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방학을 맞이해 아이들이 모두 돌아가고 난 텅 빈 학교와 운동장에는 연일 푹푹 찌는 더위와 정적만이 가득합니다. 드넓은 적중 들판엔 푸른 모들이 한여름을 지나가며 나락을 맺을 준비로 분주한 느낌입니다.

운동장 가에 서 있는 큰 나무들 안에서 말매미가 긴 울음을 끌고, 시원한 바람 한 줄기가 무척이나 그리운 때에, 경남 합천 적중의 대안학교인 원경고등학교는 8월 10일부터 12일까지 대안학교 캠프를 열었습니다.

현재 원경고등학교를 비롯해 전국의 많은 대안학교들이 여름 방학을 이용해 대안학교 체험 캠프를 열고 다양한 아이들을 만나고 있습니다. 이런 대안학교 여름 체험 캠프에는 중·고등학교 진학을 앞두고 있는 많은 학생들과 학부모들이 참여하고 있습니다.

▲ 두근거리는 첫 만남. 우리 가족 다 왔어요.
ⓒ 정일관
대안학교는 말하자면, 지식 중심 입시 위주의 교육을 시행하는 일반 인문계 학교의 교육적 한계를 극복하고, 지식 습득 능력만이 아닌 더 많고 다양한 기준에 따라 학생들을 바라보면서, 시대가 요구하는 새로운 가치를 추구하며, 학생이 씨앗처럼 간직하고 있는 가능성을 열어주려는 학교를 말합니다.

그러므로 여름방학을 이용한 대안학교 체험 캠프는 이러한 대안교육에 관심을 가진 학부모들과 학생들에게 직접 체험의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그 동안의 궁금증과 교육적 욕구를 해소하는 데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게다가 캠프를 통한 그 만남 자체가 소중해, 짧은 기간이지만 참가한 학생들에게 의미 있는 체험을 통해 새로운 용기와 희망을 나누고 있습니다.

▲ 친목 레크리에이션. 긴장도, 피로도 남김없이 풀고 친해집시다.
ⓒ 정일관
학생뿐 아니라 그 학생의 가족들까지 총 38명이 참가해 활기를 띄었습니다. 전국 각지에서 모여들었지만 가족들까지 참여를 개방해 아이들이 낯선 환경과 사람에게 적응하는 데 훨씬 편안한 여건을 조성할 수 있었습니다.

올해의 주제는 '소중한 만남, 함께 하는 우리'입니다. 오늘날 교육의 많은 문제점들 중에 참으로 심각한 것은 바로 자존감의 상실입니다. 자기 자신을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이죠. 사회적으로 어떤 기준들을 세워놓고, 그 기준에 부합되지 않으면 열등한 사람들로 몰아가는 교육을 은연중에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참으로 가혹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나를 누군가와 비교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나를 소중하게 여길 수는 없을까, 나의 장점만이 내 것이고 나의 단점은 마치 내 것이 아닌 것처럼 나를 조각내지 말고, 그것들을 온전히 내 것으로 따뜻하게 품어줄 수는 없을까? 받아들일 수는 없을까? 이렇게 나를 소중하게 여기는 교육에서부터 대안교육이 시작되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 특성화 체험, 비즈 공예. 예쁜 크리스탈 팔찌를 만들어 봐요.
ⓒ 정일관
이번 대안학교 체험 캠프 프로그램은 크게 세 가지의 소중한 만남을 준비했습니다. 먼저 나 자신과 만나는 인성교과 체험, 둘째, 자연과 만나는 자연친화 체험, 셋째, 사람과 사물을 만나는 특성화 체험이 그것입니다.

첫 프로그램은 어색한 마음들과 먼 길의 피로를 풀기 위한 특성화 체험인 '친목 레크리에이션'이었습니다. 모두 함께 둘러 앉아 자신들을 소개하고 인사하고, 부딪치고, 움직이고, 웃는 사이에 마음들이 환하게 녹아나 어느덧 오래 전에 만난 사람들처럼 편안해졌습니다. 특히 학부모들은 자녀 문제와 대안교육이라는 공통 분모가 있어 매우 빠르게 친해졌다고 기뻐했습니다.

저녁 식사 후에는 인성교과 체험인 '마음공부와의 만남' 시간에 참가했습니다. 아마 태어나서 '마음공부'라고 하는 프로그램과는 처음으로 만났을 아이들을 위해 마음이 과연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게 했습니다. 또 현재 아이들의 마음을 그림으로 그려보게 하였으며, 마음을 어떻게 사용해야 행복이 더 커질 수 있는 것인지를 공부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아이들은 대체로 어리둥절해했지만 '마음'도 '공부'할 수 있다는 것만이라도 인식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어진 첫 자연친화 체험은 '별밤과 바람을 느끼며'입니다. 해가 다 진 어두운 밤에 넓은 적중 들판을 빙 돌며 밤의 기운과 별, 그리고 달과 스치는 바람, 풀벌레 소리를 느껴보는 시간입니다. 고요히 걸으며 그동안 무관심했던 어둠 속의 자연을 느끼게 하는 것입니다. 별은 초롱초롱 빛나, 북두칠성을 가리키며 걸었고, 풀벌레 소리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어둠 속에 몸이 빨려 들어가며, 먼 마을의 불빛도 바라보았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동녘 산 위로 떠오르는 달을 보며 모두 탄성을 질렀습니다. "저 봐라, 저 달 봐라!"하면서 말입니다.

▲ 자연친화 체험. 물, 모래, 햇빛 그리고 나. 물 속에서 줄다리기 하기 힘들어요.
ⓒ 정일관
다음날 아침 일찍 깨어 저수지 명상을 하였고, 오전에는 특성화 체험으로 '비즈 공예'를 체험하며 각자 예쁜 크리스탈 팔찌를 만들어 보았는데, 어찌나 집중을 잘 하든지 시간 가는 줄 몰랐습니다. 이어진 순서는 아이들이 제일 싫어하는 논매기 체험입니다. 먼저 잡초의 종류와 생태를 알려주고 학교 실습 논에 직접 들어가 논바닥을 맨발로 밟고 잡초를 뽑는 체험인데, 염천 더위 속에서 짧게나마 소중한 땀도 흘렸습니다.

▲ 이 공은 내 거야. 수중 농구 정말 재미있어요.
ⓒ 정일관
반면 합천을 서쪽에서 동쪽으로 가로지르는 황강에 가서 자연친화 체험을 하는 '물, 모래, 햇빛, 그리고 나'는 아이들의 즐거움으로 가득 찬 시간들이었습니다.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아이들은 물놀이의 재미에 흠뻑 빠져 몸을 부대끼는 동안 교사, 학생, 학부모가 마침내 하나가 되었습니다.

▲ 땅과 하늘 만나기. 세상에서 제일 비싼 침대에 누워 하늘을 보아요. 하늘이 그렇게 예쁠 수가 없어요.
ⓒ 정일관
저녁식사를 하고 해가 서쪽 산을 넘어가려고 아름다운 노을을 만드는 즈음에 참가자 모두는 운동장에 나와 세상에서 가장 비싼 침대인 땅에 누워 하늘을 만나는 '땅과 하늘 만나기'를 하였습니다. 우리가 언제 한 번 어머니인 대지에 누워 하늘을 온전히 볼 수 있을까요? 무척이나 파란 하늘에 흰 구름들이 시시각각 자아내는 아름다운 형상에 넋이 빠져, 그 웅혼한 신비를 느껴보았을 텐데요, 하늘과 땅과 사람, 즉 천지인(天地人) 삼재(三才)가 통하는 순간이었습니다.

▲ 더듬 더듬 수화 배우기. 올챙이같이 꼬물꼬물 손가락을 움직이며 내 마음에 사랑을 키워요.
ⓒ 정일관
이어서 학생들은 '수화 배우기' 시간에 참가하고, 따로 학부모들만 모여 선생님들과 토론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학부모들은 열성적으로 질의하였고, 선생님들은 답변하는 동안 다양한 주제를 가지고 풍부한 토론을 벌여 주어진 두 시간 반이 모자랄 정도였습니다.

저녁에 아이들은 '마음 거울 보기'라는 인성교과 체험을 하여 다시 한 번 마음공부로 아이들이 자신의 소중함을 발견하여 자기 긍정의 실력을 기르도록 하였습니다.

▲ 알고 싶어요. 대안학교, 대안교육. 학부모들의 진지한 토론으로 시간이 부족하였죠.
ⓒ 정일관
마지막 날엔 왠지 아쉬움과 서운함이 술렁이는 것 같았습니다. 특성화 체험인 '풍선 아트'를 끝으로 모든 프로그램을 마무리하며, 2박 3일간의 활동을 찍은 동영상을 시청하면서 아이들은 자신들의 활동과 모습들을 되돌아보았습니다. 그리고 감상문을 적고 발표하면서 짧은 일정의 아쉬움을 달래었습니다.

▲ 풍선 아트에 몰입한 아이들 모습. 소중한 나에게 줄 꽃 선물을 만들어요.
ⓒ 정일관
서울에서 온 김소진(여·15) 학생은 "논매기를 하다가 엎어져 옷 버린 것이 기억에 남고, 특히 땅바닥에 누워서 하늘을 보았을 때, 하늘이 정말 예뻐서 인상 깊었다"고 하였습니다. 대전에서 온 송원석(남·15) 학생도 "하늘과 땅의 은혜, 부모님 은혜, 나 자신을 소중함을 알게 되었으며, 학과 공부만이 공부가 아니라 모든 걸 깊이 느끼고 배우는 것이 다 공부임을 알았다"고 말했습니다.

학부모 황자임씨도 "아들 때문에 왔지만 실상은 나 자신이 더 많이 즐거워하고 공감하며 배운 게 많다. 소중한 나를 더욱 길러야겠다는 깨달음을 얻었다"고 말했습니다.

대안학교 체험 캠프에 참가한 학생들과 그 가족들이 떠나간 학교는 다시 정적이 무겁게 자리를 잡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속엔 따뜻한 마음을 안고 돌아간 사람들의 희망들이 씨앗처럼 남아 새 싹 틔울 때를 기다리고 있는 듯하였습니다. 아이들과 학부모의 관심과 열정, 그리고 선생님들의 정성이 오붓하게 어우러지는 '소중한 만남'이었습니다.

▲ 다같이 모여서 한 곳을 바라보아요. 우리들의 희망이 한데 모였으면 좋겠습니다.
ⓒ 정일관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경남 합천의 작은 대안고등학교에서 아이들과 만나고 있습니다. 시집 <느티나무 그늘 아래로>(내일을 여는 책), <너를 놓치다>(푸른사상사)을 펴냈습니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