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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일본의 재일동포들은 근래에 보기 드문 가장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북한의 핵실험으로 인해 나온 일본정부의 대북제재안에 의한 북한과의 왕래금지 조처이다.

대북제재안에는 연간 약 수십억 엔대에 달한다는 북한과의 경제적 교류를 원천봉쇄하는 '북한선박의 입항금지'와 조선적 국적을 가진 재일조선인들의 '대북왕래 금지' 등이 포함되어 있다.

북한과 일본은 국교가 성립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정식왕래는 힘들다 하더라도 만경봉호를 이용한 인적 교류는 인도적 차원에서 이뤄져 왔다. 또 경제적 교류는 일본에게도 이익을 가져온다는 측면에서 어느 정도 허용되어 왔는데, 이번 대북제재안에 의해 북한과의 왕래가 사실상 차단됐다.

그러나 대북제재안이 나온 이후 만난 몇몇 재일동포들은 "화는 나지만, 어차피 예상하고 있었던 일"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재일동포에 대한 차별이 없다? 정말로?

▲ 류코쿠 대학의 다나카 히로시(69) 교수. 재일외국인의 차별문제의 전문가로서 재일한국인·조선인 연금재판을 지원하는 모임의 공동대표직을 맡고 있다.
ⓒ 박철현
재일동포 1세로 도쿄 닛뽀리에서 자영업을 하고 있는 김수열(72)씨는 "북한이 핵실험을 했을 때, 아마 (아베 정권은) 속으로는 박수를 쳤을 것"이라며 "핵실험은 그냥 핑계고, 핵실험이 없었다 하더라도 언젠가는 재일동포들의 북한 왕래를 막는 조치가 나왔을 것"이라고 말했다.

재일동포 2세로 2001년에 귀화한 오오야마(43·한국명 박대식·자영업)씨는 "조선적을 가지고 있었는데, 너무 불편해서 어쩔 수 없이 귀화했다"라고 운을 떼면서 다음과 같이 덧붙인다.

"요즘엔 재일동포에 대한 차별은 없다고 공공연히 말하지만, 사실 행정적인 차별은 조금 더 교묘해진 측면이 있다. 그러니까 '재일외국인' 취급이라고 해야 하나? 극단적으로 설명하자면, 작년에 일본에 건너온 미국사람하고 여기서 태어나 몇십년 동안 생활한 나하고 행정적으로 똑같은 처리를 받아버리니까, 아니 조선적이었던 나로선 좀더 불평등할지도 몰라. 북한과 일본은 국교가 없으니까."

재일운동단체인 한통련의 손형근 고문은 "앞으로는 재일동포들을 이민사적인 측면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주류를 이룰 것"이라고 말한다.

즉, 강제징용·징병 등이 행해졌던 일제강점기 시대 이후 일본에 남게 된 재일동포 1세들을 '이민자'로 보는 관점이 확산되어 가고 있다는 것이다. 이민자라는 신분이 가지는 특수성, 즉 '외국인'으로서 일본 자국민과 비교했을 때 일정 정도의 차별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는 논리다.

이 논리에 의해 가장 피해를 보고 있는 사람들이 바로 '무연금' 때문에 고통받고 있는 빈곤층 재일동포 고령자, 장애인들이다.

재일동포의 국민연금 수난사

▲ 재일동포가 주장해 온 강제연행설은 신화에 불과하고, 재일문제를 강제연행이 아닌 이민문제로서 바라봐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칼럼. (<재일특권>에 수록. 타카라지마사 출판. 2006년) 이 칼럼을 쓴 아사카와 아키히로(32)는 재일한국인 3세로서 이민정책론이 전문이다. 현재 나고야 대학에서 강의중.
ⓒ 박철현
일본 헌법 제25조 2항은 "모든 국민은 최저한의 건강과 문화적 생활을 영위하기 위한 권리를 가지며, 이를 위해 국가는 사회복지, 사회보장 및 공중위생의 향상 및 증진을 위해 힘쓰지 않으면 안 된다"고 기술되어 있다.

일본의 국민연금법은 이 헌법조항을 토대로 1960년 10월에 처음으로 제정되었으나, 연금납부 및 수혜자를 '일본국민'으로 제한한 이후 '난민의 지위에 관한 조약'(이하 난민조약)에 저촉된다는 지적으로 인해 1982년 1월부터 국민연금법의 국적조항은 '표면적으로' 철폐되었다.

그러나 류코쿠 대학의 다나카 히로시 교수는 자신의 저서 <재일외국인(이와나미 신서, 1995년 발간)>에 다음과 같이 당시 후생성(현 후생노동성)의 입장을 폭로하고 있다.

"(전략) 당시 후생성은 재일외국인의 법적 지위에 관해서 아주 신중한 자세를 취했고, 국민연금에 대한 난민·외국인의 가입에 부정적인 자세를 나타냈다. 난민조약 제23조와 제 24조에는 노동법제 및 사회 보장에 관해서 재일외국인 및 난민에게 '자국민과 동일한 대우를 한다'라는 규정이 있다. 이 규정에 따른다면 재일외국인에게도 일본국민과 마찬가지로 국민연금법의 적용을 해야 하는데, 후생성은 이 조항을 마지막까지 '유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하략)."

이것에 대해 사회보험노무사 스즈키 타카히로씨는 "당시 재일외국인이라고 하면 거의 재일한국인·조선인을 의미했다"면서 "당시 후생성 장관이 하시모토 전 총리였는데, 그는 이들의 가입을 계속 인정해오지 않다가, 난민조약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인정해야 한다는 사실, 즉 '외압'에 굴복된다는 느낌을 주기 싫어서 끝까지 '유보'라고 주장한 게 아닐까 한다"고 털어놓았다.

그 후생성의 '고집'이 통했는지 당시 82년의 난민조약 이후에 나온 국민연금법 세부조항에는 다음과 같은 세부조항이 기술되어 있다.

"1982년 1월 1일 시점에서 만 20세 이상으로 이미 장애를 가지고 있거나, 1986년 4월 1일 시점에서 만 60세 이상이 되는 재일외국인은 국민연금법의 혜택을 받지 못한다."

"재일 위국인 구제조치는 일본인과의 균형 때문에 안 돼"

이 조항에 의하면 연금을 납부하고 싶어도 못했던 그 때, 장애를 입은 재일동포 장애자들과 이미 나이가 차버린 재일동포 고령자들이 구제받을 길이 없다는 것이다.

2004년 12월, 실제로 일본정부는 국민연금이 '임의가입'이었던 시기에 장애를 입은 당시의 학생·주부 등의 연금미납 장애자들이 사회에 나와서도 연금납부의 능력이 되지 않은 점을 인정해 장애 기초 연금의 성격을 띠는 '특별장애급부금'을 지급하는 법률을 제정했다.

이 법률을 입안한 후생노동성은 그 대상을 일본인으로만 국한시켜 '무연금의 재일외국인에게도 법의 적용을 받게 해달라'는 강한 요구를 재일동포, 시민단체로부터 받게 된다.

그 때 후생노동성이 내놓은 논리가 바로 "재일외국인들에게 경과조치(구제조치)를 설치하는 것은 일본인과의 균형을 고려할 때 적절하지 않다"라는 '이민자의 논리'였다.

이 발언에 대하여 스즈키는 "(재일외국인들이) 연금을 납부하고 싶어도 제도적으로 납부하지 못하도록 했다가, 구제할 때는 일본인들만 구제하겠다는 건데, 상식적으로 어느 쪽이 밸런스가 맞지 않는지 초등학생도 알 것이다"고 말하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 법안이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그 타깃이 사실상 재일동포라는 점이다. 2004년 입국관리국의 통계에 의하면 만 65세 이상의 외국인 등록자는 9만8703명이며 이중 한국·조선국적자가 무려 8만1238명으로 80%를 넘고 있다.

연금수급이 만 65세 이상부터 행해진다는 것을 염두에 둔다면 일본정부는 사실상 재일동포 배제를 목적으로 '특별장애급부금에 관한 법률'에서 일부러 재일외국인을 뺐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이 법률과 82년에 제정된 난민법의 세부조항에 반대하여 재일동포 고령자·장애인들은 일본의 시민단체들과 연대하여 국가를 상대로 싸우고 있으나, 모조리 기각당하고 있다.

무연금 재판은 모조리 기각

▲ 최근 온-오프를 막론하고 광범위하게 전파되고 있는 <재일특권> 논리는, 차별받고 있다고 주장하는 재일동포들이 사실은 터부의 영역에서 자유롭게 특권을 누렸다고 주장하는 논리다. 이러한 논리를 담은 만화 <혐한류>, <재일특권>등의 책들이 수십만부씩 팔리고 있다.
ⓒ 박철현
교토지역의 재일동포 장애인연합은 난민법의 "1982년 1월 1일 시점에서 만 20세 이상으로 이미 장애를 가지고 있는 재일외국인은 국민연금법의 혜택을 받지 못한다"라는 세부조항이 불평등하다며 2000년 3월 교토지방법원에 제소했지만, 3년 5개월간의 지루한 법정공방끝에 기각 당했고, 즉시 오사카 고등법원에 항고하지만 다시 기각 당했다. 2005년 10월 최고재판소에 상고하여 현재 심리가 진행 중이다.

마찬가지 교토지역의 재일동포 고령자들도 시민단체들과 연합하여, 2004년 12월 교토지방법원에 제소했지만 기각당했다. 오사카의 재일동포 고령자들도 2003년 10월 오사카 지방법원에 제소했지만, 역시 기각당해 고등법원에 항고한 상태이다.

재일동포가 연금문제로 일본정부를 상대로 한 싸움에서 이긴 전례는 있다. 1970년대 재일동포 김현균씨가 도쿄 아라카와구 국민연금권장원의 권유로 12년간 납부한 연금을 찾으려고 했을 때 '행정착오다, 외국인은 수급권리가 없으므로, 납부한 연금 전액을 돌려주겠다'는 사회보험청에 반발하여 결국 이긴 바가 있다.

이 재판은 이후 '연금재판'으로 불리며 국적차별에 반대하여 승리한 대표적인 예로 손꼽히는 사례이기도 하다.

그러나 지금의 상황은 당시와 많이 다르다고 한다. 익명을 요구한 재일동포 2세의 한 사법서사는 "그 때(연금재판)는 누가 봐도 알 수 있는 국민연금권장원의 실수가 있었지만, 이번 같은 경우는 아예 법률이 그렇게 정해져 있는 상태라서 법률개정 같은 근본적 해결 없이 제소하는 것만으로는 이기기 힘들다"고 말한다.

그는 또 "일본은 한국과 달리 헌법재판소라는 기관자체가 없기 때문에 위헌소송을 건다든가 하는 것도 현행법상 무리가 있다"며 "무엇보다 요즘 같이 경색된 국면에서, 나도 재일이지만, 재일동포 권익신장이 호응받지 못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재일조선일이 귀화하는 이유는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터져 나온 핵실험, 그리고 여전히 북한문제 의제를 점하고 있는 납치문제…. 조선적을 유지하고 있던 재일조선인들이 요 몇년 사이 급격하게 재일한국인, 혹은 일본인으로 귀화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여러 어려움 속에서도 재일동포 장애인·고령자들은 자신들 뿐 아니라 같은 처지의 이웃들의 권익을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한국의 독자들도 그들에게 힘을 실어주길 부탁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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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부터 도쿄거주. 소설 <화이트리스트-파국의 날>, 에세이 <이렇게 살아도 돼>, <어른은 어떻게 돼?>, <일본여친에게 프러포즈 받다>를 썼고, <일본제국은 왜 실패하였는가>를 번역했다. 최신작은 <쓴다는 것>. 현재 도쿄 테츠야공무점 대표로 재직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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