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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에서.
제주도에서. ⓒ 나관호
어머니에게 지우개가 침투했다. 시간과 공간이 혼동되어 또 염려와 근심을 하신 것이다. 나는 재빨리 어머니 옷을 입혀드리도록 하고 나도 외출 준비를 했다. 그럴 때는 어머니 바람 쐬어 드리는 것이 제일이다.

'어디를 갈까'라고 생각하다가 며칠 전부터 마음에 두었던 <각설탕>이라는 잔잔한 가족영화를 보여드리고 싶었다. 그런데 차 안에서도 어머니는 내내 얼굴이 어둡다. 근심이 떠나지 않은 모양이다.

"어머니, 극장에 가는 거예요? 영화 보러요."
"그런데 문을 잘 잠궜어?"
"네, 염려 마세요. 꽁꽁 잠궜어요."
"그 여자 안 올까?"
"아무도 안 와요? 어머니 지금 다른 생각하시는 거예요. 내 말만 들으세요."
"지금 어디 가?"


영화관에 도착했다. 어머니에게 다시 극장이라고 설명하고, 기분 전환을 위해 사진 몇 장 찍어드렸다. 어머니가 이제는 사진을 의식하신다.

"나 웃어야지?"
"네, 웃으세요?"
"그런데 봉의만 왜 안 왔어?"
"딸은 시집갔잖아요?"
"참 그렇지."


동생에게 전화를 연결해 확인시켜드렸다. 어머니 같은 노인들은 무엇이든 확인, 점검이 필요하다. 그래야 당신 마음을 편하게 갖는다. 그 시간이 얼마 가지 않지만.

<각설탕>이 <괴물>에 치여 있을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관객들의 호응이 있었다. 영화가 시작되었다. 최고의 기수가 되고 싶은 소녀 시은과 그녀를 위해 달리고 싶은 말 천둥이의 휴먼 드라마 앞에 눈물을 적셨다.

어머니는 제주도 푸른 목장의 낭만적인 풍광 앞에서는 "이쁘네"라고 하셨고, 숨 막히는 경주 장면 앞에 어머니는 "어∼, 왜 그런다니"를 연발하셨다. 그런데 관객들의 눈물샘을 진하게 자극한 시은과 천둥의 재회 장면을 보시면서 눈물을 흘리셨다. 나는 어머니의 눈물을 보고 더 울었다. 이유는 어머니가 무엇인가에 반응하신다는 자체가 감격이기 때문이다.

어머니를 모시고 나오면 어린아이 같아서 크고 작은 일에 늘 신경이 쓰인다. 영화를 보면서도 힐끔힐끔 어머니를 살펴야 한다. 어머니에게 귓속말로 말했다.

ⓒ 나관호
"어머니, 재미있으세요?"
"어! 저 말 좀 봐!"
"말들이 달리기 시합하는 거예요?"
"참, 잘 달린다."
"말 이름이 천둥이예요?"
"천둥이! 아이구 이쁘다."


어머니와의 대화는 참 단순해진다. 어머니가 이해하는 <각설탕>의 줄거리는 푸른 목장이 있고, 어떤 여자 아이가 울고 화를 내고, 눈이 예쁜 말이 달린다는 내용이다. 그렇게라도 이해하시는 것이 너무 감사하다. 그리고 토막 장면마다 간혹 반응하시고 말씀을 하시는 것이 너무 감사했다.

나는 천둥이를 주인공이라고 생각하고 영화를 보았다. 영화 속에 담긴 천둥이의 탄생과 성장, 그리고 경주마가 되고 은퇴하기까지의 과정을 새로운 각도로 보았다. 특히 주인공 시은과의 교감에 대해 마음 깊이 감동을 하였다. 천둥이를 통해 '사랑은 주는 만큼 돌아온다'는 것과 사람과 동물이 정말 교감할 수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참 좋은 영화다.

나는 영화를 보면서 어머니를 오버랩시켜 보았다. 천둥이와 시은이 나누는 사랑과 우정을 보면서 어머니가 늘 나에게 하시는 말씀이 다시 떠올랐다. "내가 아들한테 이렇게 해줬는데 내가 도로 받아. 호호호."

그렇다. 사람과 사람, 부모와 자식은 '사랑'이라는 연결고리만이 영원하다. 어머니가 나에게 주셨던 그 사랑을 당연히 받으셔야만 한다. 최소한 사랑은 주는 만큼 돌아와야 하니까.

그런데 솔직하게 말하면 힘들 때가 간혹 있다. 억지로 웃을 때도 있고 한숨이 나올 때도 있다. 그리고 나와 어머니는 아들과 자식이지만 다른 가족들은 촌수가 다르다. 또 어머니가 주었던 사랑을 나만 받았지, 내가 만든 식구들은 받은 것이 아니지 않은가? 어머니의 사랑의 빚은 내가 졌다. 나는 사랑의 빚쟁이다. 그래서 그것을 갚기 위해 노력하려는 것이다. 어쩌면 이자까지 채워드려야 할지도 모른다. 내가 넘치는 투자를 하고 있다면 나는 내 자식에게서 대가를 받기 바라고 있다. 딸만 둘이라서 좀 그렇기는 하지만 말이다.

영화가 끝나고 나도 천둥이기 먹는 각설탕처럼 어머니에게 아이스크림을 사 드렸다. 이제 내가 부모처럼 먼저 한입 베어 먹고 어머니를 드렸다. 어머니와 나와의 새로운 교감을 위해서.

덧붙이는 글 | 나관호 기자는 크리스천커뮤니케이션연구소 소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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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제이 발행인, 칼럼니스트다. 치매어머니 모신 경험으로 치매가족을 위로하고 있다. 크리스천커뮤니케이션연구소 소장이다. 기윤실 선정 '한국 200대 강사'로 '생각과 말의 힘'에 대해 가르치는 '자기계발 동기부여' 강사, 역사신학 및 대중문화 연구교수이며 심리치료 상담으로 사람들을 돕고 있는 교수목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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