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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동화 나라에서
동화 나라에서 ⓒ 나관호
저녁시간 뉴스를 보고 있었다. 뉴스 내용 중 임산부들의 습관적 유산과 상상임신에 관한 뉴스였다. 어머니가 알아들으셨는지 이렇게 말씀 하셨다.

"나도 그랬는데."
"네. 어머니도 그러셨죠?"
"에휴! 안됐어."

우리 어머니 같은 분들은 자기의 필요나 경험에 따라 느끼고 말하신다. 다른 뉴스는 영 머리에 들어오시지 않는데 임산부들의 유산 이야기에 귀가 솔깃하신 것이다. 어머니는 결혼 후 자식을 갖지 못해 우리가 말로만 들었던 상상임신이라는 것을 해보셨다. 나는 내친 김에 그때의 기억이 나시는지 여쭈어 보았다.

"어머니 그때 생각나세요?"
"나지? 어휴, 그때는 너무 신경 써서 얼굴에 뭐가 났었어."
"그러셨군요. 다른 생각은 나세요?"
"내가 애기 못날 때 친구들이 그랬어. 애기 못나면 어른들이 다른 여자 얻는다고. 그래서 얼마나 속을 태웠는지 몰라."
"그런데 임신하고 나니까 얼굴에 난 것들이 없어졌어."

어머니 말씀을 정리해 보면 이렇다. 아기를 못 갖자 친구들이 찾아와 염려 섞인 말을 한 것이다. 그리고 친구들이 내놓은 대책은 임신한 것처럼 당분간 배를 부르게 하라는 것이었다. 밥도 많이 먹어 배도 불리고, 임신한 것 같다고 생각하고, 어른들에게도 임신한 것 같다고 말하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실제로 어머니 배가 불러왔다. 몇 개월 후에는 어머니조차도 진짜 임신한 것으로 아셨다. 지금 같으면 초음파검사라도 했을 것이지만 당시는 그러지 못했으니 이해가 간다.

5개월쯤 지나 배가 좀 나왔을 때 어머니는 아버지 친구 한의사 아저씨를 찾아갔다. 그때서야 진맥을 받고 임신이 아니라는 사실을 아셨다. 어머니는 그 사실이 안 믿겨 아버지 몰래 다른 한의사를 찾아가시기도 했다. (아버지 친구 중 한의사가 세 분이었다.)

할아버지 할머니나 알까봐 또 조마조마하셨다. 어르신들이 사실을 알면 아버지에게 다른 여자가 생길까봐 더 마음을 졸이셨다. 그러나 아버지가 그런 일은 없을 것이라는 말에 안심하셨다.

어머니는 상상임신으로 배에 거품이 가득 찰 정도로 아기를 갖기 원했다. 옛날 어른들은 똑 같았을 것이다. 입덧도 하고 배가 불러오고 외형적으로는 분명 실제 임신과 같다고 한다.

동화나라 거인처럼
동화나라 거인처럼 ⓒ 나관호
내 생각에 어머니가 가진 염려하는 상상력이 그때 경험으로 인해 생겨나신 것은 아닌가 하고 생각해 보았다. 어머니는 염려가 많으시다. 대부분 치매 증상이 있는 분들의 공통점이기도 하다. 요즘 같이 무더운 여름날 에어컨을 무더운 우리 집은 베란다와 거실 문을 열어 놓는다. 그런데 덥다 싶어 보면 문이 닫혀 있다. 어머니가 닫으신 것이다. 그러면 다시 말 없이 열어 놓는다. 그러면 또 닫혀 있다.

그리고 현관 출입문이 열려 있을 때가 있다. 이유는 닫아 놓은 문을 어머니가 문 단 속 하신다고 잠가 결국에는 열어 놓은 꼴이 된다. 이게 우리 집 풍속도다. 그래서 어머니의 염려 상상력은 웃음을 준다. 동영상을 듣던 어머니가 갑자기 나오시더니 말씀하신다.

"나 할 말 있는데?"
"네. 하세요?"
"아까, 누가 내가 애기 못 나서 남의 집 아기 데려다 키운다고 했는데?"
"그럼 말 한 적 없어요."

어머니는 아기 갖지 못했을 때 예기를 나와 몇 분 전 나누시고 그 잔상으로 새로운 이야기 거리를 만드신 것이다. 그런데 아기 데려다 키운다는 말은 나도 들은 이야기다. 그 아기의 주인공이 나였으니까.

자식 넷을 잃고 내가 다섯째로 태어났지만 먼 데 사는 사람들은 나를 혹시 주워 다 키운 자식인지도 모른다는 말을 했었다. 그 당시는 그런 일이 많았다. 아랫집 똥개를 키우는 아저씨 아들인 상진이가 그런 아이였으니까.

나도 어릴 때 그런 말을 들어 고민했던 적이 있다. 더구나 아버지가 고물상 사업을 하실 때 엿장수 아저씨들이 자꾸 아들은 다리 밑에서 주워오는 것이라는 말을 듣고 더더욱 그랬다. 재미있는 이야기지만 당시 나는 고민이 많았다.

어머니는 젊은 날 아기 못났던 체험 속에서 잊었던 또 다른 이야기를 생각해낸 것이다. 그러시더니 말을 이으신다.

"아니, 난 그런 적 없어. 내 배로 아들 낳어."
"네. 맞나요. 어머니 배로 나를 나셨어요. 누가 엉뚱한 소리를 했네요."
"참. 사람들이 말야…."

어머니의 모습을 보면서 또 한번 웃었다. 그리고 오늘은 어떤 상상력의 날개를 가지실까 기대(?)도 한다. 어머니의 상상력이 젊은 날이었다면 글을 쓰시는 데 활용했으면 좋았을 것 같았다. 어떤 때 가만히 듣다 보면 정말 리얼하다. 이웃집 아주머니와 나눈 상상 이야기, 길에서 만난 이주머니와 나누었다는 이야기는 재미있다. 그리고 혼자 떠오른 염려나 걱정이야기도 때론 웃음을 주는 가치 있는 이야기가 된다.

오늘도 어머니의 상상력 앞에 폭소를 만들고 그것이 만든 엔도르핀으로 인해 더 젊어진다. 우리 독자 여러분도 노인들의 상상력을 좋게 여기도 그것을 긍정적으로 받기 바란다. 무엇이든지 좋은 쪽으로 해석하고 적용하면 결과가 좋아진다.

치매 노인들의 상상력을 우리의 웃음 에너지로 바꿔보자.

덧붙이는 글 | 나관호 기자는 크리스천커뮤니케이션연구소 소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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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제이 발행인, 칼럼니스트다. 치매어머니 모신 경험으로 치매가족을 위로하고 있다. 크리스천커뮤니케이션연구소 소장이다. 기윤실 선정 '한국 200대 강사'로 '생각과 말의 힘'에 대해 가르치는 '자기계발 동기부여' 강사, 역사신학 및 대중문화 연구교수이며 심리치료 상담으로 사람들을 돕고 있는 교수목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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