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부터 서둘렀다. 아이가 학교 마치기 전까지는 돌아와야 하기 때문에 왕복 2시간이 걸리는 거리를 다녀오려면 서둘러야 했다. 'World Trade Center'(국제무역센터)역에 내리니까 오전 9시가 조금 넘었다. 2000년에 지나치면서 보았던 세계무역센터가 이제는 사라지고 없는 현장을 6년 만에 찾아보는 셈이다.
역 입구를 나서자 바로 그라운드 제로의 공사현장이 보였다. 지하와 지상이 맞닿는 곳이라 역건물 안에서 공사현장을 볼 수 있었다. 주변에는 추모객과 관광객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가만히 바라보고 있거나 연신 사진 찍기에 바빴다.
지상으로 나오니 과거 빌딩 앞 공간이라고 할 수 있는 곳에서 여러 가지 모임들이 진행되고 있었다. 관광객, 추모객, 세계 각지의 기자들이 서로 부딪히며 북적대는 가운데,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혼자서 혹은 여럿이서 피켓과 플래카드를 들고 자신들의 주장을 말하고 있다.
5년 전 테러현장에선...
5년 전 죽은 사람들을 애절하게 하나하나 부르는 소리가 건물 앞 마당에 울려퍼지는 가운데, 당시 인명구조에 나섰다가 사망한 사람들을 '영웅'으로 부르며 추모하는 사람들, 부시를 규탄하고 9·11에 대한 조사를 요구하는 사람들, 탈레반에 대한 적대감을 내비치며 평화를 논하는 것은 그들에게 항복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 이들이 서로 전혀 다른 견해들을 내세우며 제각각 움직이고 있었다.
이런 가운데 눈에 띄는 것 중 하나가 일본 사람들의 움직임이었다. 유난히 일본 사람들이 많이 보였다. 북소리 같은 것이 나서 혹시 한국사람들도 있나 찾아보니 일본의 법련종파 사람들이 가지런히 앉아 목탁같은 것을 치고 있었다. 그들이 손에 든 것은 '평화'였다. 다른 한 구석에서는 일본 사람들이 평화를 기원하는 학을 접고 있었다.
또 다른 한 쪽에서는 평화를 기원하며 임옥상 화백이 거리에서 많은 사람들이 함께 걸개그림을 그리는 것처럼, 일본의 작가 한 사람이 똑같은 모습으로 사람들과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혹시나 해서 이 팀의 한 여성에게 일본에서 다 같이 온 것이냐고 물었더니 다 제각각 다른 팀이란다. 이것은 콘신이라는 작가의 'Konsin 9·11 memorial project/2006'(콘신 9·11 추모 프로젝트)였다.
'일본 사람들이 왜 이렇게 많은 걸까? 어디선가 9·11을 히로시마 원폭투하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들은 것 같은데, 그런 유사한 감정을 느껴서인가? 그래서 이들이 하나같이 '평화'를 구호로 들고 있나?'하는 생각도 들지만, 어쩌면 한편으로는 미국이 이들에게 특별한 존재이기도 한 모양이라는 생각도 든다.
고이즈미가 부시와 그렇게 친한 척 하는 것이 단지 개인적 선호가 아니라 이 같은 일본인들의 의식을 읽고 있는 고이즈미의 정치적 태도 아닐까 싶은 추론을 해보게 된다. 과한지 모르겠지만.
5년 후 테러 현장에선... '미국의 영광' vs '부시 규탄'
그 옆에서 두 젊은이가 티셔츠를 팔고 있다. '9·11에 대한 진실'이라는 홈피 주소가 달려 있는 것을 보니 9·11이 음모라고 주장하는 그룹의 멤버들인 모양이다. '왜 이런 홈피를 운영하느냐'고 물었더니 "9·11이 진짜 테러라고 믿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면서 "그래서 9·11에 대한 조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해 이를 촉구하는 것"이라고 답한다.
철망이 처져있는 앞쪽으로 가보았다. 여기는 주로 추모객과 관광객이 몰려 있고, 당시 현장 사진들이 걸려있다. 한 쪽에는 누군가의 작품으로 9·11 당시 숨진 사람들의 사진을 무역센터 건물에 담은 인물사진들을 빼곡이 모아 만든 것이 그들을 기리고 있다.
갑자기 길건너편이 소란스러워졌다. 검은 색깔의 티셔츠를 입은 수십명의 사람들이 행진을 하고 있다. 여러 구호가 보인다. 'Investigation 9·11'(9·11을 조사하라)이 대표구호인 모양이다. 9·11 테러에 관한 다큐멘터리 <루스 체인지(Loose Change)> 2번째 판을 CD로 나누어 주고 있다.
길 건너편에 탈레반을 규탄하고, 미국의 영광을 외치는 사람들과 이들은 어떻게 될까? 한동안 행진을 계속하던 이들이 흩어지자 곳곳에서 논쟁이 벌어진다. 짧은 영어로 도저히 알아들을 수 없다. 9.11현장은 어느새 아침 무렵의 추모와 테러규탄의 분위기에서 급속히 논쟁의 공간으로 변하고 있다.
돌발상황이 벌어지는 것을 우려한 경찰의 제지가 있기 전까진 그들을 논쟁을 피하지 않는다. 실제로 맞은 편 빌딩에 거대한 성조기가 걸려 있기는 했지만, 5년 전 9·11 당시의 일방적 국수주의 분위기가 압도하던(5년 전 9·11 당시 나는 워싱턴에 있었고 연기가 솟아오르고 있는 펜타곤을 지근 거리에서 볼 수 있었다) 워싱턴에서 보았던 수많은 성조기의 물결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이다.
9·11이 음모라는 <루스체인지>가 가설을 세우고 이를 증명하기에 적합한 사실들만을 추려놓은 것이라 하더라도 왜 이런 가설이 힘을 얻어 애꿎게 죽어 간 사람들의 이름이 애절하게 불리우고 있는 현장에서 오히려 추모의 열기와 맞설 만큼 울림을 갖는 것일까? 어제가 일요일이라 부시가 참여하는 행사가 이곳에서 있었다고 하는데, 어제의 분위기는 어땠을까?
모든 음모론이 설득력있게 받아들여지는 경우는 그 행위로 인해 부당하게 정치적 이득을 얻고 있는 사람과 집단이 있고, 반면에 그로 인해 고통받거나 다른 정치적 견해를 가진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9·11에 대한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못하는 미국과 전세계의 사람들은 미국이 벌인 이라크 전에 대해 그것이 갖는 부당한 정치적 입장을 고발하고자 하는 사람들이다.
국수주의 물결은 사라지고... 5년 만에 뒤바뀐 상황
5년 후 9·11 테러일, 부시의 전쟁정책이 무역센터가 테러에 의해 무너진 사실조차 음모로 만들고 애꿎게 죽어 간 사람들마저 제대로 추모받을 수 없게 만들고 있다. 공격당한 미국이 단결해야 한다는 5년 전의 분위기는 사라지고 오히려 미국을 분열시키고 있는 것이다.
음모론에 기초한 조사요구는 음모를 조사하는 것이 아니라 부시의 대외정책에 대한, 세계의 평화를 위협하는 정책에 대한 반기이다. 억울하게 죽어간 사람들의 이름이 불리워지고 있는 공간에서도 뚜렷하게 다른 흐름을 형성할 정도로 부시는 그 근거를 제공해 주고 있는 것이다. 단 5년 만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