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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요일엔 일본 대사관 앞에서 일본의 사죄와 배상을 요구하며 시위를 했던 나눔의 집 할머니들이 국회 앞에서 요양원 건립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 김동원
매주 수요일이면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선 시위가 벌어진다. 열여덟, 열아홉의 꽃다운 나이에 일본군에 끌려가 말 못할 치욕을 강요당했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이 일본에 대해 사죄와 배상을 요구하는 시위이다. 1992년 시작된 이래로 이 시위는 비나 오나 눈이 오나 한 번도 중단된 적이 없었다.

25일 그 수요 시위의 주축을 이루고 있는 '나눔의 집' 할머니들이 일본대사관이 아닌 국회 앞으로 모였다. 할머니들이 국회로 간 것은 국회 견학을 위해서가 아니었다.

할머니들이 일본대사관에서 국회로 발걸음을 돌린 이유는 지난 추석 때 '나눔의 집'을 찾은 여성부 장관이 위안부 기념관을 건립하는데 20억원을 지원하겠다는 얘기를 꺼냈기 때문.

기념관을 건립하는 것은 할머니들에게는 좋은 일일 것 같지만 당장 할머니들에게 급한 것은 기념관이 아니라 몸의 건강을 보살펴줄 요양원이다. 위안부 할머니들의 생활 공동체인 '나눔의 집' 안신권 사무국장은 할머니들을 위한 전문요양시설은 단순히 할머니의 건강을 보살핀다는 의미를 넘어선다고 말한다.

안신권 국장의 말이다.

▲ 김군자 할머니가 발언을 하는 동안 목이 메어 말을 잇지 못하자 김순옥(왼쪽) 할머니가 등을 쓸어주고 있다.
ⓒ 김동원
"할머니들은 살아있는 역사이다. '나눔의 집' 앞에 위치한 '일본군 위안부 역사관'에서 안내를 맡고 있는 일본인 자원봉사자 잇페이씨는 역사관에서 안내를 할 때 할머니들과 생활하면서 접한 증언을 함께 덧붙인다. 사람들은 역사관 밖으로 나가면 그 증언의 인물들을 곧바로 만나게 된다. 그것보다 더 살아있는 역사를 어디에서 찾을 수 있겠는가. 역사가 버젓이 살아있는데 그 살아있는 역사를 사는 날까지 건강하게 보살펴야 하지 않겠는가. 어떻게 보면 기념관은 그 살아있는 역사를 일찌감치 박제화하는 일일지도 모른다."

그동안 요양소 건립을 위해 후원회원들의 지원으로 '나눔의 집' 옆에 시설 건립에 필요한 부지 700여평을 매입하는 등 노력을 기울여왔고, 건립기금도 1억4천만원 가량을 모았다고 한다. 그렇지만 4년이 지나도록 주무 관청인 하남시로부터 허가조차 받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기념관 건립에 20억원을 지원한다는 얘기는 할머니들에 대한 차별로 인식이 되고 있다.

기자 회견장에서 발언에 나선 김군자 할머니는 이렇게 말했다.

"요양소 건립에는 전혀 관심을 보여주지 않고, 기념관 건립에 20억을 지원한다는 것은 위안부 문제의 해결을 위해 한배를 타고 있는 정대협과 나눔의 집 할머니들을 이간질시키는 일이다. 차별 없는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

지지발언에 나선 대학생 단체 월드카프 코리아의 고예주(우석대 4학년) 학생은 "아마 제가 50년 전에 태어났더라면 할머니들이 겪었을 고난이 고스란히 나의 것이 되었을지도 모른다"며 "할머니들이 그 고난과 맞서 싸우며 오늘의 이 자리까지 왔기 때문에 우리가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오늘이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 나는 할머니들의 건강을 보살피는 요양소 건립이 다른 무엇보다 시급하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대구에서 올라온 김용수 할머니는 "요양소는 우리들이 편안하게 죽으려 하는 곳이 아니"라며 "나는 200년이고 300년이고 끈덕지게 살아서 일본의 과거 만행을 고발하고 증언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요양소는 내가 영원히 살아서 일본의 사죄를 받아내기 위해 필요한 곳"이라고 주장했다.

▲ 성명서와 할머니들의 뜻이 담긴 서류를 안명옥 의원의 사무실에 전달하고 협조를 부탁했다.
ⓒ 김동원
'나눔의 집' 할머니들은 기자회견을 마친 뒤 지난해 국적법을 발의했던 안명옥 의원을 찾아 자신들의 뜻을 전달하고 협조를 부탁했다. 서류는 오도성 수석보좌관이 접수했다.

국회를 나서는 할머니들의 등 뒤 하늘은 잔뜩 흐려있었다.

덧붙이는 글 | 나눔의 집 후원 및 자원봉사 문의 전화: 031-768-0064
나눔의 집 홈페이지: www.nanum.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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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를 갖고 돌아다니면 세상의 온갖 것들이 말을 걸어온다. 나는 그때마다 사진을 찍고 그들의 말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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