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터졌다. 이번엔 한탄강이다.
정부가 22일 서울 세종로 정부중앙청사에서 '임진강 유역 홍수대책 특위'를 열어 홍수조절용 한탄강 댐을 건설하기로 최종 결정했다.
그러자 한탄강 유역인 경기도 철원·연천·포천 주민 1500여명이 정부중앙청사 맞은편에 있는 시민열린마당에서 무기한 농성에 들어갔다. 공공사업을 둘러싼 갈등이 재연된 것이다.
너무 흡사하다. 이전의 공공사업들, 방폐장건설과 새만금 간척, 그리고 천성산·사패산 터널 공사를 둘러싼 갈등양상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모습이다. 핵심문제는 역시 '수치'다.
조작된 수치를 댐 설립 근거로 제시
경과부터 살피자. 한국수자원공사가 홍수조절 용량 3억 5천만 톤 규모의 한탄강 댐 기본계획을 확정한 건 2001년. 즉각 반발이 야기됐고 2004년에 대통령 직속 지속가능발전위가 조정에 나섰지만 실패하자 지난해 8월 총리를 위원장으로 하는 '임진강 유역 홍수대책 특위'가 바통을 이어받았다.
정부가 주체를 바꿔가며 한탄강 댐 건설논의를 추진하는 동안 끊이지 않고 제기된 문제가 바로 '수치 조작'이었다.
'한탄강 댐 반대 철원·포천·연천군 공대위'는 지난해 9월 9일 열린 '임진강 유역 홍수조절 특위' 회의자료가 조작됐다고 주장했다.
초당 홍수발생량을 96년 2만4000㎥, 97년 7000㎥, 99년 2만400㎥라고 적시했지만, 이는 한탄강 댐 상류지역에서 발생한 피해라는 점 등이 빠진, 조작된 수치라는 게 공대위의 주장이었다.
주목할 점은 이런 '조작' 주장이 나온 시점이다.
'임진강 유역 홍수조절 특위'가 회의를 열기 넉 달 전인 지난해 5월, 감사원은 건설교통부와 수자원공사에 대한 감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한탄강 댐 상류의 홍수량은 크게, 댐 하류의 홍수량은 작게 발생하도록 조작했다며 댐 건설계획을 전면 재검토하라고 지시한 바 있다.
한탄강 댐 건설 논의 주체가 '지속가능발전위'에서 '임진강 유역 홍수조절 특위'로 넘어간 결정적인 이유가 바로 감사원 감사 결과 때문이었는데도 '임진강 유역 홍수조절 특위'는 그 이전의 수치를 그대로 사용했다. 그리고 어제 한탄강 댐 건설을 최종 결정하면서도 역시 거의 흡사한 수치를 근거로 제시했다.
문제는 바로 여기에 있다. 공공사업의 필요성을 제기하고 정당성을 강화해야 할 '수치'가 논란거리가 된다. 그 무엇보다도 객관적이어야 할 환경영향 조사 결과에 대해 불신이 팽배해지고 그것이 갈등으로 이어진다. 그 탓에 공공사업은 수년 동안 공전하면서 예산을 갉아먹는다.
어느새 '법칙'이 되다시피 한 '공공사업 갈등 모델'이 한탄강 댐 건설 사업에서도 어김없이 재연되고 있다.
갈등의 주체가 돼버린 정부
다른 점이 있긴 하다. 이전의 공공사업과는 달리 한탄강 댐 건설 사업엔 감사원이 등장한다. 환경단체나 주민단체의 '일방적인' 주장이 아니라 정부 기관인 감사원의 '객관적인' 의견이 이미 표명된 상태다.
그래도 소용없다. 감사원 의견도 정부의 결정을 되돌리지 못했다. 상황이 이렇다면 감사원 의견은 거꾸로 작용할 공산이 크다. 환경·주민단체의 한탄강 댐 건설 반대투쟁의 정당성을 강화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는 말이다.
어떻게 풀 것인가? 지난 5일 한명숙 총리는 환경의 날 기념사를 통해 이렇게 밝혔다.
"국책사업 추진에 따른 사회적 갈등 해소에 총력을 다 하겠다."
의지는 좋으나 방도는 막막하다. 정부는 이미 갈등의 당사자가 돼 버렸다. 방법은 협상을 하거나 강행을 하는 것뿐이다. 하지만 쉽지 않다. 협상을 하려면 한탄강 댐 건설 사업의 출발점인 '수치'부터 재검토해야 한다. 강행하려면 반발을 물리적으로 눌러야 한다. 어느 것도 쉽지 않다.
법원으로 눈길을 돌리지 않을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새만금이 그랬고, 천성산이 그랬던 것처럼 최종 판단을 법원에 구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물론 판정 대상은 '수치'다. 홍수량과 홍수조절량의 적정성에 대한 판단이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