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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카와 나는 25kg 넘는 배낭을 메고 지리산 도보여행을 시작했다.
조카와 나는 25kg 넘는 배낭을 메고 지리산 도보여행을 시작했다. ⓒ 조태용
그래도 어쩌겠는가. 내가 선택한 길이 바퀴로 가는 여행이 아닌 걷는 여행인 것을 말이다. 인류의 최대 발명품 중에 하나인 바퀴를 포기한 여행자가 선택 할 수 있는 방법은 걷는 것뿐이다.

지리산을 빙 둘러서 걸어보겠다는 계획을 어찌 알았는지 누이는 한 달 전부터 전화를 해서 조카의 여름 방학 때를 맞춰 함께 가라며 성화였다. 누이의 전화는 그 후 일주일 간격으로 벨을 울렸고 드디어 마지막 전화가 울렸다.

"야! 여그 광쭌데.. 얼마나 걸리냐 한 한 시간이면 도착하지."
"어, 한 시간 20분쯤 걸리니까 내가 알아서 픽업하러 갈께."

구례 터미널에 도착한 누이는 놀라보게 커버린 조카와 함께 있었다. 1년 전에 보고 처음 본 조카는 중학생 때와는 전혀 다르게 다부져 보였다. 타지로 보내는 고등학교 아들이 염려스러운지 누이는 조카와 함께 구례까지 동행을 했다.

"삼촌, 이따 나하고 팔씨름 한 번 해? 내가 우리 반 팔씨름 대장이라니까."

조카는 나를 보자마자 팔씨름부터 하자고 졸랐다. 나도 저만 할 때는 만나는 사람마다 나보다 힘이 센지 약한지 알아보려고 했었다. 내가 힘이 더 세다면 내가 저 사람보다 위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세상을 움직이는 힘이 팔에서 나오는 힘이 아닌 권력과 돈이라는 사실을 알기엔 아직은 조금 어린 나이인지도 모른다. 적어도 고등학교 1학년의 세계에서는 팔 힘이 권력과 돈을 앞설 수 있기 때문이다.

"야가 그래도 매형 닮아서 산을 잘 타고 잘 걸어 다니니까 걱정 안 해도 될 것이다."
"삼촌 걱정 하지 마, 삼촌 잘 따라 갈 테니까."
"그래."
"걱정하지 말라니까. 삼촌."

조카는 걷는 것쯤은 문제없다면 자신만만해있었다. 하지만 지리산을 8월 한 낮에 걷는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조카는 가늠이나 하고 있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어 나는 다시 조카의 얼굴과 기대에 부풀어 있는 조카의 종아리 근육을 살펴보았다. 몇 년 만에 찾아왔다는 살인적인 폭염으로 구워질데로 잘 구워진 8월의 아스팔트를 걷는 도보여행이 조카나 나에게 그렇게 쉽게 끝날 것 같지는 않았다.

화개를 떠난 우리는 신기 검두를 지나 악양으로 향했다.
화개를 떠난 우리는 신기 검두를 지나 악양으로 향했다. ⓒ 조태용
다음날 누이는 광주행 버스를 타고 떠났다. 우리는 화개로 가는 버스에 올라탔다. 화개행 버스는 나와 조카를 포함해서 10여명의 승객을 태우고 출발했다. 그 중 우리처럼 배낭을 멘 사람은 딱 우리뿐이었다. 화개 승강장를 내린 우리는 곧장 악양을 향해 출발했다.

오전 10시를 넘긴 아스팔트는 이미 달아오르고 있었지만 나와 조카나 출발하는 여행자의 호기로 가득 차 있었다. 조카는 이번 여행을 모험으로 생각하고 있었는지 이번 모험이 자기 인생 최대의 모험이 될 것이라면서 흥분해 있었다.

"삼촌 여기가 화개장터야. 아무것도 없네."
"뭐가 있어야 하는데?"
"그래도 뭐가 있어야 하는 것 아니야?"

예전에는 하동포구에서 지리산 산골에서 구례, 남원, 인월에서 넘어온 장사치로 성황이었다는 화개장터는 이제는 장터로써의 기능을 상실한 관광객을 위한 장소로 변해 있었다.

화개장터에서 여행을 시작한다는 말을 했을 때부터 조카는 화개장터에 가면 조영남의 노랫소리처럼 힘차게 뭔가가 울려 퍼지고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하지만 화개장터에는 조영남의 노랫소리나 왁자지껄하는 삶의 소리는 들을 수 없다. 잘 차려 입은 관광객들이 장터의 일정을 순회하는 모습밖에는 볼 것이 없었다.

조카가 무엇을 기대했는지 모르겠지만 그것은 이곳에는 없었다. 조카는 화개장터를 보고 적잖이 실망을 했는지 다음 행선지를 물었다.

"삼촌 이제 우리는 어디로 가는 거야?"
"악양."
"악양?"
"그래 악양."
"악양에 가면 또 어디 가는 거야."
"회남재를 넘을 거야."
"회남재를 넘으면?"
"묵계치를 넘을 거야?"

그 다음엔 어디냐고 물을 줄 알고 머리를 굴려가며 다음 고개를 생각하다 지도를 꺼내 봐야 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조카는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시원한 바람 한 줄기가 배낭 사이로 불었다.

덧붙이는 글 | 농산물 직거래 참거래 농민장터에도 올립니다. www.farmmate.com

다음 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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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에서 생산자와 소비자를 연결하는 친환경 농산물 직거래 참거래농민장터(www.farmmate.com)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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