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원직을 포함해 모든 것을 걸겠다."
박형준 한나라당 의원의 말이다. 박 의원은 25일 경품용 상품권 업체들이 회원으로 있는 협회가 자신이 조직위원장으로 있는 지역구(부산 수영) 축제에 1억원의 지원금을 냈다는 사실이 드러나자 기자회견을 열어 "상품권 업체 선정에 관여한 사실이 없다"며 이같이 밝혔다.
권력형 비리는 파헤치고, 도박은 진흥한다?
사행성 오락게임인 '바다이야기' 사태가 터지고 박형준 의원은 뉴스의 중심에 섰다. 상품권 업자들에게 넘겨받은 녹취록을 통해 '여권 실세 배후설'과 또 일본의 조폭 자금이 국내에 유입됐을 수 있다는 가능성도 제기했다.
이번 사건이 '권력형 게이트'인지는 검찰 수사 등을 통해 드러나겠지만 '정책실패'라는 점에선 정부, 여야 공히 인정하는 바다. 주무부처인 문화관광부의 책임론은 이미 공론화되었다. 국무총리도 문화부를 방문한 자리에서 사실상의 대국민 사과를 했다.
그런 중에 '국회 책임론'도 제기되었다. 국회 문광위가 게임산업진흥법 처리과정에서 '진흥'에만 열을 올리고 '규제'에 대해서는 소홀했다는 점이다. 그 과정에서 박형준 의원의 발언도 논란이 되었다. 박 의원은 당시 법안 심사소위에서 "사행성 게임도 게임"이라며 현재 문제가 되고 있는 성인용 아케이드 게임도 진흥법의 테두리에서 관리해야 한다는 주장을 폈다.
여기에 여당 의원들도 가세했고, 그 과정에서 "사행성 게임은 따로 빼서 도박으로 관리해야 한다"거나 "진흥하는 곳에서 규제를 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며 별도의 규제위원회를 두어야 한다는 의견은 묵살되었다.
이 같은 사실이 공개되자 박 의원의 홈페이지에는 비난 여론이 빗발쳤다. 핵심은 박 의원의 '이중성'이다. 박 의원은 <오마이뉴스>를 통해 당시 국회 문광위 속기록에 대한 문제점이 보도되자 "문화부에 면죄부를 주는 것"이라고 아전인수격 해석을 했다. 또 문광위에 참석해서는 언론보도의 출처로 문화부를 겨냥, '입단속'을 시키기도 했다.
그러면서 박 의원은 여전히 "사행성 게임은 게임법 안에 넣고 문화부가 정책적으로 책임지고 관리해 나가야 한다"며 정부의 관리 단속의 책임이라고 강조했다. 맞는 얘기다. 사업시행 결정 과정부터 사후 관리, 단속까지 문화부의 책임은 총체적이다. 그렇다고 입법부의 책임을 면할 순 없다. 행정 행위의 근거는 법이다. 법은 국회에서 만든다.
게임진흥법에는, 이것이 모법(母法)이 되는 제정법임에도 불구하고 사행성 게임에 대한 명확한 정의조차 없다. 이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해온 손봉숙 민주당 의원은 "정의는 법안 제정의 출발"이라며 준비 중인 개정안에서 "게임물을 이용함에 있어 우연적 방법에 따라 득실을 결정해 재산상의 이익 또는 손실을 주는 것으로서 사행심을 과도하게 유발하는 게임물을 말한다"는 정의를 삽입했다. 박 의원은 시행령에서 규정하고 있다고 하지만 위상 차이는 크다.
또한 작년 6월 발의된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 법안은 잠자고 있었고, 경품용 상품권 폐지법안은 자동 폐기되었다. 각 기관으로 분산되어 있는 사행산업에 대한 종합적 관리·감독하는 법안과 사행성 조장의 핵심인 경품용 상품권을 없애는 법안에 대한 처리에 미온적이었던 것이다.
뒤늦게나마 사행성 게임을 아예 도박으로 분류해 규제하는 사특법(사행행위 등 규제 및 처벌특례법) 개정안도 추진되고 있다. '진흥법'에서 빼내 '규제법'에서 다루자는 얘기다. 손봉숙 의원은 "현행 체계로는 경찰이 단속을 해도 법률 미비로 구속이 안 된다"며 "그걸 업자들이 알기 때문에 변호사를 동원하고 벌금형으로 때우려고 한다"고 말했다.
단속망 피해가는 업주... 단단한 입법 절실
사행성 게임의 폐단이 성인용 아케이드 게임은 물론 PC방, 하물며 초등학생 고사리 손에까지 미쳐 있다는 최근 상황에서 박 의원은 여전히 사행성 게임도 '진흥의 대상'이라는 주장을 펼 수 있을지 의문이다.
게임진흥법안이 국회에서 심의되고 있을 당시 이미 심각성은 지적되었다. 뒤늦게 나마 문제를 인식한 정부는 경품용 상품권을 제공하는 아케이드 게임장을 단계적으로 폐쇄하기로 방침을 내놓기도 했다. 작년 12월 국무총리실에선 "문제가 되고 있는 바다이야기, 황금성 등 게임은 원천적으로 불법"이라며 "사행성이 강한 게임의 경우 원칙적으로 영상물등급위원회의 심의 대상이 아니다"는 발표도 했다.
하지만 국회는 다른 방향에 있었다. 지난 4월 통과된 게임진흥법에는 "게임산업은 차세대 핵심문화산업으로 부가가치가 높은 산업"이라며 '진흥론' 일색의 제정 의의가 설명되어 있다. 사행성에 대한 경고는 없다. 당시 문광위원장이었던 이미경 열린우리당 의원은 "사태를 총체적으로 인식하지 못하고 검·경 단속에 의존하는 소극성을 보였다"고 자성의 목소리를 냈다.
한나라당에는 현재 '권력형 도박 게이트 진상조사특위'가 만들어져 운영되고 있다. 그 특위의 이름처럼 '바다이야기' 사태로 불거진 사행성 게임 문제가 '권력형' 문제인지에 대한 의혹이 밝혀지기 바란다. 아울러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도박'의 문제다. 우리 사회가 '도박공화국'으로 치닫는데 국회의 책임은 없는지 되물어야 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국회 책임론'을 지적한 언론에 대해 "문화부에 면죄부는 주는 것"이라며 '왜곡보도'를 운운한 박형준 의원에게 기자 역시 유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