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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 출석한 박유철 국가보훈처장.
ⓒ 오마이뉴스 이종호

박유철(68) 국가보훈처장이 고령의 광복회원들 앞에서 행패를 부린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박 처장은 지난 6일 서울 여의도의 한 중국음식점에서 광복회원들과 점심식사를 하려다 의견다툼이 생기자 고함을 지르며 밥상을 뒤흔들었다. 테이블 위의 물컵과 밑반찬이 엎어지는 등 음식점은 난장판이 됐고, 이 때문에 광복회원들은 식사도 하지 않고 자리에서 나와야 했다.

이날 해프닝이 벌어진 이유는 광복회 정관 개정안 승인 때문. 일부 광복회원들은 현행 정관이 비민주적이라며 몇년 전부터 개정을 추진해왔다.

1970년대에 만들어진 현행 광복회 정관은 지부 설립을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있다. 또 광복회장을 선출하는 대의원 선출에서도 훈격이 낮은 대다수 회원들은 소외당해왔다는게 일반적인 지적이다. 따라서 광복회는 지난해 12월 광복회 지부 설립 허가와 대의원 선출 방식을 바꾼 개정안을 만들어 보훈처에 제출했다.

하지만 광복회 정관 승인 권한을 갖고 있는 보훈처가 개정안 통과 절차를 문제삼아 승인을 거부하면서 계속 갈등을 빚어왔다. 지난 7월에는 정관 개정안을 지지하는 일부 회원들이 광복회장 사무실 점거 농성을 벌이기도 했다. 광복회원들이 박 처장과 점심식사를 하기로 한 것도 정관 개정안 승인을 건의하기 위해서였다.

"박 처장, 처음 인사하는데 '필요없다' 고성"

이날 식사자리에는 박 보훈처장과 이아무개 국장, 유아무개 사무관 등 3명이 나왔다. 또 광복회원 5명이 동석했다. 이들은 식사에 앞서 정관 개정안 승인을 얘기하기로 했다. 하지만 박 처장이 흥분하며 테이블을 치는 등 과격한 행동을 보여 제대로 대화가 되지 않았다.

당시 음식점에 있었던 광복회원 유아무개씨는 "박 처장은 들어오면서부터 굉장히 기분이 언짢아 보였다"며 "함께 갔던 다른 회원들을 소개하는데도 '필요없다'며 언성을 높였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보훈처 직원들에게 '서류 가져오라'고 하더니 '빨리 나눠주라'고 소리를 질렀다"고 전했다.

또 유씨는 "박 처장이 '정관 개정안은 광복회 통과 과정이 위법적이라 인정할 수 없다'고 말하길래 '광복회에도 똑똑한 사람이 많다'고 했더니 오른손으로 테이블을 확 밀어제끼더라"고 전했다. 이 때문에 테이블 위의 접시와 수저, 물컵, 간장 등이 다 떨어지고 쏟아지는 난장판이 됐다.

유씨는 "박 처장이 '장관 모가지가 떨어져도 절대 승인해줄 수 없다'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더라"며 "같이 간 광복회원들도 '이게 무슨 행패냐'고 거세게 항의했다"고 덧붙였다.

박 처장의 과격한 행동을 목격한 광복회원들과 유씨는 곧바로 음식점을 나왔다. 박 처장이 뒤늦게 따라 나왔지만 더 이상 대화는 이어지지 못했다.

보훈처 "언성 높아졌을 뿐 행패 없었다"

유씨는 "같이 간 광복회원 중에는 여든살, 아흔살이 넘은 생존지사도 있는데 고령의 광복회원들 앞에서 그럴 수 있느냐"며 "그 자리에서 박 처장에게 '당신은 윤리도덕적으로 되먹지 않았다'고 말하고 나왔다"고 흥분했다.

이에 대해 보훈처는 다소 언쟁이 있었을 뿐 과격한 행동은 없었다고 해명했다. 음식점에 있었던 이 국장은 "양쪽이 다 흥분해서 언성이 높아졌을 뿐 광복회원들이 주장하는 대로 밥상을 엎거나 하는 행동은 없었다"며 "나중에 내가 전화해서 죄송하다고 대신 사과했다"고 밝혔다.

이 국장은 "광복회원들이 승인을 요구하는 정관 개정안은 법무부에 유권해석을 의뢰해 본 결과 하자가 있다고 판명돼 승인 안된 것"이라며 "절차상의 문제를 보완하면 언제든지 승인해 줄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구설수에 오르고 있는 박 처장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무총리와 대통령을 지낸 박은식 선생의 친손자다. 또 부친인 박시창씨는 광복군 출신 장군으로 해방 후 군에 투신해 육군 소장으로 예편한 대표적인 독립운동가 집안이다. 4~5대 독립기념관장을 지내기도 한 박 처장은 민간인 출신 첫 보훈처장을 맡아 큰 기대를 모으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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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오마이뉴스 입사 후 사회부, 정치부, 경제부, 편집부를 거쳐 정치팀장, 사회 2팀장으로 일했다. 지난 2006년 군 의료체계 문제점을 고발한 고 노충국 병장 사망 사건 연속 보도로 언론인권재단이 주는 언론인권상 본상, 인터넷기자협회 올해의 보도 대상 등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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