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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렘의 거리
할렘의 거리 ⓒ 하정진

뉴욕의 '할렘(Harlem)'하면 뭐가 생각나는가.

다들 '대표적인 뉴욕의 빈민가', '말콤X(할렘의 거리 하나는 말콤X의 이름이 붙어있다)로 기억되는 인종차별에 대한 저항의 공간', 혹은 '루이 암스트롱으로 기억되는 음악' 등이 생각나지 않을까 싶다.

기억을 더듬는 사람들에게 가장 최근 할렘에 대한 기억은 '빈민가'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서울 달동네의 빈민가 모습이 아니다. 영화에서도 흔히 보는, 툭 하면 총소리나는 우범지역이기도 하다.

할렘에 가면 자동차에서 절대 내리지 말라고?

2000년 내가 처음 미국에 왔을 때 할렘은 여전히 주의 지역이었다. 안내했던 사람이 "자동차에서 절대 내리지 말라"고 주의를 주던 것이 기억난다. 당시만 해도 "나아지고는 있다고 하지만 여전히 총소리가 들리는 곳'이라며 내리지 말라고 해서 차로만 돌았던 지역이다.

그 무렵부터 시작된 할렘 재개발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오늘도 여전히 여기저기 공사판이 벌어지고 있었다. 며칠 전에 센트럴파크 공원을 가기 위해 컬럼비아 대학에서 걸어갈 때도 곳곳에 공사판이 벌어지는 것을 보았다.

그 때는 공원 북쪽에 인접한 할렘지역만 본 것이었지만 오늘은 거의 한 바퀴 돈 셈이다. 딸아이가 차에서 내릴 때 예전 기억이 나서 주의하라고 말했지만, 돌아다닌 4시간여 동안 위험한 조짐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실업자가 많은 동네여서 그런지 곳곳에 젊은 흑인들이 거리에 나와 앉아있기는 했지만 위협적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내가 이 곳을 돌게 된 것은 HOAST(Harlem Open Artist Studio Tour)라는 행사 덕분이다.

이 행사는 올해가 두번째인데, 9월 8일과 9일 이틀 동안 할렘에 거주하는 총 59명의 작가가 동참해서 자신들의 삶의 공간이자 작업공간이기도 한 스튜디오를 개방하고 찾아오는 관람객들과 직접 이야기를 나눈다.

할렘의 건물
할렘의 건물 ⓒ 하정진
처음으로 할렘을 한 바퀴 돌았다

작가들의 작업공간을 직접 찾아가서 이야기를 나눈다는 것도 흔치 않은 기회다. 더구나 실제 내가 찾은 몇몇 작가들은 이런저런 뮤지엄과 박물관에 작품이 전시되어 있는 사람들도 있었다. 미술에 문외한인 나로서는 이들이 유명작가인지 아닌지조차 모르고 다닌 것이다.

대부분의 참여 작가는 우리가 흔히 아는 할렘의 좁은 아파트 한 구석에 주거공간이자 작업공간을 갖고 있었다. 좁은 출입구로 들어가면 방 안에는 여러 작품이 전시되어 있고, 작가들의 공간답게 벽면조차 작품으로 되어있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인상적이었던 몇몇 공간이 있는데, 어느 흑인작가의 경우 그의 그림에서는 어떤 강렬함이 느껴졌다. 뭐랄까, 남성성이 느껴지는, 소외에 대한 강한 반발이 느껴지는 그런 그림들.

또 어떤 백인 여성작가가 그리는 소외된 흑인·인디언·여성들에 대한 애정을 담은 그림들. 그 방에서는 'Black is beautiful'이라는 구호가 적힌 티셔츠를 입은, 한 동네에 사는 흑인 여성이 작가에게 끊임없이 묻고 감탄하고 있었다.

나야 어차피 그림이나 작품에 대한 이해는 떨어지는 사람이지만, 이렇게 많은 작가들이 살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과거 할렘이 가지고 있는 '전통적인 예술가들의 공간'이라는 이미지를 살리는 것 같기도 했다.

더구나 이들 작가들이 참여하는 이 행사를 주관하는 HOAST는 다양성을 존중하는 소수자들이 주도하는 조직이고, 구성원은 인종·장애·젠더·성적 기원·나이와 관계없는 뉴요커로 이루어져 있다고 한다.

할렘은 변하고 있다, 흑인들도 변하고 있을까?

할렘가 예술가인 Reuben Sinha씨 가정집 벽면에 걸은 자신의 작품
할렘가 예술가인 Reuben Sinha씨 가정집 벽면에 걸은 자신의 작품 ⓒ 하정진
맨 처음 찾은 스튜디오는 Reuben Sinha라는 작가의 공간이었다. 사실 이 곳이 처음에는 이 행사의 본부인 줄 알았다. 그러나 그는 자신도 이 행사에 참여하는 작가이고 또 행사의 조직자이기도 하다면서 친절하게 우리가 찾아가볼 만한 작가들의 스튜디오를 추천해 주기도 했다. 그림을 좀 더 볼 수 있는 안목이 있었다면 훨씬 맛나게 설명이 가능하련만….

그러나 애초 정보를 구한 김보근 한겨레통일문화재단 사무총장 덕분에 무려 4시간을 걸으며 할렘에 대한 생각을 새로 하게 되고, 무엇보다 흔히 접하기 어려운 작가들의 작업공간을 직접 방문하는 흔치 않는 기회도 갖게 되었다는 것은 흥미있는 경험이었다.

이 곳에서 우연히 딸아이 학교 선생도 만났다. 그는 엊그제 이 곳으로 이사왔단다. 뉴욕에서 뉴저지로 출근하는 셈이다. 할렘이 점차 백인들이나 다른 인종들도 이사와 사는 동네가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확실히 할렘은 변화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거리에는 실업자로 보이는 젊은 친구들이 앉아서 음악을 틀고 잡담을 나누고 있는 모습을 보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다.

그 사이사이로 많은 관광객들이 움직이고 있다는 점도 할렘의 변화를 이야기해주지만 여전히 거리에 남아있는 흑인들의 모습. 그같은 변화가 그 곳에 살고 있는 '흑인들의 변화'인지는 하루의 할렘투어로는 알 수 없었다.

덧붙이는 글 | 하승창 기자는 함께하는 시민행동 집행위원장입니다. 이 글은 하 기자가 시민행동 홈페이지 '에피소드'에 보내온 글로 단체의 양해를 구해 전문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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