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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5일 오전 민주노총 건설산업연맹 토목건축협의회 김호중 의장과 조합원 2명이 서울 올림픽대교 중간의 성화 조형물 위에서 '건설노조 탄압 중단'과 'ILO 권고안 이행'을 촉구하며 26일째 농성을 벌이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내려오라고 한다고 내려갈 수 있습니까? 상황은 하나도 해결되지 않고, 더 어렵게 돼가고 있는데…."

25일 오전 11시, 올림픽대교 중앙 88올림픽 기념주탑 꼭대기에서 전화를 받은 김호중(40) 위원장의 목소리는 차분히 가라앉아 있었다.

지상에서 75m 높이에 솟아있는 성화 조형물 주변 아슬아슬한 펜스에 자리잡은 지 26일째. "공안탄압 분쇄"를 외치며 한달 가까이 목숨건 농성을 이어가고 있지만 검찰의 입장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노조전임자 임금 받는 게 공갈이라니"

김 위원장과 허근영, 임차진 세 사람이 30층 가까이 되는 고층건물 높이의 구조물에 올라간 것은 지난 8월 31일. 검찰이 경기도건설노조 간부들을 대대적으로 수사하고 구속시키면서부터다.

수원지검 특수부는 지난달과 이번달 경기도건설노조 출신 이태영 민주노총 부위원장 등 간부 4명을 '폭력행위등처벌에관한법률 위반(공동공갈)' 혐의로 구속시켰다.

수원지검에 따르면 이들은 단체협약 대상자가 아닌 원청업체(건설사)를 상대로 단체협약 체결을 요구해 노조전임자 임금 명목으로 돈을 갈취했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노조가 현장의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을 빌미삼아 원청업체를 협박했다는 게 검찰의 주장이다.

반면 노조는 정상적인 단체협약을 통해 노조전임자 임금을 지급했다며 반발하고 있다. 하지만 검찰은 구속된 4명 외에도 9명의 전현직 노조 간부를 수배하는 등 강경대응하고 있어 마찰이 커지고 있다.

김 위원장은 "검찰은 정당한 노조의 활동을 마치 (현금이나 갈취하는) 파렴치범처럼 몰아갔다'고 울분을 터뜨렸다.

그는 "건설현장에는 온갖 비리가 판치고 건설회사는 검은 비자금의 출처가 되고 있다는 것을 알만한 사람은 다 안다'며 "그런 문제조차 시정하지 않으면서 죄없는 노조 간부를 구속하려는 몰지각한 정부와 검찰은 각성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물과 음식만 올라올 뿐... 외롭고 추운 26일

▲ 높이 75M의 성화 조형물 주변으로 건설노조원들이 내건 플래카드가 둘러쳐져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김 위원장 등 3명은 한달 가까운 고공농성을 아래에서 밧줄로 올려주는 식사와 얼마간의 물로 버티고 있다. 경찰은 물과 식사 외 다른 물품의 반입을 철저히 통제하고 있다. 그나마 충전된 핸드폰 밧데리를 계속 보내주고 있어 외부와 연락은 가능하다.

식사는 어느 정도 해결되지만 잠자리가 큰 문제다. 사방 10m로 된 펜스 위는 그다지 위험하지 않지만 밤이 되면 뚝 떨어진 기온 때문에 고생이 크다.

김 위원장은 "올라올 때 가지고 온 여름침낭이 큰 도움이 안 된다"며 "동지들이 겨울 침낭을 올려주려고 해도 경찰의 방해로 접근조차 안 되고 있다"고 전했다.

물이 없어 씻지 못하는 것과 갈아입을 옷조차 없는 것도 고공농성을 어렵게 하고 있다. 또 생리현상을 해결하는 것도 문제다. 그는 "용변은 비닐에 싸서 모아두고 있다"고 전했다.

가끔씩 가족들의 목소리를 들으며 위안을 삼는다는 김 위원장은 그러나 "지금 내려갈 수는 없다"고 잘라 말했다. 노조 간부를 '공동공갈에 의한 갈취자'로 만든 검찰의 수사가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가끔씩 전화로 경찰에서 문자가 날아옵니다. '이제 오래됐으니 그만 내려오라'는 내용인데, 지금 내려갈 수는 없죠. 언제 끝날지 모르지만 검찰의 공안탄압이 계속되는 한 고공농성은 멈추지 않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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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오마이뉴스 입사 후 사회부, 정치부, 경제부, 편집부를 거쳐 정치팀장, 사회 2팀장으로 일했다. 지난 2006년 군 의료체계 문제점을 고발한 고 노충국 병장 사망 사건 연속 보도로 언론인권재단이 주는 언론인권상 본상, 인터넷기자협회 올해의 보도 대상 등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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