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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중근씨가 다친 순간 사진은 왜 없을까?

▲ 16일 경찰이 강제 진압 직전 집회 모습

지난 7월 16일 오후 2시쯤, 기자가 포항 형산로타리에 도착했을 때,이미 민주노총 건설산업노조연맹이 주최한 '공권력 규탄대회'가 진행되고 있었다.

집회에 도착마자마자 단병호 민주노동당 의원 일행이 연설을 마치고 포스코 본사를 점거 중인 포항건설노조 집행부와 포스코 임원들을 만나러 자리를 떴다는 소식을 들었다.

1000여명의 집회대열은 경찰병력과 10여m 떨어진 대치상태였다. 당시 대열 앞줄에는 주로 건설노조 가족인 여성들이 서 있었다. 현장에서 만난 민주노총 간부는 "집회 시작 전에 이미 한차례 몸싸움이 있은 뒤라 더 이상 물리적 충돌을 막으려는 것"이라고 귀띔했다.

이 상태에서 남궁현 건설연맹 의장과 황우찬 포항민주노총 의장의 연설이 계속됐다.

집회가 20분 정도 이어질 무렵, 사회자로부터 "다음은 여러분도 깜짝 놀랄 분이 나온다, 포항건설노조 이지경 위원장을 소개한다"는 요지의 안내방송이 있었다. 많은 눈길이 무대로 쏠렸으나 이 위원장 연설은 녹음 메시지로 준비된 듯 했다.

메시지는 진행 미숙으로 곧바로 나오질 않았다. 경찰은 여러 차례 기합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녹음 연설이 다시 준비되는 동안 사회자의 안내방송가 나갈 순간, 갑작스레 경찰들이 집회대열로 돌진했다.

경찰은 시위대를 향해 분말소화기를 뿌리며 50m까지 방패와 진압봉으로 시위대를 무차별 공격했고 무방비 상태의 시위참가자들은 수많은 부상자가 속출했다.

이런 가운데 오후 2시 40분쯤 하중근씨가 후두부에 피를 흘리며 쓰러진 채 발견되어 병원에 후송됐다. 경찰은 진압직전에 통상 진행하던 '해산 경고 발송'도 하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경찰이든 취재진이든 하중근씨가 피를 흘리기 전 장면을 촬영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우선 경찰의 뿌린 소화기 분말가루가 시야를 가렸다. 또한 경찰이 시위대열 방향으로 상당히 돌격한 바람에 시위참석자들도 미처 촬영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대치선 근거 건물 옥상에 있던 경찰 영상팀도 가로수와 건물로 인해 하중근 씨의 사고지점을 담기에는 사각지대였다.

이유는 또 있다. 지역 방송사나 언론 사진기자 대다수는 당일 오후 2시 30분부터 열린 포스코 견학센터 앞 '노조규탄대회'에 가 있었다. / 추연만


지난 3일 부검 당시 촬영한 고 하중근 씨의 뒷머리 상처. 경찰은 뒷머리 아래쪽 상처(둥근 표시한 부분)가 "넘어져 다친 것에 무게를 둔다"는 발표를 한 반면 노동계 조사단은 경찰의 직접적인 가격이란 주장을 하고 있다.
지난 3일 부검 당시 촬영한 고 하중근 씨의 뒷머리 상처. 경찰은 뒷머리 아래쪽 상처(둥근 표시한 부분)가 "넘어져 다친 것에 무게를 둔다"는 발표를 한 반면 노동계 조사단은 경찰의 직접적인 가격이란 주장을 하고 있다. ⓒ 민주노총 포항시협의회
하중근 포항건설노조 조합원이 사망하게 된 직접적인 원인이 경찰의 진압 장비에 의한 가격 때문인지 여부를 놓고 노동계와 경찰이 논란을 거듭하고 있다.

윤시영 경북지방경찰청장은 10일 국립과학수사연구소(국과수)의 시신 부검 감정서를 토대로 "하중근 씨의 사인은 경찰의 직접적인 폭력에 의한 것보다 시위과정에 넘어져서 다쳤을 가능성에 무게를 둔다"고 발표했다.

아울러 윤 청장은 "다만 후두부 오른쪽 부위에 또다른 손상이 형성돼 있고 두개골 골절 부위가 통상 단순히 넘어져서 발생하는 부위보다 약간 아래인 점 등으로 보아 넘어져 발생했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는 국과수의 애매모호한 견해도 덧붙였다.

이어 그는 "두부손상을 받은 시점의 현장 등에 대한 조사와 목격자 탐문, 채증자료를 통해 사망원인을 철저히 수사할 것"이라며 "경찰 진압과정의 부상, 집회노조원 상호간 과실 등 여러 가능성을 두겠다"고 말했다.

경찰은 "왼쪽 뒷머리 충격이 뇌출혈의 직접적인 원인"이란 점에는 노동계 진상조사단이 3일 발표한 내용과 일치하나 경찰의 '가격 가능성'보다 '넘어졌을 가능성'을 더 높게 본 것이다.

반면 노동계는 지난 3일 "면적이 넓은 물체 또는 둥근 물체이면서 상당한 무게가 있는 것에 강력한 힘으로 가격당했거나 머리가 충돌해 발생한 것"이라고 부검 참관 결과를 밝힌 바 있다.

따라서 이번 경찰 발표는 하씨의 사망원인이 경찰의 직접적인 폭력 때문이란 노동계의 주장과 상당히 다른 것이다. 또 경찰은 집회현장을 촬영한 사진과 테이프 등 70여점을 분석한 결과 하씨가 진압경찰과 충돌한 장면은 확인되지 않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따라서 지금까지 경찰 발표를 뒤집을 만한 명백한 추가 증거가 나오지 않으면 사인에 대한 명확한 규명은 물론 책임규명과 유가족 보상문제도 어려움이 생긴 것처럼 보인다.

인의협 "넘어진 상처가 머리 아랫부분에? 그럴 수 없다"

진상조사단은 3일 부검 참관 결과를 발표하면서 하 씨의 상처는 머리 외에도 갈비뼈 2대가 뿌러지고 팔 다리 외상 등 총 5곳에 상처가 발견됐다고 밝혔다.
진상조사단은 3일 부검 참관 결과를 발표하면서 하 씨의 상처는 머리 외에도 갈비뼈 2대가 뿌러지고 팔 다리 외상 등 총 5곳에 상처가 발견됐다고 밝혔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노동계 진상조사단이 공개한 사진.  경찰이 시위자를 방패로 내리찍는 순간과 함께 소화기가 보인다.
노동계 진상조사단이 공개한 사진. 경찰이 시위자를 방패로 내리찍는 순간과 함께 소화기가 보인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그러나 경찰에 대한 신뢰성 문제와 아울러 발표내용에 대한 허점이 많다는 지적도 만만찮다.

앞서 민주노총 경북본부는 국과수가 아닌 윤 청장이 부검결과를 발표한다는 소식에 "윤시영 청장은 7월 16일 집회를 강경 진압한 현장 최고 지휘관으로서 하중근 동지를 죽음으로 몰고간 가해자인 셈인데 어떻게 공정한 사인규명을 하겠느냐"며 즉각 반발하며 국가인권위원회나 공정한 기관이 사인규명에 적극 나서 줄 것을 요청했다.

또한 '건설노동자 노동권보장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도 11일 성명서를 통해 "자신이 직접 지휘하여 진압하는 과정에서 사망한 사고를 자신이 조사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며 "경북경찰청으로 하여금 이 사건 조사를 담당케 하는 것은 진상을 규명할 의지가 전혀 없이 도리어 진상을 은폐하기 위한 목적이란 의심이 든다"고 비판했다.

지난 2일 하씨에 대한 국과수 부검에 직접 참관한 김진국 신경과 전문의(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대표)도 11일 SBS <세븐 데이즈>와 인터넷신문 <프레시안> 과의 인터뷰에서 경찰 발표를 반박하고 나섰다.

김 전문의는 "사람이 넘어질 경우에는 뒤통수의 윗부분이나 귀 위쪽의 척두골(머리 옆부분)에 상처가 생길 가능성이 높다"면서 "하씨의 경우, 머리 아랫부분에 상처가 났으며 그 부분은 넘어져서 다칠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아울러 그는 "만약 돌출된 물체에 머리 아래를 부딪쳤을 경우에도 하씨처럼 넓은 부위에 상처가 남기는 힘들고 인도에 뒷머리를 부딪쳤다면 귀 뒤쪽 피부와 안면 일부까지 길게 손상이 나타나야 한다"며 경찰 발표는 이해하기 힘들다고 반박했다.

나아가 김 전문의는 "넘어져서 생겼다면 나머지 다섯 부분의 상처가 설명이 안 되니 국과수도 '단정하기는 어렵다'는 추가 멘트를 단 것 같다"고 주장했다.

또한 진상조사단 일원으로 하 씨 부검을 참관한 포항환경연합 강호철 의장도 기자와의 통화에서 "겨드랑이 아래의 4번, 5번 갈비뼈가 부러지고 머리 외 양팔과 등 5곳에 상처가 있었다"고 밝혔다.

강 의장은 "이는 당시 무방비 상태인 하씨를 경찰이 방패와 소화기 등으로 무차별 가격한 것"이라며 이미 발표한 사진들이 그런 사실을 명백히 뒷받침한다는 입장을 덧붙였다.

아울러 그는 11일 조사단의 권영국 변호사가 국과수 감정서를 비롯한 경찰 수사자료를 요구하는 행정정보공개신청을 했으며 공정한 사망원인을 밝히기 위해 국가인권위원회가 적극 나설 것을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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