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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에 그 물보라 속에서 새하얀 검날이 백색의 섬광을 뿜으며 솟구쳐 올라 승교 밑을 파고 들어갔다.

빠지직--- 츄---아--

너무나 갑작스럽고 빠른 기습에 승교를 메고 있던 자들뿐 아니라 그 주위에 늘어서 있던 호위 인원들도 대응할 수 없었다. 승교에 늘어져있던 천들도 일제히 휘말려 올라가며 승교의 뚜껑까지 부서져 버렸다. 승교 뚜껑의 잔해가 사방으로 튀고 있었다.

“악…!”

비명소리가 울렸다. 그것은 승교에 탔던 인물이 반드시 죽었으리라 생각했던 주위 사람들의 예상을 뒤엎는 여자의 비명 소리여서 오히려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이어 승교의 천과 기둥이랄 만한 것들이 부서져 내리자 승교 안의 모습이 일목요연하게 들어왔다.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검날은 승교 안에 타고 있던 환관의 가랑이 사이를 타고 올라 그의 턱밑까지 치솟아 올라 있었지만 그에게 아무런 상처를 주지 못했다. 오히려 그 검을 쥔 자의 머리는 승교의 바닥을 뚫고 올라온 듯 보였는데 이미 승교를 탄 환관의 흰 손이 올려져 있었다.

기습을 한 자는 여자였다. 몸에 착 달라붙는 경장차림이었는데 물에 젖어 착 달라붙어 있는 바람에 여인의 몸매가 선연하게 나타나 있었다. 허나 입가에 선혈이 흐르고 있는 것으로 보아 이미 즉사한 것 같았다.

모든 것이 정지된 듯한 찰나의 시간이 지났다. 너무나 일순간에 일어난 일이어서 정신을 차리지 못한 가운데에서도 환관의 얼굴은 변함이 없어 보였다.

“태감(太監)께 죽을 죄를 졌습니다. 소관이 무능하여 이런 불상사가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서당두는 급히 말에서 내려 승교 앞에 부복했다. 그의 얼굴은 하얗게 질려 있어 그가 얼마나 두려워하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하기야 이런 일을 미연에 방비하지 못했다는 것은 호위를 맡은 인물로서는 책임을 다하지 못한 결과였다. 죽음을 내린다 해도 변명하지 못할 일이었다.

“괜찮아.”

그런데 뜻밖이었다. 오히려 승교에 앉아있는 환관은 미소를 띠는 듯 했다. 그리고는 손을 지그시 누르자 머리만 올라 있었던 여인이 검날과 함께 바닥 아래 물로 떨어져 내렸다.

풍---덩---!

그녀의 몸은 그녀가 솟구쳐 올랐던 부교의 구멍 아래 물속으로 처박히며 잠시 떠올랐다가 다시 물속으로 잠기고 있었다. 억울함과 경악의 빛을 띠운 그녀의 눈빛이 유독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다.

“간악한 동림당(東林黨)의 하수인인 게지.”

호위하는 자들이 사색이 되어 있음에도 정작 환관은 오히려 아무 일도 아닌 모양이었다. 또한 그런 일을 예전에도 수차례나 당한 적이 있는 듯 별로 개의치 않은 기색이었다.

“가세.”

이미 뚜껑은 날아가고 기둥 역시 부러져 내려 한개 만이 덜렁 남아 있는 가운데서도 그는 여전히 승교에 앉아 가기를 재촉했다. 서당두가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앞으로 나섰다. 자신이 타고 온 말 고삐는 이미 그곳에 있었던 사내가 쥐고 있다가 그가 다가가자 고삐를 내밀었다.

“아니네. 자네가 끌고 가. 본관은 걸어서 가겠네.”

그 사내를 보는 눈은 영 껄끄러웠지만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그렇다고 죽었다 살아난 그의 입장에서 이 자를 두고 왈가왈부할 수 없는 노릇. 더 이상 지체하는 것도 안 될 일이었다. 일행은 조심스럽게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고, 사내는 자신을 막은 선원들에게 어깨를 으쓱하고는 서당두의 뒤를 따랐다.

승교가 배 위로 오르자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던 해룡신 위일천이 정중하게 포권을 취했다.

“소인 위일천이 신태감(申太監)을 뵈오이다. 자칫 불상사에 얼마나 놀라셨소이까?”

위일천은 이미 나이 오십. 물에서 자라 물길을 헤치고 성장한 그이기 때문인지 기골이 장대했다. 옷 안으로 감추어진 어깨는 마치 역사(力士)의 그것처럼 둥글게 부풀려져 있었다. 짧은 수염은 빳빳하여 구레나룻부터 턱 밑을 덮고 있었고, 바람에 성긴 머리는 목잠을 꽂아도 고정되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의 인사를 받고 나서야 신태감은 승교에서 내렸다. 아주 가벼운 몸놀림이 예사로 보이지 않았고, 부드러움이 마치 여자의 몸놀림과 같았다. 그는 내리자마자 튀지도 않은 물방울을 털어내려는 듯 늘어진 옷자락을 털어냈다.

“난 이래서 배가 싫어. 위공은 빨리 몰도록 해.”

“알겠소이다. 이리 드시길.”

위일천이 아무리 호걸남아라 해도 황제를 허수아비로 세우고 모든 권력을 쥐고 있는 위충현의 절대적인 신임을 받고 있으며, 지부대인(知府大人) 정도는 한 순간에 파직시킬 수 있는 권력을 가진 신태감에게 하대를 받는다 해도 이상할 것은 하등 없었다. 오히려 이 정도인 것이 다행이었다. 알려진 대로 까탈스럽게 군다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낭패를 당할 터였다.

신태감의 뒤를 서당두가 따르자 부교에서 실랑이를 벌인 사내 역시 은근한 미소를 지으며 뒤를 따랐다. 부교가 걷히는 소리가 들리고 신태감이 선실 쪽으로 들어가자 서당두의 뒤를 따르던 사내가 의식적인지, 무의식적인지 모르지만 그들을 바라보고 있던 풍철한 일행을 보고 웃는 듯 했다.

풍철한 역시 씨익 웃는 듯 했다. 하지만 서당두란 자는 이 배에 올라타 있는 인물을 볼 여가가 없었던 것 같았다. 그는 은연중 불안해 보였고, 갑작스런 기습과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던 사내로 인하여 당혹스러워 했기 때문이었다.

설중행은 서당두가 선실로 들어갈 때까지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는 이를 악물고 기이한 미소를 짓고 있었는데 암울해 보이는 그의 두 눈에서는 언뜻 노기가 비치기도 하였다. 그는 지금 끓어오르는 노기를 가라앉히느라 속으로 무진 애를 쓰고 있었다. 바로 이 배 위에서 자신이 반드시 복수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던 서당두 - 바로 서교민(徐敎民)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는 금세 시선을 돌려 서호의 물을 바라보았다.

‘다시는 돌아 올 일이 없다고 생각했던 운중보에…, 십이 년 만인가?’

그는 이 미친 인간 - 광검 풍철한과 일행이 된 것에 대해 처음으로 감사한 마음을 가졌다. 어쨌든 이를 갈았던 서교민이 이곳에 있었다. 그 자가 있으니 일이 왜 그렇게 되었는지 반드시 알아보아야 했다. 그리고 동료들의 죽음에 대한 대가를 반드시 치러 주어야 했다.

그는 서호의 찰랑이는 물결을 보면서 내심 탄식을 터트렸다. 삶이란 정말 알 수 없는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곳을 떠날 때는 절대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 맹세했는데….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어처구니없게도 풍철한에게 도움을 받고는 우연하게 그의 일행에 끼어 다시 돌아온 것이다.

십 이년이란 세월이 흘렀고, 약간 살이 쪄 통통하고 느긋했던 어릴 적 모습은 전혀 찾아 볼 수 없이 비쩍 마르고, 분위기도 날이 선 듯 강퍅하게 변해 완연하게 달라졌으니 사실 자신을 알아 볼 사람도 없을 테지만 그가 가진 감회는 남들과 달랐다.

하지만 이렇게 우연한 일이 누군가가 의도한 일이었다면 그것은 너무나 무서운 일이었다. 더구나 그 사실을 아직까지 아무도 모르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무서운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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