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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박사 이상필 홍보팀장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황철주씨. 황철주씨는 전동휠체어에 몸을 묶어야 할 정도로 심한 장애를 가지고 있었지만 여행내내 밝은 모습을 잃지 않았다.
ⓒ 심은식
지난 10월 15일 아침 6시 50분 인천공항 출국장. '비장애인의 편견'에서 보자면 그리 흔하지 않은 풍경이 연출됐다. 휠체어를 탄 이들과 앞이 안보이거나 몸이 불편해 타인의 도움을 얻어야 하는 이 등 14명의 장애인이 삼삼오오 모여들었던 것이다.

<오마이뉴스>와 (주)여행박사가 함께한 '장애인에게 여행의 자유를' 행사에 사연접수를 한 이들은 모두 160여 명. 제한된 15명을 선별해야 하는 주최 측의 고민은 심각했다. 응모된 이야기 한 줄 한 줄, 어느 것 하나 소중하고 간절하지 않은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나이와 장애의 종류 등 여러 사안을 감안해 15명이 결정됐지만, 그 중 척수장애 1급의 홍미경씨가 출발을 앞두고 안타까운 부상을 입어 결국, 이 날 함께 하게 된 이는 모두 14명. 각자의 보호자 1명과 공중보건의 김경민씨가 동행했고 신창연 사장을 비롯한 여행박사의 직원 5명이 여행의 모든 일정을 책임졌다.

관광일정은 15(토)일부터 18(화)일까지 3박 4일간 일본 큐슈지방의 나가사키와 후쿠오카 지역. 다소 몸이 불편한 점을 고려해 무리한 일정은 잡지 않았지만 하우스텐보스와 펄시 리조트, 구라바 엔 공원, 후쿠오카 타워, 마린월드 등 오히려 일반 여행상품을 능가하는 알찬 일정이 계획되어 있었다.

▲ 고장난 휠체어를 수리하고 있는 공항 직원. 여러가지 문제들이 있었지만, 모두 여행 앞두고 들뜬 모습이었다.
ⓒ 심은식
"너무 기쁘고 믿어지지가 않네요"

이들 중에는 평소 집 밖은커녕 방문 밖으로 나가는 것조차 힘든 이들도 있다. 장애가 다소 가볍다고 해도 그간 이들에게 여행은 낯설기 만한 단어였다. 그래서인지 새벽잠을 설치고 나온 것이 분명함에도 누구 하나 피곤해하는 기색이 없었다.

"물론 처음이지요. 국내에서는 수학여행이나 소풍 정도가 여행의 전부라고 할까요. 집에서 간다고 해봐야 가까운 공원 정도죠. 걱정은 안 돼요. 너무 기쁘고 믿어지지가 않네요."

뇌성마비와 언어장애를 가진 박재모(버드네중2)군의 어머니 정명숙씨는 쉬지 않고 흐르는 아들의 침을 닦아내면서도 행복한 미소를 잃지 않았다. 재모군의 경우 뇌병변장애가 있어 말을 할 수 없는 상태. 그러나 환한 미소로 기쁨을 표현했고 다른 모든 이들 역시 간 밤 너무나 흥분이 돼 잠을 설쳤다며 이구동성으로 "꿈만 같다"는 소감을 전했다.

▲ 하우스텐보스를 둘러보고 있는 재모. 비록 말은 하지 못했지만 표정으로 모든 것을 이야기했다.
ⓒ 심은식
잠시 후 출국수속이 있었고 탑승이 시작됐다. 휠체어에 탄 이들에게 혹 비행기 탑승이 어려울까 염려됐지만 여러 보호자들과 승무원의 친절한 도움으로 큰 무리 없이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참가자 이종승씨에게 비행기 이용에 불편이 없는지를 묻자 "비행기 자체가 불편하지유, 장애 때문에 불편하진 않아유"라는 푸근한 사투리가 돌아온다.

9시, 드디어 비행기는 한국을 떠나 일본 나가사키로 기수를 틀었다. 목적지까지는 겨우 한 시간 남짓, 지척에 있는 곳이지만 그간 이들에게는 비장애인들의 열 배, 백 배의 기다림과 인내의 시간이 필요했던 것이다.

공항에서 입국수속이 끝나자 소박하지만 따스한 환영행사가 기다리고 있었다. 나가사키 현의 관광연맹에서 마중을 나와 주었던 것. 전문이사인 쿠보씨는 꽃다발과 선물을 전해주며 안전하고 즐거운 여행이 되길 바란다는 인사를 전해와 일행 모두에게 예상치 못한 기쁨을 안겨 주었다.

▲ 장애인용 저상버스. 저상버스 뿐 아니라 일본의 장애인 시설은 우리보다 훨씬 높은 수준이었다.
ⓒ 심은식
공항 청사를 나와선 두 대의 버스에 나누어 이동했다. 시각과 청각 등의 장애를 가진 이들에겐 일반 관광버스의 탑승에 무리가 없었지만 휠체어를 이용해야 하는 이들을 위해 차 뒤에 자동승강기를 탑재한 장애인 전용의 저상버스가 제공됐다.

여보, 이 꽃이 라벤다랍니다. 향기를 맡아 보세요

첫 방문지는 '일본 속의 네덜란드'라는 애칭이 붙은 하우스텐보스. 어느 곳을 둘러봐도 그림엽서 같은 풍경에 모두를 감탄을 연발했다. 아름다운 수로를 타고 흐르는 유람선에 승차할 때도 불편은 없었다. 휠체어를 탄 그대로 가볍게 몸을 실을 수 있었던 것. 그 외에도 관광지 안의 모든 시설들에 장애인들을 위한 배려가 담겨있어 관광에 큰 어려움은 없었다.

▲ 네델란드 마을을 그대로 옮겨 놓은듯 꾸며둔 하우스텐보스에서 찍은 단체사진.
ⓒ 심은식
이어 날씨마저 눈을 녹이는 봄날처럼 화사하자 한국에서 담아왔던 약간의 염려와 긴장을 털어내고 각자 가을의 정취와 여행의 자유에 빠져들었다. 여행 기간 내내 굵은 땀방울을 쏟아내며 고생한 김대정(여·32) 가이드는 출발하기 전, 태풍이 올 수 있다는 기상예보에 많은 걱정을 했지만 막상 너무도 따스한 날씨에 한시름이 놓인다며 자기 일처럼 기뻐했다.

"그동안 많은 경험이 있었지만 이번 같은 행사는 처음이라 무척이나 설렜거든요. 사실 특별한 행사이니 만큼 사전에 나름대로의 '컨셉트'를 잡아왔어요. 그런데 막상 아이처럼 기뻐하는 장애인분들의 반응을 보니 부질없는 짓이란 생각이 드네요. 있는 그대로, 마음 가는 대로 해 드리려고 합니다."

그녀의 이야기 뒤로는 조영찬(남·35), 김순호(여·43)씨 부부가 꽃밭의 향기에 취해 있었다. 조영찬씨는 앞을 볼 수 없는데다 청력마저 매우 약한 중복 장애인이다. 부인 김순호씨는 어릴 때 입은 척추장애로 키가 조금 작은 것을 제외하면 비장애인과 다를 바 없어 항상 남편의 눈과 귀가 되어 주고 있었다.

▲ 꽃과 물을 좋아했던 조영찬씨. 볼 수 없다해서 여행을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편견이다.
ⓒ 심은식
가까이 다가가자 부인이 남편의 손을 잡고 이 꽃, 저 꽃을 설명해 주고 있었다. 순호씨의 설명이 끝나면 영찬씨는 꽃을 만져보고 코를 가까이 대며 눈이 아닌 마음으로 사물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들 부부는 여행기간 내내 한시도 서로의 손을 놓지 않아 함께 참가한 이들의 애틋한 부러움을 샀다. 가는 곳마다 자신만 볼 수 있는 것이 미안해 모든 물건을 만져보게 하던 아내. 그리고 그녀가 기뻐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는 영찬씨의 마음은 응모한 사연에도 절절히 배어있다.

'사람은 장애인을 차별하지만 에로스는 장애인을 차별하지 않는다'며 주변 남자 중 가장 중증에 경제력도 없는 자신과 결혼 해 주어 감사하다는 그의 이야기는 읽어 내려가노라면 어느새 목이 따끔거림을 느끼게 한다. 그의 말대로 그들 부부에게 있어 여행은 단순히 '감각기관'의 쾌락만을 위한 것이 아닌 듯.

▲ 조영찬(사진 오른쪽), 김순호씨 부부. 척수장애를 가진 김순호씨가 시각장애와 청각장애를 함께 가지고 있는 남편의 손바닥에 글을 쓰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심은식
여행지 곳곳에서 돋보이는 장애인을 위한 꼼꼼한 배려

첫 날의 관광이 끝난 저녁시간, 하우스텐보스 입구에 위치한 젠니쿠 특급호텔 연회장에는 서로의 마음을 여는 자리가 마련됐다. 맛나고 정성스러운 음식을 앞에 두고 환영과 우의를 다지는 연회가 열린 것.

각자를 소개하며 참가하게 된 소감을 나누는 시간. 하반신 장애가 있는 이기철(남·62)씨는 "아내자랑하면 팔불출이지만 아내가 보내준 사연 덕에 이렇게 좋은 구경을 하게 됐다"며 웃음을 자아냈고 조영찬, 김순호씨 부부는 "아내에게 가장 역할을 못 해 미안하다", "오히려 저를 그만큼 사랑해 주는 남편의 열정을 못 따라가는 것 같아 미안하다"며 다시 한 번 뜨거운 부부애를 과시해 많은 박수를 받았다.

그렇게 모두들 행복에 취해 즐거운 웃음을 터뜨렸고 여행 첫 날의 추억이 저물고 있었다. 다음 날인 16일 오전, 일행은 나가사키현 북부에 위치한 사세보로 이동해 여러 섬으로 이루어진 쿠주쿠시마 지역을 운행하는 유람선에 몸을 실었다.

▲ 쿠주쿠시마 지역을 운항하는 유람선의 장애인용 엘리베이터. 배의 선원이 직접 나와 안내를 했다.
ⓒ 심은식
일본의 여행지에서 돋보이는 건 장애인들을 위한 세심한 배려다. 이 날의 유람선 역시 배 안으로 들어가는 과정에 있어 아무런 거리낌이 없었다. 그리고 유람선 안에서 가장 먼저 마주치게 되는 건 장애인 표시가 되어 있는 엘리베이터다. 3층에 위치한 가장 높은 갑판까지 스스로의 힘으로 올라가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

덕분에 여행단 모두는 시원하고 탁 트인 바다를 마음껏 즐길 수 있었다. 장애 1급의 김효진(여·36)씨는 예전에 거제도에 간 적이 있다며 당시 함께 간 남자 세 사람이 휠체어를 끌고 밀고 올리고 내리고 하는 덕에 너무 미안했다는 경험을 들려줬다.

"사실 저도 들렸다 내렸다 하니까 고생하며 봤다는 기억 뿐이지 재미있다는 마음이 들지 않아요. 여행은 즐겁기 위해 하는 것 아닐까요. 이 곳이라면 혼자라도 올 수 있을 것 같아요."

모두가 넋을 잃고 바라보는 아름다운 바다 풍경, 하늘은 높았고 바람은 부드러웠다. 그들에게 이런 기회가 언제 다시 올 수 있을까.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장애인에게 여행은 어떤 의미일까. 이어진 김효진씨의 말을 덧붙인다.

"장애가 있다는 그 자체만으로 우리는 생활반경을 벗어날 수 없답니다. 나만 힘든 게 아니잖아요. 특별히 강심장이 아닌 이상 다른 이를 고생시켜가며 즐거워 할 수가 없죠. …우리나라에서는 가난하지 않아도 혹은 가벼운 장애만 있는 사람이라도 여행의 기회는 없답니다."

▲ 호텔에서 바라본 하우스텐보스 풍경.
ⓒ 심은식
장애인에게 있어 여행이 욕심이 아닌 선택의 영역에 들어갈 수는 없는 것일까. 게다가 그들을 더욱 슬프게 만드는 것은 밖으로 나온 장애인들을 향한 곁눈질이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안쓰러운' 눈빛이 아닌, 그저 있는 그대로를 투과하는 일상의 시선일 뿐이다.

뱃머리를 돌려 돌아나오는 길, 급회전으로 선체가 기우뚱하자 일제히 하얀 이를 드러내고 즐거운 비명을 질렀다. 햇살 아래 그들의 웃음이 반짝였다. 문득, 언제쯤 그들은 주위 사람들의 '눈치'를 보지 않고 '여행'이라는 단어를 입에 올릴 수 있을지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덧붙이는 글 | 기사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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