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금가지
스티븐 킹이 매료되었던 이 책이 말하는 공포는 무엇인가? 이 작품은 1954년에 쓰여 졌지만 작품의 배경은 1970년대 후반이다. 아무런 사전 지식 없이 이 책을 집어 든다면 처음부터 당황하기 쉽다. 상황에 대한 아무런 설명이 없다. 단지 고립된 한 남자의 지루하고 피곤한 일상이 소상히 소개된다.
이렇게 보잘것없는 일상이 밤이 되면 매우 흥미롭게 돌변한다. 흡혈귀가 지구상의 유일한 생존자 로버트 네빌을 찾아오기 때문이다. 흡혈귀의 이러한 방문은 네빌에겐 익숙한 일이다. 이미 그의 집은 흡혈귀와 싸우기 위한 요새로 변한 지 오래다. 낮에는 밖으로 나가 생필품을 구하며 잠들어 있는 흡혈귀를 죽이고 밤에는 요새에 틀어박혀 술을 마시고 책을 읽으며 흡혈귀를 몰아낼 궁리를 한다.
이러한 상황설정 자체가 매우 흥미롭다. 그렇기에 <새벽의 저주> <28일 후> <레지던트 이블> <블레이드> <언더월드> 등의 많은 영화에서 이러한 설정이 차용되었으며 <바이오 하자드> <하우스 오브 데드>같은 게임에서도 이러한 설정을 찾아 볼 수 있다.
흡혈귀가 등장함에도 네빌은 위험해 보이기는커녕 매일 반복되는 삶으로 인해 더욱 무료해 보인다. 심지어 밖으로 나가 스스로 흡혈귀가 되어 버릴까 하는 생각마저 한다. 제 2차 세계대전이 핵무기에 의해 종결된 것처럼 소설 속의 상황도 핵전쟁에 의한 것이다. 세계전쟁 이후인 1950년대의 무기력한 남성의 삶을 핵전쟁으로 폐허가 된 세상에서 흡혈귀들로 고립된 네빌에 투영시킴으로써 무료한 삶이 주는 공포와 괴로움을 이 소설은 표현하고 있다.
한편 이러한 고립과 무료함이 주는 공포를 그린 작품으로 1791년 발표된 다니엘 디포(Daniel Defoe)의 <로빈슨 크루소(The Life and Strange Surprising Adventures of Robinson Crusoe of York)>를 들 수 있다. 공포라 하기에는 무리가 있지만 질병, 자연재해로 인한 주인공의 고통과 커뮤니케이션의 단절이 가져오는 무료함은 상상만으로도 숨이 막힌다.
이러한 <로빈슨크루소>와 <나는 전설이다>는 여러 가지 면에서 비슷한 양상을 띠고 있다. 로빈슨크루소가 표류하게 되는 무인도는 네빌의 집이고 사회적 관계가 단절되었다는 점 역시 흡사하다. 자신의 집을 요새로 만들어가는 네빌과 야만인들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섬을 요새로 만드는 로빈슨크루소. 특히 네빌이 루스를 만나는 장면은 로빈슨크루소가 프라이데이를 만나는 장면과 너무나 흡사하다. 서로에 대한 의심과 공포. 역시 가장 무서운 건 사람인가보다. 또한 두 작품 모두 영화로 만들어졌다는 점이 주목할 만한데 <나는 전설이다>는 윌 스미스와 조니 뎁 주연으로 현재 3번째 리메이크 작품이 만들어지고 있다.
로빈슨크루소는 무인도를 자신의 손으로 일궈낸다. 논밭은 물론이고 과수원에 농장까지 있다. 빵을 만들고 젖을 짜며 옷을 지어 입는다. 수십 년을 그렇게 무인도를 가꾸며 살다 결국 고국으로 돌아온다. 충분히 ‘나는 전설이다’라고 말할 자격이 있다.
한편 흡혈귀로 둘러싸여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네빌이 어떻게 당당하게 ‘나는 전설이다’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는 로빈슨크루소처럼 전설이 될 자격이 있을까? 마지막 책장을 넘길 때쯤 네빌의 ‘나는 전설이다’라는 되뇜이 자신에게 어떻게 들려올지 상상해보라. 그가 겪었던 외로움과 무료함, 생존을 위한 치열한 전투가 자신의 삶과 닮아 있다면 당신도 전설이 될 수 있다.
덧붙이는 글 | 대학생 잡지 캠퍼스 헤럴드와 오마이뉴스, 네이버 블로그에 함께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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