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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 현관 앞에 아치 터널식으로 잘 조경된 으름덩쿨
건물 현관 앞에 아치 터널식으로 잘 조경된 으름덩쿨 ⓒ 정길현

서울 한복판에서 우연히 시골에서도 보기 힘든 산 속에 사는 으름을 볼 수 있었다. 종로구 수송동 연합뉴스 사옥 근처에서였다. 깊은 산속에서 사는 으름(으름덩굴)이 이렇게 서울시내 한복판에서도 잘 자라 오가는 이의 마음을 포근하게 해주고 있었다.

모르는 사람들을 저게 무얼까 지나가며 경비아저씨에게 물어보지만 그 역시도 몰라 머리만 긁적였다. 내가 사진을 찍자 사람들이 이것 이름이 뭐냐고 물어들 본다. 내가 으름이라고 답하자 경비 아저씨도 다가와서 오늘 처음으로 이름을 알았다며 좋아하였다.

가끔 외국인도 지나가며 이 신기한 열매의 이름을 물어보지만 답해주는 사람은 드물었을 것이다. 당연 시골 산에서 자란 사람들만 이 열매를 알 것이고 요즘은 시골에서도 보기가 힘들어 젊은 일반인들은 잘 대답을 할 수가 없었을 것은 당연하다.

덩쿨 밑에서 입만 벌려도 알맹이가 떨어져 입 속에 들어올 것 같은 먹음직스러운 으름
덩쿨 밑에서 입만 벌려도 알맹이가 떨어져 입 속에 들어올 것 같은 먹음직스러운 으름 ⓒ 정길현

쌍 떡잎식물 미나리아재비목 으름덩굴과의 낙엽 덩굴식물인 으름은 한국(황해도 이남지역)과 일본, 중국 지역에서 자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어렸을 때 큰집에서 초등학교 다닐 적 일하는 아저씨께서 멀리 깊은 산에 나무하러 가실 때면 "학교 갔다가 일찍 오거라. 맛있는 것 많이 따올게"라고 말하면 그날 따라 학교수업시간이 왜 이렇게 길까 투덜댔고, 이때쯤이면 으레 으름을 따서 가져 오시리라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잘 익어 벌어진 으름. 얼마나 맛이 있을까. 어느새 침이 넘어간다
잘 익어 벌어진 으름. 얼마나 맛이 있을까. 어느새 침이 넘어간다 ⓒ 정길현

학교수업이 끝나기가 무섭게 동네아이들을 멀리한 채 줄달음쳐 집으로 달려왔다. 아저씨는 환한 웃음을 지며 지게 위에 걸어 놓았던 으름이 매달린 덩굴을 한아름 안기어 주시곤 했었다. 가족이 없이 혼자서 우리 큰집 사랑채에 기거하시며 농사를 지어주시던 아저씨는 늘 나와 말동무를 하셨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저씨는 외로움을 달래고자 나를 말동무로 끌어들이기 위해 언제나 먹을거리를 벽장에 숨겨놓으셨다가 하나씩 꺼내주며 늦은 밤까지 말동무를 찾으셨던 것 같다. 전국을 안가본 곳이 없다던 아저씨는 겨울밤 새끼를 꼬았고 화롯불에 고구마를 구워 주시며 각 지방의 옛날이야기를 재미있게 해주시었고, 어린 나는 졸린 눈을 부비며 신기한 옛날이야기에 빠져 갔었다.

이른봄 산에 가시면 커다란 칡을 캐어다가 톱으로 잘라 알이 가장 잘 배어있는 조각을 남기어 놓았다 주셨고 봄에는 줄기에서 신맛과 단맛이 나는 싱아를 잔뜩 꺾어 지게에 매달아 콧노래 흥얼거리시며 개울을 건너오시던 아저씨 모습이 기억난다. 여름이면 머루와 오디를 따다 주셨고 초가을이면 내가 제일 맛있어 하던 으름을 따다가 주시며 맛있게 먹는 모습에 환한 웃음을 지으셨던 아저씨이다.

오늘 우연히 서울 도심속에서 으름을 보며 그 옛날 아저씨의 환한 미소를 떠올려 본다. 큰아버지께서 운명하시자 어느 날 내가 학교 간 사이에 아저씨는 "이제 어른이 안 계시니 다른 지방으로 가볼랍니다"라며 정처없이 떠나셨다고 한다. 아직도 살아계실까? 벌써 40년 전 일이데 추억 속의 아저씨 모습이 아련하다.
#으름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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