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 한라산
ⓒ 박정민
제주도는 경주와 함께 우리나라의 양대 관광지로 명성을 잃지 않고 있는 곳입니다. 이 명성은 국내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외국인 여행자들의 주된 여행코스라는 점에서도 이미 확인한 적이 있습니다. 한국을 여행해봤다는 여러 외국인들과의 대화를 나누었더니 "서울을 거쳐 경주 찍고 제주 찍었다"고 말하더군요.

과연 무엇이 사람들을 제주로 불러들이는 것일까요? 외지인들은 제주에서 무엇을 보고 겪고 싶어할까요? 인터넷에서 여행정보들을 찾아보면 참으로 각양각색의 여행지가 소개됩니다만 요즘은 테마파크들이 부쩍 늘어난 모양입니다. 미니어처 파크, 초콜릿 박물관, 성 박물관 등등…. 물론 골프장도 빼놓을 수 없겠지요.

그러나 변함없이 제주를 제주답게 해주는 최고의 여행지는 빼어나고도 이채로운 자연경관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정점에는 과거와 지금, 또 앞으로도 계속 한라산이 있을 거라는 예상과 믿음을 갖고 있습니다. 이런 믿음과 기대를 가득 담고 9월의 한라산 꽃 산행을 떠났습니다.

황금의 꽃산행 코스, 영실-윗세오름-어리목

▲ 한라개승마. 한라산 특산종이자 산림청 지정 희귀식물의 하나다.
ⓒ 박정민
한라산 서쪽을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1100도로를 한 시간에 한 대씩 다니는 버스를 타고 영실 매표소 앞에 내립니다. 표를 산 후 한동안 평탄한 길을 올라가다 보면 휴게소가 나오는데 여기서부터가 진짜 등산로입니다. 휴게소까지 마음놓고 달려왔던 자가용차들도 더 이상은 산길을 넘보지 못합니다. 차가 다니는 길을 등산로로 인정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비단 기자 뿐은 아니리라 생각해봅니다.

가을이 다 된 9월에 꽃 산행이라니, 그것도 왜 하필이면 영실-윗세오름-어리목 코스인가 의아해하실 독자도 계시리라 봅니다. 무엇보다도 자연휴식년제 때문에 백록담까지 갈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계절의 이 코스야말로 한라산 꽃 산행을 위한 최적의 경로라는 점은 여러 생태여행 책들이 입을 모아 증언하고 있습니다. 물론 한라산이 고산지대이기 때문입니다. 다른 곳에선 7∼8월에 필 꽃이 9월에야 만개하는 것이지요.

그 큰 한라산이지만 등산로는 사실 4개밖에 없습니다. 수십인지 수백인지 셀 수도 없는 북한산과는 사뭇 다르지요. 동쪽에서 접근하는 성판악 코스, 북쪽에서 접근하는 관음사 코스, 남서쪽으로부터의 영실 코스, 그리고 북서쪽으로부터의 어리목 코스입니다. 이밖에 정상을 향하지 않는 짧은 옆길이라 할 수 있는 어승생악 코스도 있지만 논외로 합니다.

이 중 성판악과 관음사 코스는 백록담까지 오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아침 일찍 출발해서 부지런히 '등산만' 해야 한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생태관찰을 위한 산행은 그렇게 부지런할 수가 없는 법이지요. 더구나 한라산 식생대를 특징짓는 핵심요인이라 할 고산초원도 그리 넓게 펼쳐져 있지 않습니다.

반면 영실에서 출발하여 백록담 밑의 윗세오름까지만 갔다가 어리목 쪽으로 내려오는 코스는 위의 장점이 단점으로, 단점이 장점으로 대체됩니다. 빠른 걸음이라면 4시간 이하로도 다녀올 수 있으니 꽃구경 해가며 꽃 사진 찍어가며 게으름을 피워도 시간이 남아돕니다. 관찰할 수 있는 식물도 한결 다양하며, 굳이 정상을 노리지 않는다는 점도 왠지 마음에 듭니다. 영실 코스는 3.7km, 어리목 코스는 4.7km입니다.

영실 등반로의 변화무쌍한 식물 잔치판

▲ 한라산 저지대에서 극상림을 이루고 있는 서어나무 숲.
ⓒ 박정민
매표소에서 휴게소까지 이어지는 초입에서부터 한라산은 예사롭지 않습니다. 서어나무 숲입니다. 손대지 않고 자연 그대로 두어도 숲은 스스로 변모해갑니다. 이것을 '천이'라고 하는데, 일반적으로 초본(풀꽃)→ 관목(작은키나무)→ 교목(큰키나무)의 순서를 밟는다고 합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나중에 등장함으로써 이 숲이 더 이상 변할 것이 없는 최고의 상태, 즉 극상림 임을 증명하는 수종이 바로 서어나무라지요. 그만큼 아무 데서나 볼 수 없는 서어나무가 이리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다니, 초장부터 기를 죽이는 품이 절륜합니다.

등산로 옆으로 벌써 이런저런 꽃들이 보입니다. 노란 원색을 강렬하게 뽐내는 곰취가 한창이고, 산수국도 만만치 않습니다. 한라산만큼 산수국이 많은 곳도 드물다지요. 그러나 이 정도는 약과입니다. 한라산이야말로 대한민국에서 가장 다양하고 풍부한 야생화를 만날 수 있는 무척 특별한 산이기 때문입니다.

▲ 곰취. 바로 취나물 중에서도 맛이 가장 좋다는 곰취나물의 꽃이다. 깊은 산의 습지에서 자란다.
ⓒ 박정민
▲ 산수국. 원예용으로 흔히 심는 수국의 원종이다. 다른 산에서는 벌써 다 피었을 것이 이제 갓 피기 시작이다. 한라산에서는 다른 산수국과 꽃모양이 조금 다른 탐라산수국도 볼 수 있다.
ⓒ 박정민
제주도 전역에는 약 1800종의 식물이 자생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는 남북한을 합친 것의 절반에 이르는 수치이자 설악산, 지리산 등 여타 명산에 비해서도 2배에 이르는 것입니다. 단지 종류만 많은 것이 아닙니다.

이곳에서만 볼 수 있는 특산식물만도 무려 70여종에 이르며, 법으로 지정한 멸종위기 종의 1/3이 넘는 23종을 제주도에서 찾아볼 수 있다고 합니다.(이 또한 다른 도의 2배에 달합니다.)

그 중 절반이 한라산 일대에 자생하고 있다니, 이쯤 되면 자생식물의 보물단지라고 아니할 수 없는 곳이 바로 한라산임을 알 수 있습니다. 현재 한라산 일대는 천연기념물 182호로 지정, 보호되고 있기도 합니다.

고도가 높아지면서 큰키나무들은 서서히 자리를 내주고 작은키나무와 풀밭이 나타납니다. 그 유명한 영실기암(오백나한)이 웅자를 뽐낼 즈음입니다. 옛사람들이 꼽은 '제주 명승지 베스트 10'인 영주십경(瀛州十景)의 하나로 선정되어있기도 한 기암절벽이지요. 요즘이야 조경수로 주변에서 흔히 보이지만 산에서 만나기는 그리 쉽지 않은 주목에서부터 시작해 다양한 나무와 풀꽃들이 딱 사람 키를 넘지 않는 정도로 무리 지어 있습니다. 하기야 초속 20m를 넘는 강풍이 수시로 불어댄다는 곳이니까요.

▲ 영실기암(오백나한)
ⓒ 박정민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2편과 3편으로 이어집니다. 이 기사는 '유포터'에도 송고되었습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