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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청각장애인 조영찬씨가 제16회 일본시청각장애인대회에서 동경대 연구원 시각장애인 전영미씨의 도움을 받아 한국 시청각장애인의 삶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 서정일
'볼 수 없는 것'을 시각장애라 하며, '듣지 못하는 것'을 청각장애라 한다. 시청각장애라 하면 '보지도 듣지도 못하는 중복장애'를 말하는데, 이는 일반인이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힘든 중증장애다.

대전에 살고 있는 조영찬(36)씨. 그는 태어날 때부터 빛을 겨우 알아보는 정도의 눈과 가까운 곳에서 내는 큰 소리를 들을 수는 있지만 해석을 할 수 없는 고도난청으로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며 36년간을 살아온 시청각장애인이다.

그가 지난 18일부터 22일까지 4박 5일간 일본 오사카를 다녀왔다. 일본 동경대학교 첨단과학기술연구센터 베리어프리분야 후쿠시마 사토시 교수의 초청으로 제16회 일본 전국 시청각장애인 대회에 한국 대표로 다녀온 것이다.

조씨는 출발하기 전에 "한국의 시청각장애인을 대표해서 가는 만큼 관련 자료를 모아보려 여러 곳에 알아봤지만 한군데에서도 도움을 받을 수 없었다"며 "한국에는 시청각장애인(중복장애인)에 대한 자료도 없고, 파악도 안 되어있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이미 100여 년 전에 미국에서는 시청각중복장애인인 헬렌 켈러가 있었으며, 일본도 시청각 중복장애에 대해 30여 년 전부터 인식하기 시작한 점에 비추어 보면 한국은 늦어도 한참 늦은 모양새다.

공항에서 조씨는 "미국과 일본 등 선진국에서는 시청각장애인 대회가 활성화되어 있고 (시청각장애인들이) 열심히 사회참여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바 있다"며 "꼭 가보고 싶었는데…, 좋은 기회가 온 만큼 많은 것을 배워 국내의 시청각 장애인들도 활발하게 사회활동을 할 수 있게 도움을 주고 싶다"고 소감을 전했다.

▲ 일본시청각장애인 대회에 참석한 조영찬씨가 평소 만나 보고 싶었던 동경대 베리어프리 분야 후쿠시마 사토시 교수를 만나 공통관심사인 시청각장애인에 대한 생각들을 얘기하고 있다
ⓒ 서정일
이번에 조씨를 초대한 후쿠시마 사토시 교수는 이미 알려진 대로 세계 유일의 시청각 장애인 교수이자 <타임>지가 선정한 아시아의 5대 영웅 중 한 명이다. 국내에도 그의 자서전이 소개된 바 있다.

지난해 한 차례 일본여행을 다녀온 경험이 있는 조씨는 자신의 처지와 같은 시청각중복장애인이며 사회적 연구 업적을 이룬 후쿠시마 교수를 꼭 한번 만나보고 싶다는 뜻을 지인에게 전한 바 있다. 이후 조씨와 후쿠시마 교수는 서로 서신 교환을 하다 결국 후쿠시마 교수의 초청으로 일본에서 열리는 시청각 장애인 대회에 참석하게 됨으로써 결실을 보았다.

조씨는 적어도 장애인에 대한 것만큼은 일본을 욕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가 40여 년 가까이 살아온 한국에서 장애인에 대한 편견을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기에 사회 전반적으로 구석구석 장애인을 세심하게 배려하는 일본에 점수를 더 줄 수밖에 없는 생각이다.

조씨는 "100전의 미국과 지금의 한국은 어디가 더 발전했을까요"라고 질문을 던지며, "100년 전에 이미 헬렌 켈러가 활동할 수 있는 여건을 100년이 지난 이후에도 왜 우리는 만들지 못하고 있느냐"고 아쉬워했다.

일본 전국 시청각장애인 대회 참가기

일본의 시청각장애인 대회는 일본의 경륜진흥회와 담배산업(주) 등과 같은 기업의 후원과 후생노동성 및 공공단체와 같은 공공의 후원으로 열린다. 전국시청각장애인협회가 주관을 하지만 토모노카이라는 각 지부의 시청각장애인 모임이 모여 기획하고 운영한다.

시청각장애인, 장애아동, 그리고 그 가족 및 관련한 사람들 모두 연 1회 모여 정보교환을 하고, 시청각장애인 복지의 현 모습에 대해 토론한다. 통역, 활동보조 기술의 향상과 복지증진을 위한 목적을 두고 있는데 행사 프로그램을 살펴보면 알찬 면이 엿보인다.

특히, 평소 대화와 멀어져 있는 시청각장애인들을 위해 마련한 '담화실'은 매일 밤 12시까지 앉을 자리가 모자랄 정도로 성황이다. 또 피부손질, 화장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는 화장교실, 수염과 두피 관리하는 것 등을 교육하는 멋 내기 교실 등은 세심한 면이 있어 보인다.

또 보지 못하기에 향기나는 종이인형을 만드는 취미교실 등도 시청각장애인을 배려한 프로그램이었으며, 평소 자신이 만든 작품 등을 전시하고 판매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주는 것도 돋보였다. 매일 성황을 이뤘던 장애인을 위한 각종 기기전시회는 이 기회가 아니면 쉽게 찾아볼 수 없는 것들로 메워졌다.

시청각장애인 가족 모임인 후우와 관계자는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지만 아이들은 끊임없이 부모와 의사소통을 하려 한다"며 "아이들이 몸으로 느끼기에 신체적 접촉을 자주하고 웃을 때면 크게 웃고 괴로울 때는 실컷 울면서 부모의 심정을 솔직하게 표현해 줘야 한다"고 설명했다.

후쿠시마 교수도 가족과 친지, 교사, 이웃들의 역할을 강조하며 각종 매체와 차단된 시청각장애인들에게 있어 정보교환의 창구는 오로지 자신의 주위 사람들로서 그들이 사회 참여에 대해 지속적으로 얘기해줘야 시청각장애인들이 사회에 나와 함께 어울릴 수 있다는 것을 강조했다.

후쿠시마 교수의 제자이며, 한국인 시각장애인 최초로 동경대 박사학위를 취득한 전영미씨는 "나도 시각장애인이지만 시청각장애인의 보조역할을 처음 해 봤다"며 "생각보다 어려운 점이 많았다"고 말했다.

4박 5일 동안 하나라도 더 느껴보기 위해 쉼 없이 각 프로그램에 참석했던 조영찬씨는 일본의 시청각장애인들이 이토록 활발하게 활동하는 줄 몰랐다면서 한국에 돌아가면 이런 모습들을 한국에 있는 시청각장애인들에게 전하고 사회참여를 유도하겠다고 말한다.

4박 5일이라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조씨에게는 평생에서 이토록 긴 시간은 없었을 것임을 확신한다. 이토록 많은 대화를 하고 음악을 느껴보면서 몸을 흔들 수 있었던 시간, 그의 말대로 많은 것을 느낀 만큼 한국의 시청각장애인들을 위해 많은 것을 풀어놓겠다고 한다. 조씨로 인해 한국의 시청각장애인들에게도 실낱같은 빛이 보이길 기원해 본다.

덧붙이는 글 | SBS 유포터 뉴스에도 송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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