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무'가 난장을 연출한다. 청와대는 '무신경'하고, 열린우리당은 '무능력'하며, 한나라당은 '무책임'하다. 전효숙 헌법재판소장 임명 동의를 둘러싼 갈등은 이 3무의 소산이다.
'3무 난장'을 싸잡아 욕하는 건 어렵지 않다. 하지만 생산적이지 않다. 당장 떨어진 발등의 불이 문제다. 어떻게 풀 것인가?
발등에 떨어진 불불불, 자세히 보니...
가관이다. 발등의 불 진화법을 놓고 '무'가 하나 더 추가된다. 무대책이다.
열린우리당은 국회의장 직권상정을 통해서라도 오는 14일에 반드시 처리하겠다고 벼르고 있다. 한나라당은 전효숙 후보자의 자진 사퇴를 윽박지르고 있다.
메아리가 없다. 열린우리당은 강행 처리를 위해 한나라당을 뺀 다른 야당을 연쇄 접촉하고 있지만 확답을 얻지 못하고 있다. 한나라당은 자진 사퇴를 촉구했지만 전효숙 후보자의 남편인 이태운 광주고법원장으로부터 '정치공세'라는 이유로 퇴짜를 맞았다.
이런 현상만을 두고 무대책을 꼬집는 건 아니다. 두 당이 내놓은 해법이란 게 대책 축에도 끼지 못하는 게 더 문제다.
이번 사태의 본질은 법의 충돌이다. 헌법 111조는 "헌법재판소장은 국회의 동의를 얻어 재판관 중에서 대통령이 임명한다"고 돼 있다. 국회법 46조는 "국회는 헌법에 의해 국회 동의를 요하는 헌재소장 및 국회 선출 헌법재판관에 대한 임명동의안 심사를 위한 인사청문특위를 둔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 두 조항만 놓고 보면 문제가 없다. 헌재소장 인사청문특위가 재판관 청문을 겸하는 것으로 해석되기 때문이고 또 그렇게 해왔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국회법 65조는 "대통령이 다른 법률에 따라 헌법재판관 후보자의 인사청문을 요청하면 소관 상임위별로 인사청문회를 연다"고 규정하고 있다. 지난해 7월 국무위원 등에 대한 소관 상임위의 인사청문제도가 도입되면서 개정·신설된 조항이다.
재판관에 대한 청문 주체가 엄연히 따로 있는데, 그리고 이 청문절차를 거쳐야만 재판관의 지위를 얻게 되는데 이 절차를 건너뛰는 게 문제라고 한다. 그럼 재판관의 지위를 얻지 못한 자를 헌재소장에 임명하는 셈이 되고 결국 헌법 위반에 이르게 된다는 주장이다.
정리하면, 문제의 본질은 국회법의 두 조항이 충돌을 일으킴으로써 상위법인 헌법을 치받는 결과를 연출하는 것이다.
국회법, 이건 아니잖아
이 점을 전제해 놓자. 그럼 열린우리당의 강행 처리 방침은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하위법이 상위법인 헌법에 위배되는 소지가 있을 때 이를 최종적으로 해석하는 곳은 헌법재판소다. 그런데 스스로 헌법을 해석하겠다고 한다. 그 결과는 불을 보듯 뻔하다. 위헌 시비가 일 것이고 또 다시 헌법재판소행 티켓이 발부될 것이다.
한나라당의 자진 사퇴 촉구 주장은? 화근은 교리에 있는데 엉뚱한 사람을 희생양으로 삼는 꼴이다. 일단 급한 불부터 끄자고 멀쩡한 사람을 화형대 위에 세우는 것과 진배없다. 국회법을 만든 건 국회이지 전효숙 후보자가 아니다.
정치권이 지금 당장 손대야 하는 건 국회법이다. 두 조항이 상호 충돌한다면 조정을 해야 하고, 헌법 위반 소지가 있다면 도려내야 한다.
그리 어려워 보이지 않는다. 형식논리를 앞세워 싸우고 있지만 현실논리는 인정하고 있다. 재판관 청문은 법사위에서 하고, 헌재소장 청문은 인사청문특위에서 하는, 이중 청문이 비현실적이라는 데에는 여야 모두 공감하는 바다.
여야의 인식이 이렇다면 국회법을 손질하는 건 대수로운 일이 아니다. 시간을 길게 끌 이유도 없다.
여야가 이에 합의한다면 전효숙 후보자에 대한 임명동의 절차를 일단 유보하고(사퇴가 아니다) 국회법을 먼저 개정하는 게 순리다.
20일로 한정된 임명동의 시한이 문제라고 하지만 이미 시한은 넘겼다. 게다가 그 시한은 훈시규정일 뿐이라고 한다. 지키면 좋지만 안 지킨다고 하늘이 두 쪽 나는 게 아니라는 건 그동안 정치권이 수없이 읊조린 가락이다.
헌법재판소장 공백 사태가 빚을 상징적인 문제는 여전히 남겠지만 현실적인 문제가 그리 큰 건 아니다.
정쟁 아니라면, 해법은 있다
헌법재판소 규칙 제24조는 헌법재판소장 유고시에는 임명일자가 빠른 재판관이, 궐위시에는 재판관 회의에서 선출된 재판관이 권한대행을 맡도록 하고 있다. 각종 위헌 소송에 대한 결정도 6명 이상의 재판관이 참여하면 성립된다.
소급입법 우려도 없다. 임명동의 표결이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에 임명동의 절차는 완료되지 않았다. 필요하다면 경과규정을 두면 된다.
갈라서 볼 일이다. 정치권은 정쟁이 아니라고 한다. 법률 해석을 둘러싼 지극히 정당한 공방이라고 한다. 이런 주장이 맞다면 지극히 정당한 해법도 서둘러 내놓을 수 있을 것이다. 국회법 개정 말이다.
지켜볼 일이다. 정치권의 관심대상이 염불인지 잿밥인지를 재는 가늠자는, 국회법 개정에 대한 진지성과 개정 속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