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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는 아름다운재단(이사장 박상증)과 공동으로 '활동가와 차 한 잔'이란 제목의 기획기사를 내보냅니다. 바쁜 일상 속에 관심 갖지 못한 사회의 그늘진 곳, 그곳에서 우리를 대신해 희망을 찾는 공익활동가들을 만나 그들의 인생과 시민운동에 대한 진솔한 이야기를 듣는 기획입니다. 이 기사가 마지막회입니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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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천 학교평화만들기 이화영대표
ⓒ 김미영
"쉬는 시간에 화장실에서 때리고, 끝나면 소각장이나 313동 앞에서 때리고, 매일매일 때리고. 또 때리고 다 때리면 엄마·아빠·선생님한테 이르면 죽는다고 한다. 000는 2학기 때 재미있겠다고 얼굴을 때렸다. 얼굴을 많이 맞았을 때 화장실에서 000랑 000이 화장실에 가두어 문 잠그고 물이 다 내려가면 끝난다고 하면서 계속 팔을 때렸다(이하 생략)."

오랫동안 같은 반 친구들에게 괴롭힘을 당해오다 지난 2001년 아파트 4층인 자기 집에서 뛰어내린 선모(13)군이 자살 직전 학교에 제출한 경위서의 일부다.

선군이 자살 직전 직접 작성한 충격적인 기록은 당시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왕따'의 심각성에 대한 경종을 울린 것이다. 하지만 5년 후인 지금은 어떠한가. 결국 아줌마들이 학교의 평화를 지키기 위해 나섰다.

이 사건 이후에도 해당 학교와 관할교육청인 과천교육청은 책임을 회피하며 사태 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다. 학부모 등 과천 시민들이 '학교폭력 근절을 위한 과천시민모임'을 결성했고 이 모임은 2004년 '학교평화만들기'라는 이름으로 다시 태어났다.

늦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지난 23일, 학교평화만들기 이화영 대표를 만났다.

다섯살배기, 그래도 과천사람은 다 알아요

자전거를 탄 아줌마. 이화영 대표는 해맑은 미소를 띤 채 과천역으로 직접 기자를 마중나왔다. 과천환경운동연합과 공동으로 사용하고 있는 사무실에 들어서니 뜨거운 열기가 후끈 밀려온다. 올 여름 내내 에어컨 없이 생활했다고 한다. 지금도 이런데 한창 더웠을 때는 어땠을지 짐작이 갔다.

아직 다섯살밖에 되지 않은 '학교평화만들기'. 그래도 과천에서는 모르는 사람 없는 유명한(?) 단체다.

학교폭력으로 인한 초등학생 자살 사건을 계기로 만들어진 만큼 '학교평화만들기'는 이 지역에서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을 대상으로 평화와 인권에 대한 교육과 상담 활동을 주로 하고 있다.

학교와 평화라…. 조금 추상적일지도 모르겠다.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이 쉽게 노출되는 학교 폭력 근절을 위한 교육이라고 하면 이해가 쉬우려나.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평화교육 ▲청소년인권지킴이 교육 ▲부모교육 ▲동아리나 단체를 찾아가는 인권학교 학교평화만들기가 하고 있는 일들이다.

또 학교폭력 예방과 청소년 인권신장을 위해 '10월 21일 애플데이'란 제목의 거리 캠페인을 실시하고 있다. 이밖에도 학교폭력 상담실·세미나·토론회 등도 개최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과천의 청계초등학교 5학년을 대상으로 1년 동안 평화인권교육을 하기도 했다.

이 교육은 반응은 좋았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재교육을 하지는 못했다. 학교에서 평화·인권교육을 열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쉽지가 않다고 한다. 아직까지는 마음을 열고 제안을 받아들이는 학교가 없는 탓이다.

대신 학교가 쉬는 주말과 방학을 이용해 아이들을 위한 평화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홍보에 어려움이 없느냐고 물었더니 다시 "과천에서는 이미 많은 분들이 알고 있다"는 대답이 웃음과 함께 돌아왔다.

보통 사람의 눈높이에서 시작하라

'학교평화만들기' 대표를 맡기 전 이화영씨는 매우 평범한 가정주부였다. 이 대표의 말에 따르면 "결혼하기 전 2~3년 동안 청소년공부방에서 일한 걸 빼면 그냥 아이 키우는 가정주부"였다. 결혼하면서 아이 낳고서는 그냥 동네 아줌마들과 함께 즐겁게 지냈단다.

"그 기간이 저에게는 도움이 많이 됐어요. 실제로 동네 아줌마들과 지내면서 그분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게 무엇인지 알게 됐죠. 그래서 저는 아줌마들이 굉장히 힘있는 존재라고 생각해요. 일례로 지난 5월에 있었던 지방선거 때 과천 시의원에 무소속이었던 서형원 후보가 당선된 것도 다 그런 맥락이라고 생각해요. 서형원 후보가 내건 슬로건이 '유쾌한 변화, 아이들이 행복하도록'이었거든요. 그래서 아줌마들이 힘을 많이 실어줬죠(웃음)."

학교평화만들기가 걸어온 길

2002년
학교폭력근절을 위한 과천시민모임(구명칭) 창립식
고 선모군 관련 학교폭력사건 책임자 처벌 및 재발방지 대책을 위한 서명운동
학교폭력특별법안 설명회
제1회 어린이를 위한 사회성훈련 실시
학교사회사업 추진

2003년
부모교육(에니어그램) 실시
어린이를 위한 평화감수성 교육 실시
학교폭력예방 세미나 '평화로운 학교가 행복한 세상을 만듭니다' 개최, 학교폭력예방 및 대처 매뉴얼 발간

2004년
평화적인 갈등 해결을 위한 부모교육 실시
현실요법을 통한 부모교육 실시
청소년 상담 자원봉사자 교육사업 실시
문원중 학교폭력 예방 프로그램

2005년
청계초 평화교육 실시(연중 48시간)
청소년 인권지킴이 교육 및 캠페인(연중 20시간)
갈등해결 평화교육 강사양성과정 실시
청소년 학교 내 인권 실태조사 실시
애플데이 캠페인 실시

전화번호 02-502-3623
홈페이지 http://cafe.daum.net/schoolpeace
이 대표는 지역에서 사회단체 활동을 하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들의 눈높이에서 그들의 입장을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평화운동에 대한 학부모들의 욕구가 무엇인지, 그리고 그 욕구를 어떻게 충족시켜야 하는지를 아는 게 가장 중요하다는 것.

그렇게 아줌마들과 즐겁게 지내던 중 '학교평화만들기'의 전 대표가 자원봉사를 해달라며 도움을 청해 이화영씨는 '학교평화만들기'에 발을 들여놓았다. 대학에서 상담심리를 전공한 이력때문이었다.

"하루에 두어 시간 자원봉사를 하게 됐죠. 그런데 하다보니 너무 모르는 것 투성이인 거예요. 그래서 공부도 하게 됐고 두어 시간씩 하던 자원봉사 시간도 조금씩 늘고…. 그게 지금까지 와서 이렇게 대표까지 맡게 됐네요."

어디나 그렇지만 '학교평화만들기' 역시 상근자보다는 자원봉사자들의 힘으로 굴러간다. 10명 남짓 정도 되는 자원봉사자들 대부분이 이화영 대표처럼 초등학생 자녀를 둔 엄마들이다. 그냥 두고보기에는 학교에서 일어나고 있는 폭력이나 왕따 문제가 너무 심각하다는 데 의견을 모으고, 우리 아이들에게 평화를 심어주기 위해 모인 사람들이다.

학교평화의 치맛바람, 널리널리 퍼져라

▲ 올해 1학기 진행했던 교육 '평화랑놀자'
ⓒ 학교평화만들기
이화영 대표 역시 초등학교 1학년·5학년인 두 아이를 둔 엄마다. 과천의 학교 평화는 그렇다 쳐도 가정의 평화(?)를 어떻게 지킬까?

"일단 아이들은 좋아해요. 엄마가 이런 일을 한다는 걸 기쁘게 받아들이고 있어요. 남편도 많이 도와주는 편이죠. 집에서 반대했다면 아마 힘들었을 거예요. 얼마 전 함께 일하는 엄마들끼리 지리산 종주를 했는데요, 정말 너무 좋은 시간이었어요. 아이들 캠프와 시간이 맞아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고 왔지요."

이 대표의 설명을 듣고있자니 이런 단체가 과천에만 있다는 사실이 안타깝게 느껴졌다. 학교폭력 문제가 심각한 만큼 다른 지역 단체와도 함께 하면 더욱 좋을 거라는 생각이 든 것.

"아까도 이야기했지만 사실 이런 활동은 시민의 입장을 정확히 파악해야 해요. 평화운동에 대한 사람들의 욕구가 무엇인지, 그리고 그 욕구를 어떤 방식으로 충족시켜야 할지…. 이게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물론, 다른 지역도 동참하면 좋겠지만, 그러기까지는 시간이 많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먼저 시작한 과천 '학교평화만들기'가 체계적으로 자료도 정리해야 하는데 아직 인력이 부족하기도 하고요. 요즘에는 근방에서 종종 교육 요청이 들어오기도 해요. 그래서 원하는 곳으로 교육을 하러나가기도 하지요."

인터뷰를 하는 동안 이 대표의 아이에게 몇 번이나 전화가 걸려 왔다. 기자가 너무 오랫동안 엄마를 뺏고 있었던 탓이었다. 마무리를 하고 밖으로 나오니 시원한 바람이 불어온다. 이제 가을인가. 자전거를 끌고 집으로 가는 이화영 대표의 뒷모습이 무척이나 평화로워 보였다.

평화란
싸우다 잠깐 쉬는 휴식 같은 것이 아닙니다.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는 상태는 더더욱 아니지요.

평화는
살아서
자라고
널리 퍼져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계속 보살펴 주어야 합니다.

평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스스로에 대해 깊이 생각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왜 그렇게 생각하고
왜 그렇게 믿고
왜 그렇게 느끼는지
또 왜 그렇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상대방이 되어서 듣거나 보는 것에도 익숙해져야 합니다.
생활 속에서 일어나는 나의 문제부터 평화롭게 해결해야 하기 때문에

평화는 멀리 있는 것이 아닙니다.
언제나 가장 가까운 곳에 나와 함께 합니다.

- 캐서린 스콜스 <평화는>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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