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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다. 여기서 수이를 잃었고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갔다.

솟은 우뚝 멈추어 소리쳤지만 그가 한 말의 의미를 알아듣는 이는 사영밖에 없었다. 키와 만난 이후 솟은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의미를 누구에게도 전할 수 없게 되었다. 대신 솟은 모든 살아 움직이는 것들이 전하는 의미를 알아들을 수 있었다.

왜 이렇게 되었는지는 솟으로서는 알 수 없었지만 그로 인해 불편함을 느끼거나 하지는 않았다. 솟이 내키는 대로 행동해도 모든 이들은 솟의 뜻에 따라 움직였다. 배고프면 땅을 파서 먹을 것을 얻었고 목이 마르면 땅에서 샘물이 솟아났다. 하쉬들은 그러한 일들을 보고 처음에는 놀라움을 금치 못하면서도 그것이 흔히 있는 일이라고 여길 따름이었고 자신들의 계획만을 끊임없이 검토할 따름이었다.

먼저 솟은 사람들을 셋씩 짝 지워 주변을 탐색해 보도록 지시했다. 위험한 짐승이 있는가를 알아보기 위함이었다. 뜻밖에도 주위에는 위험한 것들 따위는 없었다.

-그 놈들이 애써 여기까지 와 수이를 잡아 갈 정도였으면 왜 이곳을 이제는 버려두었을까? 혹시 다른 사냥감을 쫓아 옮겨간 건가?

솟은 자신의 말을 유일하게 알아듣는 사영을 잡고 물어보았다. 사영은 잠시 눈을 감고 몸을 떨더니 땅바닥에 빗금을 잔뜩 그려 놓았다. 그렇지는 않다는 의미였다.

-내 뜻을 전해라. 이제 우리는 이곳에서 하루 낮 하루 밤을 걸어 간뒤 하쉬라는 짐승들과 싸워야 할 것이다. 그 놈들이 흉폭하고 위험한 짐승이라고는 하나 우리에게도 2마리의 하쉬들이 있고 그들은 우리를 도울 것이다. 모두 마음을 굳게 먹고 오늘은 푹 쉬어라. 숲이 우거진 곳에 사슴 떼가 있으니 그것으로 모두 배를 채우라.

솟의 말을 전해들은 사영은 사람들과 늑대들이 모인 곳으로 가서 몸을 흔들어 대었다. 사영이 자신의 의사를 전할 때 쓰고는 하는 그림은 이해하는 이가 극히 적었다. 사영은 이를 대신하기 위해 새된 숨소리를 내어가며 춤을 추어 의사를 전달했다.

사람들과 늑대들은 춤사위에 흥분하여 노래를 불렀고 그 중 일부는 사슴을 잡으러 숲으로 들어가 어렵지 않게 사냥에 성공해 금방 돌아 왔다. 아니, 사슴들이 거의 제 발로 굴러들어 왔다고 보아도 이상할 것이 없을 정도였다. 불이 피워졌고 노래가 계속되고 고기가 구워질 무렵 솟은 언젠가 키가 그랬던 것처럼 시큼한 맛이 나는 열매즙을 들고 그들 앞에 나타났다.

-이것을 한 모금씩 마셔라.

솟은 그것을 들고 사람들을 사이를 돌아다니며 한모금씩을 나누어주었다. 어떤 이는 그 특유의 냄새로 인해 싫어하기도 했지만 솟이 권하는 것을 차마 마다할 수는 없었다. 그것을 마신 이들은 노랫소리에 더욱 흥이 더해졌고 절로 어깨춤이 나기 시작했다. 솟은 그들과 같이 어울리지 않고 조금 떨어진 곳에서 그들의 춤과 노래를 지켜보았다. 그러한 솟의 곁으로 사영이 다가와 땅에 그림을 그렸다.

그림은 하늘에 떠 있는 달을 그리고 그 옆에 떠 있는 별 중 하나를 작은 점으로 표현한 것이었다. 솟은 바로 그 그림의 의미를 알았지만 짐짓 모른 척했다. 그것은 사영이 솟과 동침하고 싶다는 의미였다. 사영은 멍하니 솟의 얼굴만을 바라보다가 바닥에 그린 그림을 지우고 조금은 떨리는 손길로 다른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것은 상세하게 독니까지 묘사한 한 마리의 뱀이었다.

솟은 그것을 본 순간 분노로 눈이 한바퀴 뒤집어지다시피 하더니 발로 그것을 마구 지운 후 사영을 걷어차 버렸다. 바닥에 나뒹군 사영은 마구 울었지만 춤과 노래에 빠진 사람들은 누구도 사영을 돌아보지 않았다. 솟의 분노는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바닥에 나뒹군 사영을 사정도 봐주지 않은 채 마구잡이로 걷어찼고 사영은 마구 비명을 질러대었다. 급기야 이를 보다 못한 하쉬중 하나가 달려와 소리를 지르며 말렸지만 솟의 구타는 끝이 나지 않았다. 사영은 솟에게 심하게 얻어맞으면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말문이 트이기 시작했다.

"빛! 영원한 빛! 끝나지 않는 빛!"

그것이 사영의 마지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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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 '고주몽', '홍경래의 난' '처용'을 내 놓은 작가로서 현재도 꾸준한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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