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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환 기자] '바다이야기'가 대한민국을 휩쓸고 있다. 문화관광부와 청와대는 물론 최근에는 국회까지 '해양 태풍'속에 빨려 들어갔다. 온통 '네탓내탓' 공방이다. 하지만 무풍지대가 있다. 바로 언론이다.

국회 책임론 어떻게 대두됐나

▲ 지난 24일 한나라당 권력형 도박게이트 진상조사 특별위원회 소속 의원들이 바다이야기 관련 성역 없는 수사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여의도통신
사행성 오락게임 '바다이야기' 확산에 대한 국회 책임론은 관련 상품권 업체들이 여야 중진에 고액의 후원금을 기부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대두되기 시작됐다.

이어 <한겨레>가 결정타를 날렸다. <한겨레>는 24일 1면 머리기사를 통해 "정부가 지난해 바다이야기 등의 성인 오락을 게임이 아닌 사행성 도박행위로 규정해 엄격히 단속하려 했지만, 국회가 게임 산업 진흥 등을 이유로 제동을 걸었던 것으로 드러났다"며 다시 4면에 "지난해 11월 22일 게임산업진흥에 관한 법안을 심사한 내용을 보면, 정치권이 사행성 오락기 문제에 얼마나 무신경했는지가 여실히 드러난다"고 보도했다.

다음날 다른 신문들도 일제히 '국회 난타'에 가세했다. <동아>는 '문광위, 도박게임 방지 직무유기'라는 제목으로 "사행성 오락실 및 경품용 상품권 발행 관련 법규를 처리하면서 국회가 심의를 치밀하지 못했다"고 전했고 <문화> 역시 "지난해 11월 게임산업진흥법안 심사 당시 국회 속기록에 나타난 문광위 모습은 '사행성 규제'와는 거리가 멀었다"고 보도했다. 그밖에 다른 신문들 역시 비슷한 논조로 국회를 공격했다.

국회는 정말 '무신경'했는가

▲ 조선일보에 언급된 문광위 소속 의원들. 좌로부터 우상호·이경숙·노웅래·박형준·박찬숙 의원
ⓒ 여의도통신
열린우리당 강혜숙 의원의 '경품권 상품권 폐지법안'에 "사행성 게임도 게임"이라며 제동을 걸고 나선 사실이 보도되면서 '집중 포화'를 맞고 있는 한나라당 박형준 의원이 지난 24일 당 홈페이지에 올린 글에서는 중요한 사실 하나를 확인할 수 있다.

그것은 작년 국감 때만 해도 국회가 '무신경'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박 의원은 "작년 국감 때 단연 쟁점이 됐던 것은 바다이야기를 포함한 불법 오락실 문제였다"면서 "상품권의 불법 유통 문제와 가짜 상품권 문제, 환전소 문제, 도박용 오락실 실태 등의 문제를 적극 제기했다"고 밝혔다.

이 같은 사실은 공교롭게도 <조선>이 '확실하게' 뒷받침하고 있다. 그것은 국회 책임론이 대두되기 전, 정부 비판이 대세였던 지난 21일 보도된 '작년 국감서 문제 제기...정부 1년간 방치'란 제목의 기사다.

이 기사에서 <조선>은 "최근 논란중인 바다이야기 등 사행성 성인 오락과 경품용 상품권 문제는 작년 9월 국회 문화관광위 국정감사장의 최대 이슈 중 하나였다"며 "바다이야기를 허가해준 영상물등급위원회의 도덕적 해이, 오락실 칩으로 전락한 게임 상품권에 대한 여야 의원들의 질책 등, 지금 제기된 의혹 대부분이 다뤄졌다"고 전했다.

특히 <조선>은 여야 의원들의 '유신경'을 일일이 소개해 눈길을 끌었다. "(영등위는) 1년 동안 각 분야별 심의위원이 고정돼 있는데다, 회의의 논의 과정은 생략된 채 심의 결과만 공개돼 공정성과 투명성에 의문이 제기된다"(노웅래 의원). "심의 과정 의혹, 회의록 허위 기재 등의 문제로 영등위가 위법의 총체적 집합기관이란 혹평을 받고 있지만, 현재 영등위 조직으론 문제를 개선할 수 없다. 새로운 대안적 기구를 구성해야 한다"(우상호 의원).

박형준 의원도 등장한다. "하루 상품권 발행한도는 1억5000만장으로 이를 금액으로 환산하면 7500억원 규모다. 이를 근거로 연간 유통 규모를 추산하면 27조원에 달한다"는 발언이다. "게임상품권 불법 유통으로 인한 시장 교란 가능성이 대두되고 있다"는 이경숙 의원의 지적이다.

박찬숙 의원의 상품권 발행업체 지정 과정에 대한 의혹 제기도 눈길을 끄는 대목이다. "유통중인 9종의 상품권 대부분이 2005년 상반기 인증을 취소 당했던 것들이다. '패자들이 부활한 이유'에 대한 해명이 필요하다"는 발언이 바로 그것이다.

언론은 '유신경'했는가

그렇다면 언론은 '유(有)신경'했는가? 방법은 간단하다. <조선>이 스스로 밝힌 것처럼, '지금 제기된 의혹 대부분이 다뤄진 작년 국감'을 언론들이 어떻게 보도했는지 따져보면 된다.

뉴스 전문 검색 사이트 KINDS와 <중앙> 홈페이지에서 작년 국감 기간에 '문광위'를 검색어로 입력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48건의 뉴스 중 '문광위 최대 이슈'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신문들은 국정홍보처 언론 대응 논란, KBS 경영 부실 논란 등 이른바 '싸움'에 주목했다. 국감 첫날 문광위 의원들의 한복 차림 그리고 이혁재씨 출연료 등 이른바 '말랑말랑한 뉴스'에도 관심을 보였다.(표 참조) 덕분에 이재오 의원이 "새벽에 직접 촬영한 몰래카메라를 틀며 성인 오락실의 문제점을 지적"한 것은 새로운 국감 풍속도로 간단히 언급되는데 그치고 말았다. 그나마 <문화>에서만 나타났다.

▲ KINDS 종합일간지(서울)와 중앙일보 홈페이지에서 검색어 '문광위' 입력 결과
ⓒ 여의도통신
이번에는 검색어로 <조선>에서 소개한 '유신경'의원들의 이름, 박찬숙·노웅래·우상호·박형준·이경숙을 하나하나 입력했다. 검색 결과는 조금 다르게 나타났지만, '문광위 최대 이슈'를 보기 힘든 현상은 여전했다.

가장 많은 보도를 기록한 것으로 집계된 박형준 의원(23건)은 신문·방송 겸영 문제를 제기하거나 KBS 경영 혁신안을 비판하는 등의 '방송 공격'이 신문들로부터 '호평'을 받았고, 이경숙 의원(17건)의 경우는 국정홍보처 언론 대응을 놓고 야당 의원들과 설전을 벌이는 과정이 가장 많이 노출된 것으로 나타났다. 두 사람 모두 '싸움'의 중심에 섰던 셈이다.

정수장학회 사회 환원 문제를 제기했던 노웅래 의원(16건)도 비슷한 경우였고, 박찬숙 의원(6건)은 MBC에 대한 상주 참사 책임 질타로 주목을 받았다. 우상호 의원(5건)은 욕설·음란으로 뒤범벅된 일본 현지 한국어 교재 소개가 신문들의 관심을 끌었다.

오직 단 한 신문에서만 작년 문광위 국감의 최대 이슈를 발견할 수 있었다. 작년 9월 28일자 <세계>는 "경품용 상품권 지정 사업은 연간 27조원 규모에 하루 유통량만 약 1500만장에 이르지만, 회수율은 고작 0.4%에 그칠 정도로 불법 유통이 만연해 있다"면서 "이런 상황에서 상품권 발행사는 ▲자산운용 수입 ▲이자 수입 ▲낙전 수입(5년 시한) ▲수수료 수입 등을 얻을 수 있으며, 이중 수수료 수입만 하더라도 최소 연 2700억원을 낼 수 있다"는 박형준 의원의 주장을 유일하게 보도했다.

먼저 언론은 철저한 자성을

▲ 지난 25일 국회 운영위 전체회의에 출석한 이병완 청와대 비서실장이 '바다이야기'와 관련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 여의도통신
이처럼 각 신문은 '바다이야기' 등에 철저히 무신경했다. '정쟁'을 비판하면서 '정쟁 보도'에만 열을 올리는 신문들의 보도 태도 때문이다. 이는 사실 어제 오늘의 일도 아니다.

2004년 국감 보도의 경우, 주요 일간지에 나온 관련 기사는 천 개가 넘는다. 하지만 이중 농림해양수산위 보도는 19개, 여성 상임위 보도는 단 6개에 불과했다. '민생 국감'에 무신경한 신문들의 '편식'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수치가 아닐 수 없다.

지난 24일 이병완 청와대 비서실장은 기자들과의 간담회에서 "(바다이야기)는 정부의 1차적인 책임이지만, 국회도 이 과정에서 뭘 했는지 따져봐야 할 필요가 있다. 언론도 책임을 느껴야 하지 않을까"라는 발언을 했다. 일부 신문에서 "어이없는 네 탓"이라며 이병완 비서실장을 몰아붙인 것은 당연한 일이다.

자칫 불통이 튈까 '앗! 뜨거'반응을 보일 수밖에 없었겠지만, 작년 국감에서 '바다이야기'에 대한 국회의 '유신경'을 신문들이 중요하게 다뤘다면, 11월에 문광위 소속 의원들이 게임산업진흥에 관한 법안을 그렇게 허술하게 처리했을까. 언론이 문광위 최대 이슈에 관심을 가졌다면 바다이야기가 '지금 같았을까' 말이다.

바다이야기가 썩어갈 동안 과연 언론은 무엇을 했는가. 혹시 정쟁 보도로 '재미'만 보기 바쁘지 않았나. 섣부른 비판(?)의 날을 세우기 전에 언론 스스로 자성이 필요한 대목이 아닐 수 없다.

물론 국회는 바다이야기 확산에 분명히 책임이 있다. 또 국회의 책임이 '무엇이고, 어디까지'인지는 앞으로 반드시 드러나야 할 문제다.

언론이 이번 사태에 책임감을 느낀다면, 끝까지 추적해야 할 과제이기도 하다.

덧붙이는 글 | 기사 원문은 여의도통신(www.ytongsin.com)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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