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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희용

ⓒ 장희용
틈틈이 한글을 가르친 6살 딸이 글쓰기에 재미를 붙였는지 요즘 아빠에게 '연애편지' 쓰기가 한창이다. 물론 삐뚤삐뚤, 어떤 때는 틀린 글자도 많지만 그래도 이 아빠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정성을 기울여 쓴 편지이니 이 세상에 그 어떤 연인의 달콤한 속삭임이 이보다 더하랴 싶다.

더구나 처음에는 그냥 하얀 종이에 달랑 "아빠 사랑해요!"라고만 쓰더니, 집 근처 복지관에 접수한 지 2년만에 순서가 돌아 온 무료 미술교실에 다니면서부터는 배경그림까지 그려서 편지를 쓰니, 그 앙증맞음에 꽉 차는 행복감을 느낀다.

어떤 날은 출근하는 아빠에게 다가와서는 비밀스러운 양 꼭 쥔 손을 불쑥 내 주머니에 넣는다. 뭔가 하고 꺼내려고 하면 "아, 안돼. 안돼 아빠! 회사 가서 봐"하면서 주머니에 들어간 내 손을 억지로 꺼낸다.

편지인 줄 알지만 모르는 척, "이게 뭐야?"하면서 물어 본다. 지금 보면 안 된다면서, 회사 가서 보라고 채근하는 딸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면서 현관문을 나선다. 역시 예상했던 대로 녀석의 편지다.

단 한 줄 "아빠 사랑해요"라고 써 있지만 1시간을 읽어도, 2시간을 읽어도, 10시간을 읽어도, 하루 종일 읽어도 다 읽혀지지 않는 편지다. 그 어떤 시인이 감미로운 언어로 사랑을 표현한다 한들, 이 아이의 "아빠 사랑해요"라는 말보다 진한 사랑의 향기를 느끼게 할 수 있을까?

물론 나도 이 사랑스런 딸의 애교 섞인 '연애편지'에 '연애편지'로 답장을 꼬박꼬박 해 준다. 내가 녀석의 한 줄 편지에서 진한 사랑을 느끼듯이 녀석도 이 아빠의 편지에서 솜사탕처럼 달콤하고 한 겨울 스웨터의 포근한 사랑을 느끼리라 믿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녀석이 제일 좋아하는 하트 모양을 넣은 예쁜 그림을 그려서 소중한 마음을 담아 정성스레 한 줄 한 줄 써내려 간다. 물론 녀석은 무척이나 좋아한다. 무슨 보물이나 되는 양, 자기 책상 서랍 속 깊은 곳에 차곡차곡 쌓아두니 말이다.

'놀아줘 대마왕'인 우리 딸. 아빠한테 쓴 편지 역시 주말에 아빠랑 노는 것에 대한 기대감이 가득하다.
'놀아줘 대마왕'인 우리 딸. 아빠한테 쓴 편지 역시 주말에 아빠랑 노는 것에 대한 기대감이 가득하다. ⓒ 장희용

내가 목디스크로 고생하고 있는데, 녀석! 벌써 다 컸나 봅니다. 아프지 말라고 이렇게 편지까지 쓰고...
내가 목디스크로 고생하고 있는데, 녀석! 벌써 다 컸나 봅니다. 아프지 말라고 이렇게 편지까지 쓰고... ⓒ 장희용
아빠와 딸의 '연애편지' 쓰기에 심통이 난 아내의 '질투'

하지만 '연인 사이' 아빠와 딸의 '연애편지'쓰기를 질투하는 이가 있었으니, 바로 아내였다.

한참 딸한테 편지를 쓰고 있는데, 아내가 대뜸 하는 말 "자기는 세린이한테만 편지 쓰고 나한테는 안 써"하며 난데없이 나를 향해 공격을 하는 것이다. 물론 나도 이에 질세라 편지를 쓰느라 숙였던 고개를 들고는 "그런 당신은 나한테 편지 쓴 적 있어? 세린이야, 나한테 꼬박꼬박 편지 쓰니까 나도 답장하는 거지"라며 역공을 펼쳤다.

평소 나의 성격상 "알았어. 자기한테도 쓸게" 할 줄 알았던 아내는 예상치 못한 나의 반격에 당황한 듯 한동안 아무 소리도 안했다. 한참을 생각하더니, "옛날에 연예할 때는 자주 편지도 쓰더니, 사랑이 식은 거지? 알았어!"하면서 괜한 트집을 잡는다.

내가 아무 소리도 못하자 자기가 무슨 승리의 여신인 양 으쓱 하더니, 이번에는 그 여세를 몰아가려는 듯 엄한 딸을 다그친다.

"장세린! 왜 넌 맨 날 아빠한테만 편지 쓰고 엄마한테는 편지 안 써?"

이 녀석도 당황스럽기는 마찬가지였나 보다. 그 자리서 딱 멈춰 서더니 눈만 껌뻑거리며 나를 쳐다본다. 내가 고개를 끄덕거리며 윙크를 하자, 눈치 빠른 이 녀석 기특하게도 얼른 책상 위로 뛰어가더니 색종이에 뭐라고 쓰기 시작한다.

한참 후에 가져 온 딸의 편지. "엄마도 사랑해". 하지만 이미 심통이 날 만큼 난, 질투의 화신이 되어 버린 아내의 몸에서 질투의 독을 빼내기에 딸의 편지는 이미 역부족이었다.

딸의 편지를 받아 들기는 했지만 "아빠한테는 예쁘게 그림 그려서 편지 쓰고, 엄마한테는 달랑 색종이에다가 쓰고. 실망이야!"하면서 단단히 삐진 듯한 표정을 짓는다.

아내의 질투 이후 바뀐 세린이의 편지. "아빠 사랑해요"에서 아빠 엄마도 아닌 "엄마 아빠 사랑해요"
아내의 질투 이후 바뀐 세린이의 편지. "아빠 사랑해요"에서 아빠 엄마도 아닌 "엄마 아빠 사랑해요" ⓒ 장희용
'으이그~ 저 심통! 질투할 게 따로 있지, 딸한테 질투 하냐?'

나는 할 수 없이 이른 시간 안에 아내 앞으로 편지를 쓸 것과, 세린이는 "아빠 사랑해요"라고 쓰던 편지를 아빠 엄마도 아닌 "엄마 아빠 사랑해요"라고 쓰기로 합의를 보면서 아내의 몸에서 '질투'를 꺼낼 수 있었다.

근데, 이건 밝히면 안 되는데… 아내가 모르는 게 있다. 내가 출근할 때 세린이가 내 주머니에 넣어 주는 편지, 그 편지는 한 장이 아니라 두 장이다. 한 장은 이미 합의한 대로 "엄마 아빠 사랑해요"라고 쓴 편지고, 그 속에 또 한 장의 편지가 있으니, 그건 "아빠 사랑해요"라고 쓴, 녀석과 아빠만의 비밀스런 '연애편지'다.

나는 이 아이가 커도 계속 연애편지를 쓸 것이다

'연인 사이' 딸과 아빠의 '연애편지'가 언제까지 계속 될지는 모르겠지만, 설령 이 아이가 커서 자기만의 비밀이 생기는 나이가 되어 더 이상 아빠에게 '연애편지'를 쓰지 않는다 해도 나는 이 아이에게 계속 연애편지를 쓰고 싶다.

아니 쓸 것이라고 결심이라는 것을 한다. 요즘 부모와 자식 사이에 '대화'의 부족으로 인해 갈등을 치유하지 못하고 더 큰 문제로 비화되는 세태를 보면서, 지금 녀석과 하는 이 '연애편지'를 계속할 수 있다면 아마 나중에 이 아이의 마음을 이해하고, 또한 녀석은 이 아빠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거라 믿는다.

어쩌면 내가 아이들을 키우면서 제일 중요히 여기는 '대화와 존중'이라는 것을 이 '연애편지'를 통해서 도중에 잃거나 포기하지 않고 지켜나갈 수 있는 힘이 되리라.

아빠와 연인 사이인 우리 딸 세린이. 나는 이 아이가 커서도 지금의 '연애편지'를 계속 쓸 것이다. 물론 질투(?)가 난 내 사랑스런 아내한테도 편지를 쓸 것이다. 미리 아부 좀 할까. "여보 사랑해"
아빠와 연인 사이인 우리 딸 세린이. 나는 이 아이가 커서도 지금의 '연애편지'를 계속 쓸 것이다. 물론 질투(?)가 난 내 사랑스런 아내한테도 편지를 쓸 것이다. 미리 아부 좀 할까. "여보 사랑해" ⓒ 장희용

덧붙이는 글 | 시골아이(www.sigoli.com)와 다음 블로그에도 올린 글입니다.

.아내의 질투 이후 바뀐 세린이의 편지. "아빠 사랑해요"에서 아빠 엄마도 아닌 "엄마 아빠 사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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