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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나는 굿판이 벌어졌다.
신나는 굿판이 벌어졌다. ⓒ 정범래
어렸을 때 동네에서 간혹 보아온 굿판이 장소만 다를 뿐 시간을 넘어 이곳 미얀마에서 거의 똑같이 재현되고 있었다. 한가지 조금 다른 것이 있다면 굿판을 주도하고 있는 무당인 '낫거도'의 모양새가 진한 화장을 한 여성차림새인데도 남자라는 것이다. 그들은 속눈썹을 붙이고 진한 눈화장과 립스틱을 한 여장남자지만 어딘가 어설퍼 보였다.

굿판을 벌리기 전 화장을 하는 미얀마 게이 무당
굿판을 벌리기 전 화장을 하는 미얀마 게이 무당 ⓒ 정범래
흔히 '게이'라 하면 여자들보다도 외모가 더 아름답고 몸매가 뛰어난 여장남자를 떠올린다. 태국의 알카자 쇼나 기타 게이쇼를 보면 저 사람이 남자인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정말 곱고 아름답다. 하지만 미얀마의 여장남자들, 특히 미얀마의 정령숭배를 관장하고 주도하는 미얀마 무당 낫거도는 게이에 대한 우리의 선입견을 여지없이 무너뜨린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지만 이곳 미얀마에서도 게이 등 성적 소수자들에 대한 차별은 매우 심하다. 게다가 호르몬 주사도 맞고 수술도 하고 조금이라도 더 여성스러운 외모를 꾸미려 돈을 들이고 노력하는 외국의 게이들과는 달리 이곳 미얀마 게이들은 그런 것은 꿈도 못 꾸는 가난한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러다 보니 우리가 생각하는 아름다운 게이 이미지와는 정반대로 어떻게 보면 정말 혐오스럽기까지 한 외모를 지녔다.

하지만 이들을 개인적으로 만나보면 정말 순수하고 아름다운 영혼의 소유자인 것을 알게된다. 한국에서도 마찬가지지만 주류 신앙이 아닌 무속정령신앙을 주관하는 사제로서의 무당은 천대받기 쉬운 직업이다. 여기에 성적 소수자로서의 멸시까지 합쳐져서 그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곱지 않다.

상황이 이런데도 그들은 인생의 굴곡을 넘나드는 미얀마 사람들에게 조언자가 되어주고 현실과 괴리되어 있는 테라바다 불교를 보조하는 자신들의 역할을 기쁘게 수행하고 있었다.

미얀마 전통악기에 맞춰 춤을 추는 낫거도
미얀마 전통악기에 맞춰 춤을 추는 낫거도 ⓒ 정범래

미얀마인들이 '낫' 신에게 음식을 바치고 있다.
미얀마인들이 '낫' 신에게 음식을 바치고 있다. ⓒ 정범래
고대로부터 내려오던 미얀마의 정령신앙 낫(Nat)은 미얀마 최초의 통일왕조인 버강(Bagan) 왕조의 아노여타 왕이 국가통치이념으로 테라바다 불교를 받아들이면서 금지됐다. 그러나 생활에 밀착되어있던 정령신앙을 미얀마 사람들과 떨어뜨려 놓는데 실패하면서 낫은 불교의 하위신앙으로서 불교와 융합하게 된다.

이때 37위의 낫이 처음으로 고착화하게 되는데 이러한 융합은 미얀마의 토착신앙인 낫 숭배가 새로운 통치이념인 불교의 그늘아래서 보호를 받기 시작했다는 것과 동시에 신흥종교인 불교가 기존 토착신앙과 융합하게 된 것을 의미한다.

이때부터 낫신앙은 대중들에게 더욱 널리 퍼져 미얀마인들의 생활에 밀착됐다.

37위의 낫 신에게 제물을 바치고 그들에게 현세에서의 복을 기원하는 것은 대승불교를 믿는 우리에게는 조금은 낮설지만 현실세계에서의 부와 건강 그리고 기타 물적인 욕구와 정신적인 위로를 겸하는 낫 신앙 숭배는 미얀마 사람들의 생활과 떼놓고 생각할 수 없는 위치에 있다.

이 때문에 낫신앙 숭배의 중심 역할을 수행하는 무당 낫거도는 때로는 일반인들이 두려워하는 모습이 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그들을 위무해주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미얀마인들이 굿을 보며 즐거워 하고 있다.
미얀마인들이 굿을 보며 즐거워 하고 있다. ⓒ 정범래
미얀마에서 여성들은 전생에 많은 업보를 받고 태어났다고 여겨진다. 이들은 정식계를 받는 스님이 될 수 없을 정도로 위상이 낮다. 그러니 여자가 되고 싶어하는 남자들은 일반사람들에게 여자보다 더 낮은 멸시와 천대를 받고 살고 있다.

하지만 내가 만나본 미얀마 무당인 낫거도들은 이러한 천대와 멸시 속에서도 자신의 운명을 순순히 받아들이고 일반대중들에게 조금이나마 위로를 줄 수 있는 자신의 위치에 만족하며 살고 있었다.

낫거도는 차별없는 사회를 원한다.
낫거도는 차별없는 사회를 원한다. ⓒ 정범래
이들에게도 꿈이 있다. 이들은 여성스러운 아름다움을 가진 진정한 여자가 되길 원하고 유명한 낫거도가 되길 희망한다. 이를 통해 자신의 성정체성에 대한 자신감을 회복하고 자기를 멸시한 사회에 현실 신앙을 담당하는 사제로서의 힘과 권위를 보여주고 싶은 것이다.

덧붙이는 글 | - 다큐멘터리 채널인 Q채널에서 미얀마 무당인 게이"낫거도"의 생활을 밀착 취재한 "7일간의 아시아"가 다음주부터 방송됩니다.

- 기자의 미얀마 정보 커뮤니티 "미야비즈"  http://home.freechal.com/myabi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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