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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무용수들이 6일 도쿄 시내의 한 역 앞에서 천황 둘째 며느리의 아들 출산을 축하하는 공연을 하고 있다.
ⓒ AP=연합뉴스
거리엔 일장기, 밤늦게까지 축하 거리행진

어제(6일) 오전 7시 30분 TV를 켰다. 종합정보프로그램이 한창 방송될 시간이다. 그런데 여느 때와 달리 긴장감이 감돈다. 연장방송에 특별방송까지 준비되어 있다는 코멘트까지. 그랬다. 일본 왕실의 둘째 며느리인 기코 빈이 이날 오전 제왕절개로 셋째 아이를 출산하는 날이었던 것이다.

9시가 가까워지면서 속보가 터지기 시작했다. 8시 27분, 2.558kg, 48.8cm의 사내아이가 탄생했고, 이 어린 생명은 순식간에 일본 열도를 환희로 들뜨게했다. 이 아기는 아마도 이날 세상에 태어난 모든 아기들 중 가장 많은 사람들로부터 축하와 환영을 받았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일본 왕실은 물론 대다수 일본인이 지난 41년간 애타게 기다리던 왕위계승권자의 탄생이었으니 말이다.

일본 왕실 전반을 규정하고 있는 현재의 '왕실전범'에 따르면 부계의 남자 자손만이 왕위를 계승할 수 있다. 현행대로라면 이 아기는 현 왕세자와 아기의 아버지인 아키시노노미야에 이어 왕위 계승서열 3위의 귀하신 몸이다.

이후 방송은 각계의 반응 및 시민들의 축하분위기로 채워졌다. 거리에는 각 신문사의 호외가 뿌려졌고 이를 받으려는 일부 시민들의 쟁탈전이 벌어지기까지 했다.

유명 백화점들은 남아, 여아용의 두 가지 현수막을 준비해 출산소식과 함께 남아용 경축 현수막을 내거는 등 발빠른 움직임을 보였다. 미츠코시 백화점의 니혼바시점은 아키시노노미야가의 사진전을 시작했다. 상점가들은 축하 메시지를 내걸었고, 메시로역 앞에서는 무료로 축하주를 냈으며, 아사쿠사의 나카미세 거리의 상점가는 일제히 일장기를 게양했다.

아키시노노미야 부처의 모교인 가쿠슈인 대학 근처의 한 유치원에서는 사내아이들의 무병장수와 출세를 비는 '잉어깃발(코이노보리)'을 내걸어 축하의 마음을 담았고, 거리에서 전통무용으로 축하를 비는 사람들이 축하 플래카드와 일장기를 들고 거리를 행진하는 행렬에 이르기까지 축하 분위기는 밤늦게까지 이어졌다.

'경제효과 3조엔' 전망도

▲ 일본 행인들이 6일 도쿄 중심가에서 천황의 둘째 며느리 기코 여사의 아들 출산 소식을 실은 호외를 보고 있다.
ⓒ AP=연합뉴스
왕실의 경사는 일본경제의 호황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아, 관련업계는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고 갖가지 아이디어를 쏟아내곤 한다. 출생 당일 벌써 기코 빈의 출산에 의한 경제효과가 1500엔 규모가 될 것이라는 한 경제연구소의 발표가 있었다. 7일자 스포츠닛폰은 향후 경제효과가 3조엔에 이를 것이라고도 보도했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한 업체는 '로열 프린스', '로열 프린세스'로 이름 붙여진 테디베어 인형을 한정 출시해 '로열 프린스'는 20분만에 전화예약이 끝날 정도의 호응을 받았다. 앞으로도 비슷한 형태의 한정 기념상품의 행렬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출산 당일인 6일에 이어 7일 오전에도 방송은 온통 기코 빈의 출산소식으로 채워졌다. 조간 신문들도 대부분 이와 관련한 사설을 실었으나 왕실전범 개정에 대한 엇갈린 입장을 내놓았다. 하루가 지난 지금 어제의 축하 분위기는 향후 왕위의 안정적 계승을 위한 왕실전범의 개정문제로 옮겨가고있다.

일왕의 둘째 아들인 아키시노노미야 이후 왕통을 이을 왕자가 태어나지 않아 일본왕실의 맥이 끊길 수도 있다는 위기감이 팽배해있던 차였다. 남녀평등이라는 시대적 조류가 일왕가에는 미치지 못한 듯 왕실전범은 남자 자손에게만 왕권을 인정하고 있다.

저출산, 고령출산 등의 흐름은 왕실에도 영향을 미쳤고 이를 수용해야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현 왕세자는 외동딸을 두고 있고, 둘째인 아키시노노미야도 딸만 둘을 두고 있어 언젠가는 일왕가의 맥이 끊기는 게 명약관화한 상황이었다.

고이즈미 수상은 2004년 12월 '전문가자문회의'를 구성해 왕통의 안정적 계승이 가능토록 하는 왕실전범의 개정안을 의뢰했고, 2005년 11월 전문가자문회의로부터 여왕 및 모계왕을 인정하고, 직계 제1 자녀에게 왕위계승의 우선권을 주는 개정안을 담은 보고서를 제출받았다.

그러나 이에 반대하는 쪽의 의견도 만만치 않았다. 125대에 걸친 왕통을 지켜야한다는 의견이 팽팽하게 맞선 것이다. 이들은 대안으로 1947년 왕가에서 이탈시킨 구 왕족을 복원시키는 안을 비롯 심지어 측실을 고려할 수도 있다는 안에 이르기까지 여러가지 해결책을 제시했다.

▲ 일본 야마나시현 고후시의 한 상점가. 기코빈의 출산을 축하하는 플래카드와 '잉어깃발(코이노보리)', 일장기가 내걸렸다.
ⓒ 장영미
"여자도 왕위계승 가능해야" 찬반 논쟁 계속

이런 상황이다보니 왕통을 이어야한다는 부담이 두 며느리들에게 지워졌다. 특히 외교관으로 장래가 촉망되던 고령의 왕세자빈에게는 견디기 힘든 부담감이었을 것이다. 결국 왕세자빈은 정신적 불안정을 이유로 모든 공무를 쉬고 요양에 들어갔다. 요양의 장기화는 세간의 입방아에 올랐고, 무성한 가십의 주인공이 되었다.

고이즈미 수상의 추진력으로 왕실전범 개정안이 국회에 상정될 뻔한 국면은 불과 3개월 만에 완전히 깨지고 말았다. 2006년 2월, 일왕의 둘째 며느리인 아키시노노미야 비가 셋째 아이를 임신했다는 소식이 호외로 전해진 것이다.

왕위계승권을 가진 남자아이가 태어나면서 일단 급한 불을 피했다는 안도의 분위기가 정계 및 관계자들의 말에 묻어난다. 왕실전범 개정안을 임기 중 통과시키고 싶어했던 고이즈미 수상은 시간을 들여 신중히 검토해 차기 총리가 결정할 일이라며,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여왕 및 모계왕을 인정하는 왕실전범 개정이 필요하다는 인식을 나타냈다.

자민당 총리 후보 3명도 왕실전범의 개정을 서두를 필요는 없어졌다며 신중론을 피력했다. 그러나 자민당과 민주당이 개정을 미루는 입장이데 반해, 공산당과 사민당은 개정안에 찬성하는 입장을 보였다.

남자아이의 출산으로 왕실전범 개정안을 둘러싼 논의는 30~40년간의 시간을 벌게 되었다. 그러나 언제든 다시 불거질 수밖에 없는 문제이기 때문에 국민들의 관심이 일기 시작한 지금이 논의의 적기라는 지적도 많다.

한 어린 생명의 탄생이 몰고 온 축하물결은 도쿄의 번화한 상점가뿐 아니라 작은 도시, 마을에 이르기까지 일본 열도 곳곳을 휩쓸고 있다. 일본 어디에나 일장기가 나부끼고, 상점가에서는 무료로 술을 얻어 마실 수 있으며, 불꽃놀이에 기념품까지…. 이 물결은 남녀평등의 물결보다는 조금 더 센 기세로 당분간 일본 열도를 지배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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