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모든 것이 계획했던 것처럼 완전하다고 느낀 그는 오늘 해야 할 마지막 일을 처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상만천이 은밀하게 만나보라고 명한 성곤(聖棍) 담자기(譚紫麒)를 만나는 일이었다. 동정오우 중 운중보주 나군백과 처음 친교를 맺은 인물로 다른 친구들의 위명에 가려 오히려 잘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 성곤이었다.

'주작각(朱雀閣)에 머문다고 했던가?'

자신이 성곤을 찾아가고 있는 것을 운중보에서 모를 리 없다고 생각했다. 철담 하후진이 죽은 이후로 운중보의 경비는 삼엄하게 변했을 것이라 생각했다. 오해였지만 그렇기 때문에 자신이 아무리 은밀하게 움직인다 하더라도 그들에게 파악될 것이라 예상하고 있었다. 하지만 용추는 굳이 자신의 거동을 이곳 운중보의 인물들에게 공공연하게 알릴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는 앞서 보아두었던 숲길로 접어들었다. 어차피 주작각으로 가려면 보주가 머무는 운중각 쪽으로 올라가야 했다. 헌데 얼마쯤 갔을까? 무언가 움직이는 미세한 소리가 들렸다. 용추의 몸이 긴장되었다.

'무엇일까?'

기분 나쁘게 느껴지는 소리였다. 그의 생각이 끝나기도 전이었다.

파--팍---!

마치 야조처럼 나무 위에서 사뿐히 날아 내리며 무언가 자신을 향해 쏘아오는 물체가 있었다. 하지만 온통 검은빛이어서 무언가 확인하기도 전에 용추는 급히 신형을 뒤틀며 뒤로 주르륵 물러났다.

사악---!

허벅지에 뭔가가 스치고 지나가는 소리와 함께 가시에 긁힌 듯한 통증이 밀려들었다. 무언가 자신의 허벅지를 베고 지나갔다. 깊지 않은 상처로 느껴졌지만 뜨뜻한 피가 허벅지를 타고 흐르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자칫 자신의 반응이 조금만 늦었더라면 허리가 베어졌을 것이다.

한치 앞도 분간할 수 없는 어둠 속에서 그는 안력을 돋우어 스쳐 지나간 물체의 움직임을 파악하고자 애썼다.

"웬 놈이냐?"

사람이었다. 흑의를 입고 복면까지 써 전신이 온통 어둠과 같은 흑색이었다. 더구나 들고 있는 검도 옻칠을 해놓았는지 금속의 날카로운 빛을 감추고 있었다. 하지만 흑영은 대답도 없이 재차 미세한 살기를 뿜으며 용추에게 쏘아왔다. 어둠 속에서 공기를 가르는 소리가 들렸다.

용추는 내심 후회했다. 상만천의 안전을 위해서 그에게 배정된 호위마저 떼어 두고 홀로 나온 것이 잘못이었다. 사실 운중보 내에서 자신을 노릴 자들이 있을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던 안이함도 한몫하였다.

그는 빠르게 품속에서 짧은 비수를 꺼내들었다. 비수라고 했지만 날이 반월처럼 원을 그리고, 그 끝이 날카롭게 초승달을 닮은 단도(短刀)라 하는 것이 정확한 표현이었다. 주로 대막(大漠)이나 북방 유목민들이 양이나 소를 잡을 때 사용하는 단도처럼 보였다. 이 단도가 그가 가진 유일한 병기였지만 그저 평범한 병기는 아니었다.

슈우욱---

어둠 속에서 다시 파공음이 들리며 살기 어린 검날이 그를 베어왔다. 용추는 급히 신형을 뒤로 물리며 파고드는 검날을 쳐냈다. 용추로서는 처음부터 전력을 다해야겠다고 단단히 마음을 먹었다. 어둠은 자신의 편이 아니라 상대의 편이었다.

빠지직---

쇠가 긁히는 소리와 함께 어둠 속에서 불꽃이 튀었다. 동시에 용추의 신형이 용수철 튕기듯 앞으로 쏘아나가며 주춤하는 흑영 가까이 파고들었다. 신속한 용추의 움직임에 흑영이 당황한 듯 헛바람을 내면서 검을 사납게 휘둘렀다.

"헉--!"

단병은 상대와 거리를 좁힐 때 그 위력을 백분 발휘한다. 그래서 단병을 쓰는 자는 대개 신법(身法)이 탁월하고 보법(步法)이 절묘한 것이 특징이다. 용추의 신법은 매끄러웠고, 보법 역시 현란했다. 상대는 용추가 이 정도로 강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용추가 일순간에 흑영을 궁지에 몰아넣었다. 상대가 자신을 완전하게 파악하기 전에 승부를 내는 것이 필요했다. 순간 한 마디 나직한 음성이 들리는 것과 함께 용추는 예리한 살기가 자신의 등 뒤로 쏘아오는 것을 느꼈다.

"예상 외로 대단한 고수군."

나직한 목소리는 감정이 전혀 들어있지 않아 소름이 끼칠 정도였다. 용추는 빠르게 옆으로 돌면서 좌측으로 급히 서너 걸음 물러섰다. 하지만 자신의 등 뒤를 노리고 파고들었던 검날은 빠르게 하늘거리며 그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상대의 검은 검날이 종이장처럼 얇은 연검(軟劍)이었다. 그것은 마치 뱀의 혀처럼 허공에서 자유자재로 휘어져 쳐내려는 용추의 단검을 무력화시키고, 결국 가슴에 검상을 그어 놓았다.

"흡…!"

상대는 고수였다. 연검을 사용하는 자들은 대개 민첩한 몸놀림과 함께 심후한 공력의 소유자다. 자칫 익숙지 못한 자가 연검을 사용하다가는 상대는커녕 자신의 팔을 베기 십상이었다. 용추는 급히 뒤로 몇 번이나 제비돌기를 하고 나서야 가까스로 연검의 공격권을 벗어날 수 있었다.

'도대체 이 작자들이 누구지?'

알 수가 없었다. 자신을 왜 노리고 있는지, 자신이 성곤 어른을 만나라 갈 것이란 사실을 어떻게 알고 길목을 지키고 있었는지 의문투성이였다. 하지만 그는 마음을 가라앉히며 어쩔 수 없이 자신이 숨겨 둔 무공을 사용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에게는 비장의 한 수가 있었다. 자신이 그것을 익혔는지 아는 사람은 오직 상만천 한 사람뿐이었다. 그 무공의 비급은 상만천이 준 것이고, 그는 그것을 지난 십삼 년 동안 익혔다. 용추는 자신을 향해 쏘아오는 연검과 흑영을 향해 빠르게 왼손을 뒤집으면서 튕겼다.

띠리리링---!

그의 열 손가락에서 구슬 굴러가는 소리와 함께 희미한 백색기류가 사방으로 쏘아나갔다.

"옥음지(玉音指)…?"

갑작스럽게 달려들던 흑영의 입에서 당황한 음성이 터져 나왔다. 용추가 옥음지를 익혔으리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았다. 뒤에 나타난 연검의 소유자도 당황하고 있는 것이 역력했다.

옥음지는 발출할 때는 옥구슬이 부닥치는 듯한 영롱한 소리를 낸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었다. 하지만 이름과 달리 변화가 다양하고 한자 두께의 청석도 꿰뚫을 만한 위력이 있어 무림 오대지공(五大指功) 중 하나로 손꼽는 터였다. 무엇보다 중요한 사실은 과거 구룡(九龍) 중 옥룡(玉龍)의 본신절기가 바로 옥음지라는 사실이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오마이뉴스와 저 인생의 후반기를 풍미하게 될지도 모를 무협작품을 함께하고자 합니다.

이 기자의 최신기사천지는 만인의 것이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