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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커스와 힙합이 결합된 장면. 시댄스 폐막작인 캐피그무용단 '버려진 땅'
ⓒ 시댄스
우리나라 비보이 실력은 세계 정상급이다. 그들은 세계 대회에 나가서 큰상을 휩쓸기도 한 그들은 길거리 댄서라는 이미지를 벗고 목하 새로운 도전에 한창이다.

홍대 앞 전용극장에서 장기공연을 하는가 하면, 가야금연주와의 크로스오버를 통해 한국에서만 가능한 비보이 트렌드를 만들기도 하였다. 그런가 하면 좀 더 무용적인 발전을 위해 최승희 무용 전문가 백향주와 장기 공연을 만들기도 했다.

길거리 힙합이 모태인 그들은 다른 장르와 만나는 데 있어서도 역시 자유롭다. 그러나 국내 비보이 공연의 고민은 춤으로 보여줄 수 있는 시간과 작품성의 한계를 뛰어넘는 것이다. 그것에 대한 해답의 실마리를 찾을 만한 공연이 있었다.

서울국제무용축제(Sidance 예술감독 이종호)와 극장 용이 공동주최한 시댄스 폐막작인 프랑스 캐피그 무용단의 '버려진 땅'이 24·25일 뜨거운 관심 속에 막을 내렸다. 캐피그 무용단은 기존 무용계에서 비주류로 여겨지던 힙합과 서커스 등을 무대예술의 중심으로 옮겨 현재 유럽에서는 뜨거운 인기를 한 몸에 받고 있다.

캐피그의 공연은 춤의 대중화 고민을 안고 있는 무용계와 예술성 확보의 숙제를 갖고 있는 힙합팀들 양쪽 모두 초미의 관심사였다. 공연 결과 양쪽 모두에게 명확한 해답을 주었다고 보기 어려웠다. 공연 한번으로 트렌드를 완벽히 분석하기에는 무리가 따르는 것이 분명하다. 캐피그의 공연과 인터뷰를 종합하여 그 실마리를 찾고자 한다.

▲ 안무가 메르주키에게 '버려진 땅'은 자유로운 땅이며, 어릴적 뛰어놀던 향수의 땅이다. 그곳의 담색깔이 황토색인 것이 우리의 향수와도 닮아있다
ⓒ 시댄스
힙합과 서커스를 결합시킨 캐피그의 '버려진 땅'은 '내버려져 자유로운 땅'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힙합의 정신은 여러 가지겠으나 그 중 핵심은 역시 자유. 또한 안무가 무라드 메르주키가 어린 시절을 보냈던 환경이다. 결국 '버려진 땅'은 자유와 향수의 땅이라고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그들의 자유와 향수는 우리가 느끼는 것과 다를 수 있다.

객석불이 꺼지고 아주 서서히 무대가 밝아진다. 그곳에는 세 명의 무용수가 검은 양복을 입고 마이클 잭슨을 통해 익숙해진 '제자리 걷기' 춤을 선보인다. 배경으로는 유럽 빈민가 뒷골목을 연상시킬 허름한 담벼락이 길게 서있다. 작품의 대체적인 느낌은 연극적 내러티브가 짙은 '탄츠 씨어터'를 연상케 했다.

뒷골목에서 힙합을 추며 노는 젊은이들의 모습을 그린 '버려진 땅'은 힙합이 가진 저항, 분노 등보다는 호기심 많은 동경의 정서로 다가왔다. 아라비아, 안달루시아, 플라멩코 리듬을 가미한 힙합 음악은 그런 정서를 좀 더 분명하게 해석하도록 도와주었다. 무대 미술과 무용수들의 춤, 그리고 음악으로 인해 캐피그의 작품은 회화성이 넘쳐흘렀다.

비보이 배틀 식으로 본다면 분명 캐피그가 무대에서 보여준 갖가지 묘기(?)는 비보이들보다 못하고, 현대무용의 무대어법 측면에서도 부족한 면이 보인다. 그러나 부족한 그 둘이 결합된 결과는 현재 유럽 현대무용의 해법이 되고 있다. 그렇다고 그것이 유럽의 전체적인 트렌드가 아니라 다양한 현대무용의 하나로써 자리를 굳혀가고 있다는 것뿐이다.

파리 8대학에서 무용이론 박사과정 중인 무용이론가 오선명씨는 "직접 만난 것은 서울이지만, 캐피그의 공연과 명성은 프랑스에서 익히 보아왔다. 오늘 공연은 캐피그 최신작이기에 아직 예술힙합에 익숙지 않은 우리들에게 낯설게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최근 우리나라 힙합춤이 다양한 분야와 결합을 시도하고 있기 때문에 이 작품은 중요한 텍스트가 되어줄 것"이라고 평가했다.

▲ 한불수교120주년기념의 의미도 담고 있는 캐피그 공연 전 로비에는 프랑스의 이색적인 거리악사가 이목을 끌었다
ⓒ 김기
"힙합은 가능성 많은 젊은이"
[인터뷰] 캐피그 무용단 무라드 메르주키

▲ 힙합을 무대예술로 끌어올린 프랑스 캐피크 무용단 안무가 메르주키와 통역을 해준 무용이론가 오선명
ⓒ김기

- 무라드 메르주키씨의 안무에 힙합이 가미된 것이 흥미로운데, 힙합은 한국에서도 그렇듯 프랑스 무용계에서도 아직 주류에 편승하지 못한 장르인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유럽 현대 무용의 하나의 코드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프랑스에서의 힙합의 발전 양상이 어떠했는지, 그리고 향후의 발전을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지 의견을 듣고 싶다.
"힙합은 80년대 미국으로부터 프랑스로 들어왔는데, 그 때는 예술적이라 할 수는 없는 거리의 춤에 불과했다. 시간이 지나 90년대에는 안무, 극장, 의상 등 무대에서 공연이 이루어질 수 있는 요소들이 갖춰졌다. 그런 식으로 시간이 지날수록 조금씩 발전되어 오고 있다. 이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조금씩 발전되어감에 따라 인지도를 높이고, 예술성을 높이면서 무대예술화 할 수 있는 것이다.

또 한편으로 나는 작품의 영감을 삶, 일상에서 얻기 때문에 어린 무용수들에게 많은 흥미와 관심을 가지고 있다. 또 힙합은 본래 거리의 춤이었다. 이러한 일상의 것들과 거리에서 보는 것을 무대로 가져올 수 있도록 하는 인프라와 무대에서 봤을 때도 거리에서와 같은 에너지를 느낄 수 있도록 하는 역량을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힙합은 아직 젊은 춤이고 많은 일을 해야 한다. 그만큼 많은 가능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도 많은 시도가 필요하다. 저는 하나에 얽매이기보다는 새로운 것을 시도하고 새로운 프로젝트들을 발전시켜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 한국 힙합에 대해서 들어본 적이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들은 뛰어난 테크니션들인데, 그들이 점점 안무에 관심을 갖고 있다. 앞으로 한국의 비보이들이 안무를 하고, 하나의 작품을 만들어 내려면 어떻게 해야 할 지에 대한 조언 또는 제안을 해줄 수 있는가 ?
"한국의 힙합과 비보이들의 뛰어난 테크닉에 대해서는 물론 잘 알고 있다. 한국 비보이들은 테크닉적으로 매우 강하고 열정적이며, 그것을 보여주기를 좋아한다. 동시에 경쟁과 배틀에 강한 면모를 보여주기도 한다.

그렇지만 곧 이들이 본격적으로 안무에까지 관심을 갖는 때가 올 것이다. 이 때 극장이나 단체에서 기획 또는 제의를 함으로써 그들이 작품 활동을 할 수 있는 인프라를 구축해주고, 테크닉을 발전시키는 것뿐만 아니라 다른 장르, 요소 등 인접 장르와 함께 혼합되어 발전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할 것이다. 나 역시 그와 같은 과정을 거쳤다."

- 하지만 현재로서도 그와 같은 방식으로 비보이 공연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 후의 발전, 즉 안무가로서 발전하는 비보이들의 성장은 어떤 방향으로 이루어져야 하는가.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자신이 마음 속에서 원하는 것이고, 그 원하는 것을 어떻게 발전시킬 것인가의 문제이다.

프랑스에는 교육을 받은 이후 학교에서 증명서를 받고 그것을 받은 친구들이 모여 창작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있는데, 이것은 아마추어에서 프로로 발전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좋은 틀이자 변화의 기회가 되는 것이다. 이후 보통 5~6명이 모여 컴퍼니를 조직하여 프로젝트를 만들고 작품활동을 하면서 투어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기곤 한다.

한국의 사정을 정확히 알지는 못하지만, 작품을 발전시키는 데 있어 이러한 조직과 기반은 매우 중요하다."

- 케피그 무용단의 춤에 공통적인 하나의 요소가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케피그 무용단의 뿌리(origin)은 무엇인가?
"아까도 얘기했듯 나는 어렸을 때 서커스를 하다가 힙합을 시작하였고, 그 후 공연을 하고 싶었다. 그래서 케피그 무용단을 결성하게 되었다. 사실 힙합은 거리의 춤이고, 함께하는 친구들은 거리의 춤을 함께 배우고 추면서 같이 자란 친구들을 말한다. 춤에 대한 철학, 관심, 열정, 그리고 어렸을 때의 꿈에 대한 추구가 바로 케피그 무용단의 뿌리다."

- 지금까지의 말을 통해서 보자면 당신은 작가주의나 예술에 대한 엄숙주의 등과는 거리가 먼 것 같다. 당신은 우리가 흔히 예술이라 생각하지 않았던 서커스 등을 예술로 승화시켰다. 예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넓은 층의 관객을 확보하여 보다 많은 대중들에게 다가가는 것이다. 공연장에서는 다른 피부, 다른 언어, 다른 외모의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고, 이들 모두와 소통하고자 한다. 나는 나의 작품을 통해 나에게 연결된 것을 보는 것 보다는 어떻게 다른 장르를 만나고 다른 사람을 만나는가를 가장 중시한다." / 글 김기·통역 오선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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