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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웃는 모습은 만점입니다.
어머니의 웃는 모습은 만점입니다. ⓒ 나관호
일찍 잠에 드셨던 어머니가 새벽에 거실로 나오셨다. 나는 거의 매일 새벽 일찍 일어나 하루 일을 시작하기 전 마음을 정돈한다. 새벽은 나에게 귀중한 시간이다. 그날도 새벽녘에 마음을 정돈하고 있는데 어머니가 나오신 것이다. 어머니는 잠에서 깨신 후 가끔 시간대를 착각하신다. 어머니가 교회를 가자고 하신다.

우리 어머니 같은 분들은 시간이 일정치 않다. 자신이 느끼는 시간이 그 시간이다. 그래서 잘 설명해드리고 다시 잠을 청하시도록 해드렸다. 혼자서 생각했다. 나이가 들어 치매라는 지우개가 침투된 모든 분들을 생각하며 연민의 정이 느껴졌다. 나는 나지막한 소리로 기도했다. 이 땅에 치매로 고생하는 모든 분들과 가족들을 지켜 달라는 외침이었다. 마음이 뭉클하고 어머니 생각에 눈물이 났다.

시간 가는 것을 착각하게 하는 몹쓸 병, 가족을 잊게 하는 존재. 그리고 삶의 목표나 희망이 무엇인지 모르게 하는 존재. 나는 그런 존재에게 도전장을 내민다. 어머니를 위해 해드릴 수 있는 모든 것을 해드려야 한다는 생각이다. 가고 싶은 곳, 아니 보여 드리고 싶은 곳에 모시고 갈 것이다. 그리고 드시고 싶은 것, 아니 사드리고 싶은 곳에 갈 것이다.

어머니가 다시 나오셔서 말씀하신다.

“저, 여기가 어디예요?”
“어머니, 여기는 우리 집이에요? 우리집요.”
“내가 알지 그럼. 아들 집.”
“어머니 지금 새벽이에요. 더 주무셔야 합니다.”
“새벽이야! 그런 더 자야지.”

어머니의 모습에서 연민의 정이 생긴다. 어머니가 좋아하시는 죽을 아침식사로 대접하고 싶어 새벽녘에 집을 나섰다. 새벽 5시가 조금 넘었다. 죽집이 문을 열었을 리 없었다. 할 수 없이 24시간 마트에서 인스턴트 죽을 샀다.

아침 식사로 죽을 드렸다. 어머니가 맛있다며 잘 드신다. 그러더니 하시는 말씀이 재미있어 또 웃었다.

“저녁 잘 먹었습니다.”
“네, 모두 잘 먹었습니다.”

그냥 아침은 어머니를 위해 저녁으로 건너뛰었다. 그리고 잠시 후 다시 설명해 드렸다. 그랬더니 이번에는 또 유머(?)를 하신다.

“아침밥이 너무 맛있네. 얼마야?”
“3천만 원요?”
“그렇게 비싸?”
“네, 내일 또 사드릴게요?”
“아냐? 너무 비싸.”
“괜찮아요? 죽이 비싼 것은, 정성이 들어가서 그래요?”
“그래, 정성은 얼만데?”

또 한바탕 웃었다. 어머니도 웃으셨다. 솔직한 심정은 어머니가 만든 유머(?)는 점점 사라졌으면 좋겠다. 그러나 하신다면 더 즐겁게 같이 웃고 싶다. 웃음은 명약이니까. 내가 만든 유머가 어머니를 즐겁게 했으면 좋겠다.

치매 노인들을 위한 유머 만들기 7가지 방법

1. 애교 있는 간지럼을 핀다. - ‘하지 말라’하시면서 좋아하신다.
2. 유머방송(웃찾사, 개그콘서트)를 보며 같이 웃는다. - 어머니는 동작 때문에 웃으신다.
3. 어머니가 옛날이야기를 할 때 같이 오버(?)해서 웃는다. - 자식의 웃음은 기쁨이다.
4. 재롱부리는 손주들을 통해 웃게 한다. - 모성애는 세대를 넘는다.
5. 노인들의 실수도 유머로 승화시킨다. - 긴장감은 건강에 좋지 못하다.
6. 유머스런 행동도 좋아하신다. - 가족 중 어머니를 위한 개그맨이 된다.
7. 평소 노인들이 웃는 상황을 알아두었다가 깜짝쇼를 한다. - 메모하라.


며칠 전에도 어머니와 함께 개그콘서트를 보았다. 별로 안 웃으신다. 가끔 개그맨들의 행동 때문에 미소를 짓는다. 그런데 요즘 장안의 화제가 된 ‘마빡이’ 코너에서 웃으셨다. 나는 머리숱이 적어서 그 프로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데 어머니 때문에 좋아하게 되었다. 어머니가 말씀하셨다.

“저 사람들은 왜 저렇게 해. 호호호!”
“어머니 즐겁게 해드리려고 그렇게 하는 거예요.”
“나 때문에.”
“네.”
“재미있네. 저 사람은 왜 자꾸 머리를 때린다니?”

언제나처럼 어머니가 상황 파악을 하고 계시다는 것 자체가 너무 고마웠다. 어머니의 삶에 나타나는 이상한 유머들이 없으면 더욱 좋겠지만, 그래도 만족한다. 모든 것이 협력해 선을 이룬다는 말처럼 이런저런 일들이 합쳐져 종국에는 좋은 일만 남을 것을 기대한다. 치매 노인을 둔 가족들에게 제안하는 것은 노인들의 유머를 좋은 생각과 아름다운 말로 승화시키기 바란다.

덧붙이는 글 | 나관호 기자는 크리스천커뮤니케이션연구소 소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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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제이 발행인, 칼럼니스트다. 치매어머니 모신 경험으로 치매가족을 위로하고 있다. 크리스천커뮤니케이션연구소 소장이다. 기윤실 선정 '한국 200대 강사'로 '생각과 말의 힘'에 대해 가르치는 '자기계발 동기부여' 강사, 역사신학 및 대중문화 연구교수이며 심리치료 상담으로 사람들을 돕고 있는 교수목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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