 수 있다는 것. 그래서인지 나는 아직도 에어컨 바람에 익숙하지 않다.

선풍기 체질의 남편과 에어컨 체질의 아내

▲ 에어컨 체질인 아내와 딸이 찜통 대구에서 어떻게 적응할지 걱정스럽다.
ⓒ 전득렬
우리 집에는 에어컨이 없다. '더워 죽겠다'는 아내의 아우성에도 나는 에어컨 살 생각을 한 번도 해보지 않았다. 몇 해 전 100년만의 무더위가 찾아온다고 난리법석을 떨 때도 흔들리지 않았다. 30년 넘게 대구에서 '무더위'와 부대끼며 살았기 때문이기도 하겠거니와, 무더위를 잠재운다는 '에어컨'의 위력을 실감하지 못한 탓도 있을 터.

이런 나와 달리, 부산과 30분 거리에 있는 '그다지' 덥지 않은 경남 김해에서 자란 아내는 대구의 이 '찜통더위'에 적응하지 못해 적잖이 고생하고 있다. '에어컨 체질'의 아내는 더운 바람만 나오는 선풍기가 신통치 않다며 불만이다.

특히 빌라의 맨 꼭대기 층인 4층에 자리 잡고 있는 우리집은 여름이면 불을 땐 것처럼 방바닥까지 뜨끈뜨끈해져 '찜질방'을 방불케 한다. 김해에 있을 때만 해도 웬만한 더위엔 땀도 흘리지 않았다는 아내건만, 대구의 더위는 못 당하겠는지 여름이면 늘 힘없이 늘어지곤 한다. 수의사인 아내는 차라리 동물병원에 출근하는 것이 행복하다고.

더위 때문에 힘들어하던 아내의 표정이 밝아질 때는 2주에 한 번씩 김해 처가에 갈 때다. 조금만 더워도 에어컨을 켜는 장인어른의 영향 탓인지 처가에선 늘 에어컨을 끼고 산다. 그런 환경에서 자란 터라 아내는 자연히 에어컨 체질이 된 것 같다. 선풍기 체질인 나와는 살과 맞닿는 공기의 온도마저 다르게 느끼는 듯하다.

어린시절, '등목' 하나로도 시원했건만...

▲ 에어컨과 샤워에 익숙한 딸은 아직 무더위가 무엇인지 모른다.
ⓒ 전득렬
문제는 처가에 있는 딸 '예은'이다. 언젠가는 대구로 와야 할 3살 난 딸 예은이는 벌써 에어컨에 길들여져 '에어컨 체질'로 자라고 있다. 예은이는 아마 엄마처럼 에어컨 체질로 길러질 것이다. 그래서 염려스럽다. 좀 더 자라서 대구로 오면 이 무더위를 견딜 수 있을까?

내가 초등학교에 다니던 70년대 후반엔 '샤워'란 단어는 생소한 것이었다. 아파트도 드물었던 시절, 일반 주택에 샤워시설이 완벽하게 갖추어져 있을 리 만무했다. 학교에서 땀을 뻘뻘 흘리고 돌아오면 할머니는 마당 수돗가로 나를 데리고 가셨다. 할머니는 내가 웃옷을 벗고 엎드리면 얼음장 같은 물로 '등목'을 해주셨다. 할머니가 허리에서 목덜미까지 쏟아붓는 그 '물'은 어찌나 차갑고 시원하던지 오히려 싫다며 도망간 적도 있었다.

샤워가 일반화 된 요즘, 하지만 난 아직도 간편한 등목이 그립다. 등목을 하고 나면 허리춤의 바지까지 물이 들어가서 옷이 축축해지기도 했지만 등목을 하는데 채 5분도 걸리지 않아 간편했기 때문이다. 그때는 그것이 여름을 이기는, 최고로 시원한 방법이었던 것 같다.

에어컨 바람과 선풍기 바람은 실내에서나 만날 수 있는 바람이다. 때문에 밖으로 나가면 누구나 덥든 시원하든 자연의 바람과 만나야 한다. '찜통더위'로 유명한 대구에도 시원한 바람이 부는 곳이 있다.

다리 밑과 빌딩 숲의 그늘이 '피서지'

▲ 다리 밑은 무더위를 피하고 휴식을 취할 수 있는 훌륭한 피서지로 꼽힌다.
ⓒ 전득렬
대구에서 가장 시원한 곳은 수성구 상동에서 북구 침산동까지 16km에 이르는 '신천'이다. 금호강으로 이어지는 신천에는 12개의 다리가 있고 6개의 대형 분수가 있다. 여름이면 이곳 신천 다리 아래는 시원한 바람을 찾는 사람들로 꽉 차 앉을 자리가 없을 정도다. 다리 아래 기온이 다리 위와 5℃ 이상 차이가 나기 때문에 더위를 피하기엔 '안성맞춤'.

▲ 이열치열, 운동으로 여름을 나고 있다는 서영배씨.
ⓒ 전득렬
또 신천 다리 아래엔 시원하게 물을 뿜어내는 분수도 있다. 이 분수도 대구 시민들에게 시원함을 안겨주는 데 한몫 한다. 한 때 신천은 악취를 풍겨 '죽음의 하천'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하지만 '신천을 되살리자'는 운동을 벌여 물이 정화됐고 산책로도 만들어졌다. 그 후 깨끗해진 신천은 다시 시민들의 품으로 돌아왔다.

주말이면 항상 이곳을 찾아 조깅을 한다는 서영배(38·대구 수성구)씨는 "(신천을 달릴 때는)집 부근 아스팔트 위를 달릴 때와 확연히 다른 느낌을 받는다"며 "이열치열로 땀 흘리며 운동한 뒤에 만끽하는 시원함과 상쾌함이 여름나기의 비결"이라고 귀띔했다.

사실 대구시는 '찜통대구'라는 이름에서 탈피하기 위해 여러 가지 노력을 해왔다. 그 중 하나가 1천만 그루 나무심기인데, 지난 6월말 경 10년만에 그 목표를 달성했다고.

김진원 대구시청 환경녹지국 계장은 "나무그늘을 많이 만들어 시원한 대구 만들기에 힘을 쏟고 있다"며 "30년 전에는 대구에 나무가 거의 없었다"고 말했다. 이어 이 계장은 "도시개발에 밀려 녹지가 다소 줄어들었지만 나무심기를 계속해야 찜통 속의 대구를 구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에어컨에 너무 의존 말고 여름을 즐겨보자!

▲ 대구시는 분수대 설치와 나무심기로 대구의 온도를 낮추려고 노력하고 있다.
ⓒ 전득렬
▲ 나무 숲 속과 빌딩 숲 속의 그늘은 대구 시민들의 휴식처다.
ⓒ 전득렬
이런 노력 때문일까? 예전과 다르게 대구에서도 자리만 잘 잡으면 시원한 바람을 만날 수 있다. 대구 수성구 상동에 위치한 옛 대동은행 빌딩 출입구 앞은 밤이 되면 주민들의 휴식처로 변한다. 대로변 사거리인지라 차들이 '쌩쌩' 달려 낭만은 없지만 바람만큼은 시원하다.

입구가 대리석 바닥으로 되어 있어 겨울에는 뜨끈뜨끈하고, 여름에는 시원하다. '돌침대(?)' 역할을 하기 때문에 돗자리만 깔면 어떤 잠자리도 부럽지 않다. 때문에 열대야로 잠 못 이루는 주민들이 아이들과 함께 나와 이곳에서 휴식을 취하고 잠도 청한다.

이곳에 매일 나온다는 김아무개 할머니(68)는 "옛날에도 대구는 무척 더웠지만 에어컨 없이도 잘 견뎠다"며 "동네 구석구석을 잘 살펴보면 시원한 바람이 나오는 곳이 틀림없이 있다"면서 명당들을 일러 주었다. 대구에서 한평생 살아 더위가 체질화되어 있다는 할머니는 웬만큼 더워서는 이곳에 잘 나오지 않는다고.

'찜통더위' 속에서 살고 있는 대구 사람들. 하지만 이들에게도 특출난 '여름나기' 비법은 없었다. 있다면 날씨에 적응하고 시원한 바람을 찾아다니는 것이 전부. 예년에 비해 날씨가 많이 더워진 것은 사실이지만, 그래도 사계절 중 하나인 '여름'을 있는 그대로, 에어컨 바람에 너무 의존하지 말고 즐기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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