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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줍어 하는 꼬마 아가씨(왼쪽)와 조금씩 미소를 보여주는 친구들(오른쪽)
ⓒ 박정규
▲ 소품(?)을 들고 나온 꼬마 아가씨(오른쪽)
ⓒ 박정규
낮 12시쯤 오르막 민가에서 만난 아이들.

남자아이 한 명은 마당에 앉아 무표정한 얼굴로 무언가를 열심히 적고 있다. 날 본체만체 하다가 집안으로 들어갔다. 여자아이 한 명은 문틈으로 얼굴만 내밀고 있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부끄러운 듯 집안으로 '쏙' 하고 들어가버렸다.

또다른 남자아이 한 명이 방금 잠에서 깬 듯 나와서 미소를 보인다. 내가 사진을 찍으려고 하자, 어머니가 와서 아이의 옷매무새를 고쳐 주시고, 웃으라고 표정 지도까지 해준다. 사진찍은 걸 아이에게 보여주니, 소리치면서 아주 좋아한다. 그 소리에 다른 남자아이도 나와 촬영에 응하기 시작.

문 틈으로 지켜보던 여자아이도 강아지를 소품(?)으로 들고나와 수줍은 표정을 짓고 있다. 수줍음이 많은 꼬마 아가씨다. 특별히 독사진을 찍어주고 사진을 보여주니 좋아한다. 시간이 조금 지나자 강아지를 좌우로 흔들면서 촬영에 적극적으로 응하기 시작하고, 다른 아이들도 다양한 포즈를 취하기 시작.

아이들이 자동촬영 기능을 이해하지 못해 함께 찍은 사진을 얻기까지 조금 시간이 필요했지만, 힘든 언덕을 올라온 피로를 잠시나마 잊을 수가 있었다. 처음에는 '경계심'으로 날 대하던 아이들이, 내가 떠날 때는 모두 나와 아쉬운 눈빛으로 '짜이찌엔(또 만나요)'을 외쳐줬다.


▲ 드디어 아이들과 친구가 되었다.
ⓒ 박정규
2006년 8월 10일 목요일. 구이양–쿤밍 7일차/맑음

09시 30분 기상. 전날 많이 피곤했나 보다.

12시. 4.6km 지점. 오르막 민가.

다리에 실 펑크가 난 것처럼, 시간이 지날수록 페달을 밟는 데 힘이 없다. 발바닥 통증까지. 200~300m마다 한 번씩 쉬었는데, 갈 길이 까마득하다.

물이 떨어졌다. 다행히 오른쪽 언덕에 민가가 한 채 보인다. 주인 아주머니께 물을 얻을 수 있느냐고 물어보자,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이신다. 물병에 물을 채우고 있는 사이에 기둥 아래에 작은 의자를 하나 갖다주시면서, '씨우시(쉬다 가세요)'. 이 쪽 지방은 자전거로 여행하기는 힘들다고, '모토춰(오토바이)'가 좋다고 하신다.

▲ 오르막 도로변에서 앉아서 약 드시는 할머니. 약 드시고 힘내세요!
ⓒ 박정규
15시 40분. '푸안시' 식당.

오토바이 여행자들을 만났다. 모두 5명이었는데, 3명은 친구란다.

친구 3명의 목표는 '광동–쿤밍-라싸–신장–간쑤–내몽고–광동, 60일, 2만km'. 얼마 전에, 목적지가 같은 다른 오토바이 여행자 2명과 합류, 지금은 모두 5명이 함께 여행 중이란다.

광동을 출발한 지는 8일, 2000km 정도 달려왔단다. 하루에 주행 거리와 시간은 어느 정도 되는지 문의하자, 한 시간 40~50km, 주행시간 7~8시간, 주행거리 200km.

뭔가 조금 이상하다. 한 시간 주행거리와 주행시간을 계산했을 때 비해 주행거리가 너무 적다. 이유를 묻자, 뭔가를 한참 설명하는데 이해할 수가 없다. 그들만의 사정이 있겠지.

일행 중 한 명은 군인이다. 군복을 입고 있는데, 어깨에 '별이 세개'다. 설마 삼성장군? 혹시나 해서 물어보니, '대위'란다. 별의 정체는… '기념 휘장'이었다.

그들은 60일에 2만km를 목표로 하고 있따. 난 60일 동안 4000km 정도 달려왔고, 280일 동안 2만km를 목표로 하고 있는데…. 역시 오토바이는 '빠르다'.

▲ 이 분은 군인 '대위', 난 태극기, 저분은 '깃발'을...
ⓒ 박정규
식사 후 함께 나와 기념촬영을 하는데, 모두 카메라를 가지고 있다. 내가 단체사진을 찍자고 하니까, 일행 중 한 명이 사진을 찍기 위해 행렬에서 벗어난다.

내가 주민에게 부탁해서 모두 다 같이 찍자고 하니까 좋은 생각이란다. 길가는 아저씨께 촬영을 부탁하고 사진을 찍었는데, 내 카메라로 찍고 싶어서 나도 부탁하자, 다른 친구들도 모두 자기 사진기를 그 아저씨께 갖다 드린다. 모두 6대의 카메라로 돌아가면서 사진을 찍었다.

우리가 촬영하는 사이 인근 주민들이 이상한 차림의 복장을 하고 있는 우리를 신기한 듯 쳐다보고 있었지만 우리는 마냥 즐거워하며 촬영을 마쳤다. 서로의 연락처를 교환한 후 '만조(조심하세요)'를 외치며 각자의 길로 출발.

▲ 오토바이 여행자들. 광동-라싸-광동 60일, 2만km를 목표로 달리고 있었다.
ⓒ 박정규
17시 5분. 21.7km. '푸안시' 시장에 있는 여관.

한 아저씨께 10~15Y 선의 여관을 문의하자, 근방에는 없단다. 시장 쪽으로 가서 한번 찾아보란다. 왔던 길을 500m 돌아가 시장으로 가서 과일가게 아주머니께 물어보자 바로 뒤쪽을 가리킨다. 여관 주인에게 방이 있느냐고 문의, '여우(있습니다).'

입구 넓이가 정말 효율적이다. 사람 한 사람 정도 지나갈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짐을 먼저 부린 후 2층 주인집으로. 다음엔 자전거를 들고. 자전거는 주인집 거실에 주차하고 내 방으로 이동.

▲ 숙소 5층. 간이 계단 위 저런 공간이 있었다. 10Y
ⓒ 박정규
3층 1인실 가격 30Y. 비싸다고, 10-15Y 선을 원한다고 하니까, 따라오란다.

4·5층 도착. 간이 계단이 하나 있다. 그 위로 올라가니 침대 하나와 작은 창문 하나가 달려 있다. 콘센트는 물론 없고, 일어서면 머리가 부딪힐 정도의 높이와 정말 침대 하나밖에 들어갈 수 없는 공간.

그래도 장점은 있다.

하나. 옥상까지 올라갈 필요가 없다. 간이 계단을 내려가 오른쪽으로 나가면 옥상이니까.
두울. 화장실과 세면대가 옥상에 있고, 물도 콸콸 나온다.
셋. 옥상에서 내려다본 전망이 생각보다 좋다. 그리고 빨랫줄도 있다.
넷. 복도에 콘센트 하나가 있어 디지털카메라 배터리 충전이 가능하다.
다섯. 내가 원하던 가격이다. 10Y.

▲ 철띠로 둘러싸인 왕바 컴퓨터. 보안철저-.-;
ⓒ 박정규
인근 왕바(인터넷 카페).

우와~ 여긴 철띠같은 걸로 컴뷰터 본체를 둘러 쌌다. 이런 분위기로 봐서 '한글 설정'이 제대로 되지 않을 거란 예감… 역시나. 보기만 가능했다. 메일만 확인하고 다시 숙소로.

숙소. 빨래를 하고 신발은 건조시킨 후, 2층 주인집 식당에서 컴퓨터 작업을 할 수 있도록 허락받았다. 컴퓨터 작업을 하고 있는데…. 우르르 쾅쾅, 폭우가 내리기 시작한다. 이런 신발~ 5층까지 달려가 신발을 안전한 곳으로 대피시킨 후 다시 2층으로.

내일이 조금 걱정된다. 도로라면 빗속에서 달리는 건 큰 문제가 없다. 하지만 여기는 산. 오르막은 문제없지만, 내리막 주행 시 위험하다.

내일 일은 내일 생각하기로 하고 오늘은 그만 쉬어야겠다.

▲ 박정규 중국 자전거 종단 코스도
ⓒ 오마이뉴스 고정미

여행 수첩

1. 이동경로: 구이저우 정시포 – 구이저우 관링시(국도 320번)

2. 주행거리 및 시간: 21.7km / 2시간35분 / 평균속도 8.3km/h / 누적거리 4044km

3. 사용경비: 25Y

아침: 3Y / 인터넷카페 90분: 3Y / 어제 숙박비: 5Y / 사과 9개: 4Y / 오늘 숙박비: 10Y

4. 섭취 음식

1) 식사
아침: 양료우미셍(우동 같은 면 발에 양 고기가 건더기로): 얼큰, 시원
점심 겸 저녁: 4가지 고기반찬과 밥 한 그릇

2) 간식
- 물 3ml / 사과 9개

5. 신체상태: 양쪽 정강이 뒷쪽 근육통, 허벅지 근육통, 약간의 두통

6. 도로분석 및 풍경:

'정시포'에서 1km 오르막을 올라서자 마을을 벗어났다. 4.7km 오르막이었고, 2.8km 지점부터 다리에 '실 펑크'가 난 것처럼 힘이 빠지기 시작했다. 20~30m 주기로 휴식을 취하면서 조금씩 전진.

4.7km~5.2km 내리막도 잠시 5.2km 다시 오르막 시작 9.6km 지점까지 지속되었다. 민가가 여러 채 있었고, 8.6~10.3km 구간은 자갈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고, 울퉁불퉁.

10.3km~15.2km 내리막. 10.8km 지점부터 정상적인 도로 시작.
15.2km~18.9km 오르막. 트럭, 버스 등 차량 통행이 많았다.

18.9km~21.7km 내리막. 평지를 거쳐 '푸안시' 도착. 산과 산을 연결하는 도로 건설 중인 곳, 집 짓는 곳 등이 많았다. 그 구간의 도로 상태는 거의 '비포장 울퉁불퉁.' 서행 운전이 필요했다. 산에는 큰 나무들이 많아 중간중간에 그늘에서 충분히 쉴 수 있었다. 민가도 주기적으로 있어 '식수' 공급에도 큰 문제가 없었다.

덧붙이는 글 | 박정규 기자 홈페이지 '꿈을 위해 달리는 청년'(http://www.kyulang.net/)에서도 그동안 올린 생생한 자전거 여행기를 보실 수 있습니다. 

박정규 기자는 중국여행을 시작하면서, 현지에서 배운 중국어를 토대로 여행기를 작성하고 있습니다. 글 중에 표기한 중국 지명이나 중국어 표현들이 부정확할 수도 있습니다. 이 점 양해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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