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유물 안에 담겨 있는 한국인의 얼굴은 어떤 것일까?
여기저기 여행을 하면서 관심을 가져온 주제이면서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은 과제였다. 알 것도 같고 모를 것 같기도 한 아리송한 우리의 얼굴을 투박하게나마 정리하게 되어 홀가분해진다.
어디선가 만난 일이 있는 듯하기도 하고, 어딘 가에는 반드시 있을 듯싶은 한국인의 보통 얼굴을 우리의 유물 안에서 발견할 수 있다.
우리 유물에 담긴 얼굴은 '엄숙하다, 도도하다, 엄정(嚴淨)하다, 근엄하다, 천진하다, 앳되다, 풍만하다, 차분하다, 가냘프다, 부드럽다, 다소곳하다, 동네아저씨 같다, 간절히 바라고 있다, 사랑스럽다, 토속적이다, 해학적이다, 웃음을 머금고 있다, 슬프다, 고아하다, 고졸(古拙)하다, 유치하다' 등 어떤 수식어를 붙여도 제대로 표현할 수 없는 묘한 매력이 있다.
작품을 만들 때 작가가 무슨 생각을 했고, 기분은 어떠했는지, 시대 상황은 어떻고, 권력자가 무엇을 원했으며, 지역이 어딘가에 따라 수많은 얼굴이 나오니 그럴 수 있다.
가장 나의 관심을 끄는 '우리의 얼굴'은 영향력 있는 호족의 자화상을 보는 듯한 철원 도피안사의 불상 그리고, 야무진 남도의 아주머니를 떠오르게 하는 강진 무위사, 미륵전 석불과 경주 부처골 감실석불, 미소의 백미라 할만한 서산 마애불, 인자한 할머니를 연상하게 하는 강릉 신복사터 석불이다.
개성이 뚜렷하고 어디선가 마주쳤던 것만 같은 친근한 얼굴, 실재한 사람을 모델로 만들었음 직한 얼굴들이다. 동서남북에 흩어져 있으면서 각각 남녀노소를 대표하여 묘한 여운을 남긴다. 그렇다고 지역을 대표하는 얼굴은 아니다. 그저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한국인의 얼굴들이다.
북쪽 변방의 굳센 남성상, 철조비로자나좌불상
수도 경주에서 멀리 벗어나 강원도 철원지방에 세워진 통일신라의 고찰 도피안사. 도피안사 대적광전 안에 경주의 불상과 사뭇 다른 철원지방 호족의 자화상으로 보이는 개성이 강한 철조비로자나좌불상이 있다.
존엄한 신격미만을 강조한 엄정(嚴淨)하고 권위만 내세우는 얼굴과는 거리가 멀다. 어디선가 마주친 듯하고 실제 철원사람을 모델로 만들지 않았나 착각에 빠트리는 얼굴이다. 계란형의 긴 얼굴에 약간 돌출된 입 모양새는 어설퍼 보이기까지 한다.
그렇다고 한없이 편한 얼굴만은 아니다. 당당하고 씩씩하며 그 당시의 권력자의 도전성이 엿보인다. 어설픈 미소 속에 감춰진 묘한 힘이 느껴지는 것이다.
남도의 여성상, 강진 무위사 미륵전 석불 · 경주 부처골 감실석불좌상
소박한 절 집의 대명사, 강진 무위사. 무위사 미륵전에는 무위사와 썩 잘 어울리는 석불이 모셔져 있다. 지방마다 그 지역을 대표하는 토속적인 불상이 있기 마련인데 이 석불이 이 지역의 얼굴을 대표하는 석불이 아닌가 싶다. 인근 수암마을에서 옮겨 온 것이라고 하는데 전형적인 이 지방의 아주머니를 보고 있는 것 같다.
눈두덩과 입술이 두툼하고 전체적인 얼굴이 웬만한 시련은 얼마든지 견디어 낼 수 있는 강인한 여성상이다. 본인은 배우지 못하였으면서 갖은 고초를 다 겪어 외아들을 훌륭히 키워 낸 굳센 남도의 어머니를 보고 있는 것 같다.
예사롭지 않은 기운을 입가에 머금으며 함부로 흘리지 않는 절제된 미소는 사리가 분명하고 자기 주관 또한 또렷하여 무엇이라고 형언 할 수 없는 힘을 느끼게 해준다.
경주 남산 부처골에 감실석불좌상이 있다. 그리 넓지 않은 터에 뿌리를 내린 자연석을 폭 1.2m, 높이 1.7m, 깊이 60cm 정도 파내 감실을 만들고 그 안에 석불을 새겨 놓았다.
멀리서 보면 할머니 같기도 하지만 가까이 보면 중년 나이 정도로 보인다. 다소곳이 앉아 있는 모습이 수줍어하는 듯하나 눈을 지긋이 감은 채 야무지게 꽉 다문 입을 보면 도저히 함부로 대할 수 없는 대상으로 보인다. 그러면서도 인자한 미소를 짓고 있어 '한국의 어머니'가 느껴진다.
동쪽의 애틋한 할머니상, 강릉 신복사터 석불좌상
그리 높지 않은 산에 둘러싸인 신복사터엔 탑과 석불이 서로 외로움을 달래주기라도 하듯 마주 보고 있다. 탑과 석불이 한데 어울려 있는 것은 강원도 지방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형상이다. 오대산 월정사와 한송사터 석불은 박물관에 고이 모셔져 있고 이 석불만 유일하게 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석불좌상은 탑을 향해 공양하는 모습으로 왼쪽 발을 약간 들어올린 채 꿇어앉아 있다. 복스러운 얼굴에 입은 꽉 다물었는데 이가 다 빠진 듯, 합죽한 얼굴을 하고 있다. 조그마한 입가에 번지는 잔잔한 미소는 천년의 세월 동안 맞이한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아 왔다.
이 석불도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른다. 박물관의 희미한 전등 밑에 안치되어 부드러운 미소가 사라질 지 모른다. 밝은 햇빛 아래 무엇이든 다 들어줄 것만 같은 부드러운 미소를 짓고 계신 합죽한 우리 할머니이기에 한없이 사랑스럽다.
서쪽의 싱싱한 어린애상, 서산 마애삼존불
삼존불 얼굴만큼 현실적이며 실재하는 사람을 모델로 만들은 것은 없을 것이다. 삼존불 모두 어디선가 보았던 얼굴, 설사 어디서 보지 못했어도 꼭 한 번은 볼 것만 같은 얼굴이다.
삼존불을 두고 한 얘기는 아니지만 최순우 선생의 말을 빌리면 "너그럽고도 앳된 얼굴의 싱싱하면서도 그윽한 미소 속에 스며진 더도 덜도 할 수 없는 참사랑의 간절한 뜻이 내 마음을 훈훈하게 어루만져 주었던 얼굴"이다.
백제 때 만들어진 마애삼존불이 아니라 통일신라 혹은 고려초에 만들어진 철조여래불두를 두고 한 얘기다. 겉으로 드러난 모양은 달라도 거기서 느끼는 감흥은 한 가지이다.
위에서 우리가 본 남녀노소, 동서남북의 얼굴은 제각각 달라도 우리는 한국인의 얼굴을 보면서 한국인의 성정을 느끼고 있다는 점은 같다. 지금 우리는 '우리의 얼굴'을 보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