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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는 지면뿐만 아니라 인터넷에서도 '핵 의제'를 놓고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했다.
<조선일보>는 지면뿐만 아니라 인터넷에서도 '핵 의제'를 놓고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했다. ⓒ 조선닷컴
중앙언론사들과 달리 <강원도민일보>는 핵 위기와 관련, 지역경제에 미칠 파장을 우려하는 기사를 지속적으로 보도해 눈길을 끈다.
중앙언론사들과 달리 <강원도민일보>는 핵 위기와 관련, 지역경제에 미칠 파장을 우려하는 기사를 지속적으로 보도해 눈길을 끈다. ⓒ 강원도민일보 인터넷신문
매스미디어가 수용자를 변화시키는 신통력을 갖춘 '탄환'에 비유한 2차 세계대전을 전후로 한 초기 미디어 효과이론은 북핵 소식을 다루고 있는 국내 저널리즘에 부활한 느낌이다. 그러나 미디어 핵 의제를 보면 매우 즉각적이고 강력한 듯해 보이지만 정작 수용자 반응은 차분하다는 점이 약간 다르다.

1면 통단 제목의 공통된 키워드는 '핵 불안'이다. 약속이나 한 것처럼 신문의 레이아웃과 제목들이 비슷하다. 핵폭풍의 괴력을 활자와 종이에 담아 전달하고자 하는 의도가 짙다.

사설이 1면에 전진 배치되는 등 '우려했던 바가 현실로 다가왔다'며 극도의 불안감을 조성하는 보수신문들의 강도는 그 예상을 초월할 정도다. 불과 2주 전 북핵 관련 오보소동을 만회하려는 것일까. 지면과 인터넷 홈페이지 모두에서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있다.

결정적 증거가 확인되지 않은 "이상한 핵실험"이라고 표현하면서도 호들갑을 떨기는 전 언론이 매한가지다. 그러나 제시된 해법에선 두 부류로 갈린다. 중앙은 보수와 진보, 즉 강경론과 신중론으로 다시 맞선다.

압박과 제재를 무기로 한 강경대응책과 외교적, 평화적 문제해결에 비중을 둔 신중론으로 압축할 수 있다. 그러나 두 기류엔 한미동맹체제 강화 또는 북미 간 양자 대화를 전제한 복선이 깔려있다. 문제는 채널이다. 그러나 어떤 채널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관해서는 해법이 엇갈리고 있다.

지역언론사들의 핵 메시지 전달과정에서도 흥분강도가 중앙 못지않다. 지면뿐만 아니라 자사 인터넷 홈페이지 메인면을 온통 장식하고 있는 핵 관련 속보를 보면 알 수 있다.

핵 위기 지역적 성찰 제각각

<전남일보>는 핵요일인 10일 1면 통단제목을 사용했다.
<전남일보>는 핵요일인 10일 1면 통단제목을 사용했다. ⓒ 전남일보
<국제신문>도 10일자 1면에 핵 관련 기사를 통단 제목으로 다뤘다.
<국제신문>도 10일자 1면에 핵 관련 기사를 통단 제목으로 다뤘다. ⓒ 국제신문
이를 본 전국 각 자치단체장들은 크게 서운했을 것이다. 추석 연휴가 끝나자마자 내놓은 취임 100일 기념 장밋빛 청사진들이 핵 구름에 가려 빛을 발하지 못한 때문이다.

그러나 핵도 핵 나름. 의제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위기를 담은 핵의 색경이 지역별로 다르다. 핵위기에 대한 지역적 성찰도 다르다. 보는 각도에 따라 차이를 드러냈음이 눈여겨볼 만하다.

강원지역의 핵위기 체감지수가 단연 높다. 지면에 투영된 위기감에서 읽을 수 있다. '북핵 위기에 대한 강원도적 성찰'이란 10일자 <강원도민일보> 사설은 대표적 사례다.

이 사설은 강원도는 핵위기의 발원지와 접적 지역이라는 점을 크게 염두에 뒀다. 다른 걱정거리도 덧붙였다. 2014년 동계올림픽 유치전선에 악영향을 미칠 것을 크게 우려했다.

이 신문은 11일자 두 사설 '북핵사태로 위기 맞은 강원경제', '북핵 위기에 강원도는 무사한가'에서도 핵 파장의 직격탄 지역임을 강조하고 경계했다.

<강원일보>도 '금강산 관광을 비롯한 남북 강원교류 재개 불투명' 기사에서 지역에 미칠 파급효과를 걱정했다. 핵 실험지와 가장 먼 제주지역도 해상의 안전에 문제가 있음을 지적하며 잔뜩 긴장하고 있다. 북한 선박이 제주해협을 통해 핵실험 관련 설비와 자재를 핵실험 장소로 옮겼다는 송영선 한나라당 의원의 주장을 지역신문들은 머리기사로 부각시켰다.

10일과 11일 제주지역 일간지들은 "북한 핵실험을 위한 자재와 설비·핵물질들이 선박에 실려 제주해협을 통과, 이번 핵실험지인 김책항으로 들어갔을 가능성이 높다"고 밝힌 송 의원 발언과 함께 제주해협에 북한 상선이 드나들지 못하도록 즉각 봉쇄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경제파장 우려하면서도 공포에 집착

제주지역 언론사들은 북핵 실험과 관련, 불안전한 해상과 경제교류 차질을 집중 조명했다.
제주지역 언론사들은 북핵 실험과 관련, 불안전한 해상과 경제교류 차질을 집중 조명했다. ⓒ 제주일보 인터넷신문
"제주발 남북교류사업에 냉기류가 휩싸일 것"이라는 <제주일보> 기사도 눈에 띈다. "지난해까지 8년째 이어지면서 사실상 정례화 된 감귤 등 농산물 북한보내기 운동이 처음으로 중단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어 향후 추이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부산·경남지역 언론사들의 북핵 관련기사도 지역경제에 미칠 파문을 염려하는 목소리에 비중을 두었다. 그런 가운데 핵 위력이 지면에 발화된 시점에서 이념 논쟁을 다룬 칼럼들은 시선을 끌 만하다.

<부산일보>는 북 핵실험과 관련한 지역사회 및 국내외 반응을 다각도로 분석하여 시시각각 인터넷신문에 속보로 내보냈다. 그런 가운데 10일 '이념논쟁 제대로 하자'란 제목의 데스크 칼럼은 전달하고자 하는 의도가 묘했다.

"이 참에 보수와 진보를 확실히 갈라 유권자들이 이념 중심으로 분화된 정당의 색깔을 보고 정치적 판단을 하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엔 소모적 논쟁을 줄이자는 취지가 담겨있다.

그런데 같은 날 <국제신문>도 이념논쟁에 관한 외부 칼럼이 시선을 끈다. '진보진영 왜 위기인가?'란 제목의 외부 전문가 칼럼이다. "진보진영이 위기의 실체를 바르게 파악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진보진영은 실체파악에 실패하고 있다"고 밝힌 시론은 진보진영의 진정한 위기를 지적하고자 한다. 그러나 이 글이 북핵 위기가 고조되는 시점에서 다뤄져 여러 의미로 해석됐다.

그런가 하면 광주·전남지역 일간지들은 김대중 전 대통령 발언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무등일보>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북 핵 문제 해법과 관련한 미국 CNN 방송사 프로그램 출연을 비중 있게 전했다. "미국은 북한과 대화를 해야 하고 북한에 한 번 더 기회를 주는 결단이 필요하다"고 밝힌 내용과 함께 2차 남북정상회담의 필요성을 우회적으로 강조한 점 등을 부각시켰다.

뉴스 덩치에 비해 진실 허약

대전 충남지역 언론사들은 대덕연구개발특구 내에 있는 한국지질자원연구원과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의 긴박한 움직임을 전했다.
대전 충남지역 언론사들은 대덕연구개발특구 내에 있는 한국지질자원연구원과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의 긴박한 움직임을 전했다. ⓒ 중도일보 10일자 5면
<전남일보>와 <남도일보>도 '분당이 여당비극의 원인'이라는 김 전 대통령의 최근 발언내용을 다루면서 11일 김 전 대통령이 전남대에서 '한반도의 현실과 4대국'을 주제로 특별강연을 하기 위해 1박 2일 일정으로 광주를 방문할 것이라는 예고기사를 내보냈다. 북핵 언급에 관심이 쏠리고 있음을 시사했다.

<전북일보>는 대북사업에 차질이 우려된다는 기사와 함께 북한의 핵실험 소식이 김영남씨 가족들에겐 누구보다 가슴 아프게 했다는 기사를 통해 차별화를 시도했다. 지난 6월 금강산에서 막내아들 영남씨와 28년 만에 상봉한 어머니 최계월씨 사연이 그것이다.

지난 8월 평양에서 재상봉 계획이 북측의 갑작스런 이산가족 상봉중단 선언으로 무산된 뒤에도 만남의 꿈을 접지 못해 왔다는 안타까운 소식과 함께 이번 핵실험으로 남북관계가 급격히 경색돼 장기간 표류할 것을 우려했다.

대전·충남권은 대덕연구개발특구 내에 있는 한국지질자원연구원과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의 긴박한 움직임을 생생하게 전달했다.

특히 <중도일보>는 르포기사를 통해 "이들 연구기관들이 만일에 있을지 모르는 북한의 핵실험으로 인한 방사능유출 여부 감시를 늦추지 않았다"며 "현재의 기상조건에서 우리나라에서 방사능을 감지하기 위해선 다소 시일이 소요될 전망"이라는 관계자 인터뷰 등을 토대로 과학적 접근을 시도했다.

이처럼 중앙 언론사들이 핵 해법을 향해 마치 서로 다른 공을 굴리며 갑론을박하는 사이 지역언론사들은 저마다 해당지역 경제에 미칠 파문을 크게 염려는 분위기다. 그러나 딜레마의 색깔만 다를 뿐 분모는 같다. 핵 공포가 그것이다.

미디어 메시지가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인지,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인지를 판단할 겨를이 없는 모양이다. 핵 의제를 놓고 벌이는 보도경쟁에선 덩치에 비해 진실이 허약함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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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가 패배하고, 거짓이 이겼다고 해서 정의가 불의가 되고, 거짓이 진실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이성의 빛과 공기가 존재하는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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