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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례군 토지면 파도리 버스승강장
구례군 토지면 파도리 버스승강장 ⓒ 조태용
토지면 소재지와 파도리 앞으로 이어지는 19번 국도와 섬진강을 따라 걷다보면 구례 동중학교가 나온다. 동중학교 앞에는 간전교가 있는데 이 다리를 건너가면 구례군 간전면으로 향한다.

19번 도로를 따라 지리산 또는 섬진강 도보여행을 하는 여행객이라면 이쯤에서 간전교를 너머 구례에서 광양으로 이어지는 865번 도로를 이용하는 편이 차량 통행이 적어 안전하다. 19번 지방도의 경우 대형 화물차가 많이 다니고 갓길이 확보되어 있지 않아 매우 위험할 수 있다.

하지만 도로가 아닌 산길을 찾아 지리산 도보여행을 한다면 간전교를 넘지 말고 송정리로 가야 한다. 이 길을 따라 걷다 보면 석주관 칠의사 묘가 나온다. 칠의사는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때 구례로 침입한 왜구를 막기 위해 석주관성에서 싸우다가 전사한 7명의 의사와 백성들을 기리기 위해 만들어진 유적지다.

칠의사 마을에도 산을 개간한  밭이 있었다.
칠의사 마을에도 산을 개간한 밭이 있었다. ⓒ 조태용
석주관 칠의사 묘에서 계곡을 따라 들어가면 정의사라는 작은 암자가 있고 그 절 주변에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천막집이 나온다. 도로에서 봐서는 그 안에 사람이 살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는 곳인데 이 주변 마을 사람들도 그 마을에 가본 사람이 많지 않다고 한다.

행정구역상으로는 마을로 표시되지 않으며, 구례군에서는 모두 철거하라는 계고장을 붙여둔 상태이지만 만나본 사람들은 이곳을 떠날 생각이 없는 듯했다.

석주관 칠의사 묘 직전에는 산길로 이어진 길이 있다. 이 길 위에 7의사의 묘가 있기 때문에 들어가는 입구는 잘 정비되어 있었다.

아침에 흐리던 날씨는 이미 맑게 개어서 모처럼 파란 하늘이 가득하다. 마을로 가는 길이 잘 정리되어 있는 것으로 봐 사람의 왕래가 많은 것 같다. 지난 번 걸었던 위대내 길과는 많은 차이가 있었다. 주변의 풀과 가시넝쿨은 하루가 다르게 자라기 때문에 사람이 3개월만 찾지 않아도 길을 찾기 어렵다고 한다. 하지만 이 길은 작은 풀 하나 길로 뻗지 못한 것으로 봐서 사람들의 왕래가 빈번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오솔길 같은 길을 잠시 걷다 보니 정의사라고 표시되어 있는 암자가 보인다. 내려다보니 마을 여기저기 임시로 만든 가건물들이 있고 밭도 있다. 정의사에는 사람은 없고 덩치 큰 개 한 마리만 낯선 이방인의 침입을 경계하듯 큰소리로 짖어댄다.

길을 따라 마을로 들어가니 사람이 살지 않는 가건물이 보이고 마을에는 계곡 물 소리만 요란하다. 그래도 빛이 잘 들어와서 그런지 마을을 포근해 보였다.

이곳에서 15년을 사셨다는 할머니, 수박과 커피를 주셨다.
이곳에서 15년을 사셨다는 할머니, 수박과 커피를 주셨다. ⓒ 조태용
마을에 사람이 없는지 살펴보니 개울가에 할머니 한 분이 보인다. "할머니"하고 소리쳐서 불렀더니 계곡물 소리가 요란해서 소리가 들리지 않는 모양이다. 계곡으로 내려가 "이 마을에 사시냐"고 물었더니 이 소리도 들리지 않는 모양이다.

장마철이라 비가 많으니 계곡물도 많아져서 콸콸 거리는 물소리 때문이다. 할머니는 나에게 손짓을 하면서 따라오라고 한다. 할머니를 따라 가보니 방 한 칸과 부엌이 있는 조그만 한 임시가옥이 나온다.

"할머니. 여기 사세요?"
"응, 여기서 15년이나 살았어."
"산에 살면 안 무서우세요?"
"무서우면 어찌 살아. 여기가 마음 편하고 좋아서 사는 건데."

할머니는 어제 누군가 제사를 지내고 준 수박이라면서 수박을 건넨다. 그러면서 "커피 한 잔 할 거야"라고 물으셨다. 그러면서 "블랙 잡숴, 그냥 먹어?" 이렇게 덧붙이셨다. 커피를 좋아하지는 않지만 이왕 먹을 것이면 취향에 맞게 먹는 게 좋다면서 선택하라는 것이다. 할머니가 애써 취향까지 생각해 준다고 하는데 보통을 달라 할 수 없어 블랙을 달라 했다.

할머니는 병이 나서 여기 저리를 떠돌다가 이곳에 정착해서 사신 지 15년이 되었다. 연세는 60이고 45살에 이곳에 들어왔다. 할머니의 고향은 신안군 섬 마을이고 22살에 28살이나 나이가 많은 사람과 결혼해 아이 넷을 낳았다.

그러나 아이들을 직접 키우지는 못하고 본인은 여기 저기 떠돌아 살았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몸이 아파 병원에 가도 고치질 못해서 알아보니 신병이 걸렸다는 소리를 들었다. 속세에 살지 못하고 승려가 되어야 하는데 여자고 자신이 미련해서 그것은 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래서 작정을 하고 산에 들어가 100일 기도를 드렸는데 기도를 하는 도중에 "몸의 때는 손으로 벗기면 되는데 마음의 때는 무엇을 벗겨야 하는가?"라는 계시를 받았다고 한다.

그 뒤로 지리산에 들어와 마음의 때를 벗기기 위해 기도를 하면서 살고 있다. 자식들이 한 달에 조금씩 보내주는 돈으로 생활하고 가끔 기도하러 오는 무속인들의 밥을 해주거나 해서 먹고 산다. 그러면서 예전에는 사람이 1목숨이고 돈은 2목숨이었는데 요즘은 돈이 1목숨이고 사람 목숨이 2목숨이라면서 돈 돈 하는 세상도 싫다고 했다.

산속 마을 사람들은 대부분 천막으로 만든 임시가옥을 만들어 살았다.
산속 마을 사람들은 대부분 천막으로 만든 임시가옥을 만들어 살았다. ⓒ 조태용
다시 속세로 내려갈 생각이 없냐고 했더니 그럴 생각은 전혀 없고 내려가서 살면 병이 난다면서 산속이 제일 마음 편하다고 하신다. 산속에 살면 짐승들이 무섭지 않느냐고 했더니 짐승들은 먹을 것이 없는 곳에는 오지 않는다며 여기는 먹을 것도 없어서 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귀신을 믿느냐고 하기에 믿지 않는다고 했더니 그것은 자유지만 믿는 사람들의 세계에서는 귀신은 항상 옆에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내가 귀신을 믿는 것처럼 당신도 귀신을 믿는 사람의 생각을 존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우리 같은 사람들은 잘못을 하면 귀신이 벌점을 내린다고 한다. 일종의 벌점을 많이 맞으면 병이 나고 다시 기도를 해서 벌점을 없애야 병이 낫는다는 것이다. 어떤 것을 하면 벌점을 맞느냐고 물었더니 있어야 할 곳에 물건을 두지 않거나 쓰레기를 버리는 것, 베지 말아야 할 나무를 베어도 벌점을 맞는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모두 이런 생각을 갖고 산다면 세상에 악인이 별로 없고 어찌 보면 공평해 보이기도 한다. 착하게 사는 사람은 병이 오지 않고 착하게 살지 않으면 병이 걸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상이 그리 간단하겠는가? 할머니는 얼마 전부터 자꾸 소변이 마려워서 병원에 가서 진찰을 받아보니 당뇨라는 진단을 받았다고 한다. "큰 벌점을 맞았네요!"했더니 웃으면서 그래서 다시 기도를 해야 한다고 했다.

할머니는 점심을 해준다면서 밥을 먹고 가라고 하신다. 하지만 없는 살림에 밥 한 그릇도 귀하게 보여서 사양하고 발길을 돌렸다. 이 마을 뒤에도 마을이 있다는 소리가 있어서 물었더니 아마 사람이 없을 것이라며 몇 사람이 살기는 산다고 한다.

그래서 할머니와 헤어져 산길로 한 참을 걸어 올라가 보니 집에 4채 있기는 하는데 모두 사람이 살지는 않았다. 아래 있는 집처럼 임시 가옥이 아닌 모두 잘 지어진 집들이었다. 마당까지 있는 것으로 봐서 여기가 진짜 마을이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산길만 되어 있으니 사람살기가 어려워 모두 떠난 모양이다.

칠의사 마을 위쪽의 또 다른 마을, 사람이 살지 않았다.
칠의사 마을 위쪽의 또 다른 마을, 사람이 살지 않았다. ⓒ 조태용
그 뒤로도 산길이 이어져 따라 올라가 보니 곳곳에 집터로 보이는 축대들이 있기는 했지만 집은 보이지 않았다. 그 뒤로 무엇인가 있을 가 싶어 더 들어가 보니 산길이 갑자기 사라지면서 어두워져 왔던 길로 내려왔다.

이 산속에서 살고자 하는 사람들은 누구일까? 그들을 만나서 더 깊은 이야기를 하고 싶었지만 산속 마을에 사람을 만날 수 없어 그냥 내려왔다. 산속 마을을 내려오니 강렬한 한낮의 햇살이 눈부셨다.

덧붙이는 글 | 농산물 직거래 농민에게 희망이 됩니다. 참거래 농민장터(www.farmm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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