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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왈종 <여정의 학포> 종이에 수묵  35 cm x 45 cm  1995 년
이왈종 <여정의 학포> 종이에 수묵 35 cm x 45 cm 1995 년 ⓒ 이충렬
바다가 시원한지, 붓질이 시원한지, 서귀포 앞바다에 있는 작은 바위섬 사이를 흐르는 바닷물을 붓 가는대로 자유롭게 그린 작품입니다.

1995년에 그렸으니, 화가가 "온갖 욕망과 집착으로 부터 벗어나기 위해", 그리고 "맑은 마음으로 창작에 임하기 위해" 서울에서의 대학교수직을 버리고 가장 먼 제주도로 스스로 '유배'를 떠난 지 5년째 되던 해입니다.

해변마을에 칩거하면서 마음을 다스리며 새로운 세계를 모색할 때의 작품답게, 자유분방하면서도 시원하게 바다물결을 그렸습니다.

이왈종 화백은 당시 자신의 삶과 작품활동에 대해 <월간미술>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작품 이외의 어떤 구속도 받지 않고 자유롭게 지낼 수 있다는 것이 고난의 삶을 살아가는 어부들의 삶에 비하면 얼마나 호사스러운 일인가" "욕심을 버려야 한다. 집착을 끊어야 좋은 작품을 그릴 수 있다."

결국 그는 치열한 자신과의 싸움을 통해 '서귀포 중도' 연작을 탄생시켰고,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받고 인정받는 화가 중의 한명이 되었습니다.

홍성철 <칠보산 폭포> 캔버스에 유채 50 cm x 40 cm 1991년
홍성철 <칠보산 폭포> 캔버스에 유채 50 cm x 40 cm 1991년 ⓒ 이충렬
북한의 대표화가 중의 한명이었던 고 홍성철 화백이 그린 시원한 폭포 그림입니다. 층암절벽을 따라 떨어지는 물줄기 소리가 우렁차게 들리는 듯 하고, 폭포 아래로 뛰어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소의 물이 맑습니다.

함경북도 팔경 중의 하나이자 북한의 대표적 폭포인 칠보산 폭포의 실경을 그린 작품으로, 제가 1991년 북한을 방문했을 때 화가에게서 직접 받았으니 가품은 아닐 것 같아 소개합니다.

홍성철 화백은 1928년 함경북도 회령에서 태어나 평양미술대학을 졸업한 후 만수대창작사에서 '인민예술가'로 활동하면서, 1985년 국가전람회에서 1등상, 1991년 남북코리아 전람회에 '금강산 총석정'을 출품하기도 했습니다.

배운성 <바닷가의 소나무> 35 cm x 45 cm 종이에 수묵채색 1958 년
배운성 <바닷가의 소나무> 35 cm x 45 cm 종이에 수묵채색 1958 년 ⓒ 이충렬
위의 이왈종 화백 작품처럼 해변 앞에 조그만 바위섬이 보입니다. 아무도 없는 한적한 바닷가, 바다 바람에 휘어진 소나무에 등을 기대고 앉아 세상 시름을 다 던져버리고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작품입니다.

배운성 화백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일찍 유럽으로 미술유학을 떠난 걸로 알려지고 있는 이종우 화백보다 더 빠른 1922년 독일의 레벤후켄 미술학교에서 1년 수학 후, 1925년부터 베를린 미술학교에서 본격적인 미술수업을 받은 '유럽 유학 1호'화가입니다.

재학시절 프랑스의 살롱 도튼느 입선을 시작으로 1933년 바르샤바 국제미술전람회에서 1등상 등 유럽의 여러 나라에서 수많은 상을 수상하였고, 독일에서 프랑스로 거주지를 옮긴 후인 1939년에는 파리의 살롱 드 라 소시에떼 내셔날 데 보자르의 장식미술부 회원으로 추천되었습니다.

그러나 2차 대전으로 프랑스에 전운이 감돌자 귀국하였고, 해방 후 국전 1회 심사위원, 홍익대학교 미술학부 초대 학과장등 화가로서 탄탄한 입지를 굳혔지만, 6.25 동란 중 좌익 활동을 하던 부인 이정수와 함께 북으로 갔습니다.

배운성 유족들의 기록에 의하면 위의 그림은 그가 평양미술대학에서 퇴임한 후 국립미술출판사 소속화가 시절이던 1958년 작품입니다.

유럽과 남한에서의 화려한 명성을 뒤로한 채, 노구를 이끌고 이곳저곳을 다니며 출판물 삽화를 그릴 때의 작품이라서인지, 전성기 시절의 그림 실력 대신 쓸쓸함이 가득합니다.

이호신 <무위사의 봄> 27 cm x 41 cm 종이에 수묵채색 1999 년
이호신 <무위사의 봄> 27 cm x 41 cm 종이에 수묵채색 1999 년 ⓒ 이충렬
강진 월출산 아래 있는 무위사의 극락보전입니다. 세상의 시끄러운 소음을 뒤로하고 고즈넉한 산사에서 조용히 더위를 식히는 것도 피서의 한 방법인 것 같습니다.

월출산 산기슭를 헤치며 내려오는 바람소리와, 계곡을 굽이쳐 흐르는 물줄기 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무위사.

유홍준 현 문화재청장이 답사를 다니던 시절 남도 답사의 첫 번째 기착지였고, 그는 이 극락보전 앞에 서면 "너도 인생을 가꾸려면 내 모습처럼 되어 보렴"이라는 조용한 충언이 들리는 것 같다고 했습니다.

극락보전은 세종 12년인 1430년에 지어진 건물로, 자연석 주춧돌에 배흘림기둥으로 세웠고, 맞배지붕에 겹처마를 한 조선초기의 대표적 건물이라 국보 13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김준권 <산 - 2> 58.5 cm x 39 cm 수묵목판 2004 년
김준권 <산 - 2> 58.5 cm x 39 cm 수묵목판 2004 년 ⓒ 이충렬
굽이굽이 어어지는 산등성이와 그 사이를 날아가는 한무리의 새떼들…. 산골짜기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이 등줄기의 땀을 식혀주는 듯한 기분이 드는 작품입니다.

이 작품은 김준권 화백이 올 3월에 열렸던 '목인천강지곡'전에 출품한 목판화로, 실제의 풍경을 형상화한 진경산수가 아닌 화가의 상상력에 의해 창조된 "이미지 산수"입니다.

"아무리 험한 산도 결국에는 선이다. 선은 이른 새벽이나 어둠이 지기 직전에 보인다. 음과 양이 찰나적으로 교차되는 시점의 선의 이미지를 구성적으로 표현하고, 검은 선이 주는 의미를 극대화하기 위하여 아래의 검은색 부분을 네 번이나 먹으로 찍었다."
- 8월 10일, 화가와의 인터뷰에서.


노을이 없으면서도 노을이 보이는 듯한 작품. 미명의 어스름을 걷어내는 새벽 햇살이 없으면서도 맑은 새벽 공기가 느껴지는 작품. 진경이 아닌 듯하면서도 진경인 듯한 작품이기에 시원한 바람소리가 들려오는 듯합니다.

그러나 피서를 못 간 사람들만 찜통더위와 싸우겠습니까? 바닷가에 살면서도 바닷물에 한번 못 들어간 채, 횟집에서 손님들 시중에 여념이 없는 '섬에 사는 여인'을 소개하며 오늘의 이야기를 마칩니다.

사석원 <섬에 사는 여인> 47.5 cm x 65.5 cm 한지에 수묵채색 2000 년
사석원 <섬에 사는 여인> 47.5 cm x 65.5 cm 한지에 수묵채색 2000 년 ⓒ 이충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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