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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정태춘과 박은옥이 걸개그림을 걸고있다. 10월17일
가수 정태춘과 박은옥이 걸개그림을 걸고있다. 10월17일 ⓒ 이승열
평택미군기지 확장반대와 대추리, 도두리 주민 주거권 옹호를 위한 문예공동행동 단체 '들사람들'이 10월 13일부터 11월 11일까지 진행하는 거리예술제의 무대풍경이다.

다시 길거리로 나온 화가들

걸개그림의 주인공은 대추리 주민 김영녀(86) 할머니로 김천일 화백이 행사장에서 직접 그린 작품이다. 골목에서, 경로당에서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우리들의 할머니'의 모습이지만, 할머니의 마음은 착잡하다.

공연이 시작되자 거리의 스크린에서 할머니의 모습이 스친다. 치마를 걷어 올린 속고쟁이 안에서 꾸깃꾸깃한 돈을 꺼내주며 어린 손녀에게 너무 늦지 말라고 당부하고 있었다. 할머니의 말소리가 느릿느릿 이어졌다. "이 나이에 돈(보상금)이 뭔 필요이란 말여. 이곳은 내가 오래 오래 살은 내 몸땡이가 묻힐 곳이란 말여."

대추리 주민 문정현 신부를 그리는 류연복 화백. 10월 24일
대추리 주민 문정현 신부를 그리는 류연복 화백. 10월 24일 ⓒ 이승열
다시 길거리로 나온 화가들은 김영녀 할머니 외에도, 조선례 할머니, 방승률 아저씨, 도두2리 이상렬 이장의 초상을 그렸다. 류연복 화백도 한 평짜리 캔버스천을 보도블록에 얹어놓고, 납작 붓 한 자루와 먹물로 윤곽을 잡은 후, 코와 입, 수염과 머리카락을 그렸다.

80년대부터 90년대 중반까지 민중미술운동에 열심이었던 그였지만, 길바닥에서 그림을 그리기는 처음이라며 쉬지 않고 붓을 놀렸다. 그리고 얼마 후 운동가 문정현 신부가 아니라, 대추리 주민으로서의 문정현 신부가 보도블록 캔버스 위에 모습을 드러냈다.

행사기금 마련을 위해 열심히 판화를 파는 가수 박은옥. 10월 17일
행사기금 마련을 위해 열심히 판화를 파는 가수 박은옥. 10월 17일 ⓒ 이승열
그러나 이제, 이러한 화가들의 열정을 바라보는 눈길은 그리 많지 않다. 오히려 간이 판매대에서 판매하는 기금 마련을 위한 1만5천원짜리 판화와 가수 정태춘, 박은옥 부부의 엘피판에 관심을 갖고 대추리가 어디인지, 왜 공연이 열리고 있는지 질문을 시작한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대추리, 도두리보다는 운 좋게 만난 추억의 엘피판에 '추억의 가수'에게 사인을 받는 일이 더 중요했고, 그래서 그들은 진행 중인 공연이 끝나기를 지루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세상은 이렇게 변했다. 화가들이, 가수들이, 굿을 하는 만신이 다시 거리로 나오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발생했지만, 관심을 가져주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다.

대추리와 도두리 주민들이 무대 위에 올라가 평생 농사짓던 삶의 터전이자 고향을 뺏기고 있다며 도와달라고 호소를 해도, 보상금 받았을 텐데, 라는 한마디로 그들의 아픔을 단순화시키며 종종걸음을 재촉한다.

그래서 화가들을 비롯한 문화예술인들이 다시 거리로 나온 것이다. 대추리와 도두리 주민들을 대신해서 그들의 의지를 종로 한복판에서 알리고 있는 것이다.

고향을 지키다 '범법자'가 된 사람들

"대추초등학교가 철거되고, 황새울 들녘에 철조망이 쳐졌다고, 대추리와 도두리 문제가 끝난 건 아닙니다. 아직도 그곳에는 90여 세대의 주민들이 집과 땅과 고향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분들이 바라는 것은 아주 소박합니다. 등가죽이 벗겨지면서, 농수로에 자식을 묻으면서 개간한 땅에서 농사를 짓다가 그 땅에 묻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문화예술인들이, 그 분들의 소박한 바람을 서울시민들에게 보다 적극적으로 알리기 위해 이곳 보신각 앞에서 30일 동안 평화예술제를 하는 것입니다." (신현욱 거리예술제 기획연출단장과의 인터뷰)

대추리 주민 홍문의씨의 초상화를 그리고 있는 이종구 화백. 10월27일 거리예술제 15일째 종로 네거리
대추리 주민 홍문의씨의 초상화를 그리고 있는 이종구 화백. 10월27일 거리예술제 15일째 종로 네거리 ⓒ 이승열
이종구 화백이 그리고 있는 대추리 주민 홍문의씨는, 자신의 얼굴이 그려지던 날 평택지원에 가서 특수공무집행방해죄로 보호감찰 2년, 사회봉사 80시간을 선고받았다. 고향을 지키고자 했던 그는 '범법자'가 되었고, 이종구 화백은 그의 억울함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 햇볕에 검게 그을린 구릿빛 얼굴을 그렸다. 오후 4시 반부터 시작된 그의 얼굴은 사위가 어둑어둑해진 7시 공연 직전에 간신히 완성된다.

"80년대 후반 이후 처음으로 거리에 나왔다. 내가 대추리 주민의 얼굴을 그리는 것은 내 땅을 지키기 위해 나선 소박한 사람들에 대한 예의이다. 화가가 사회적으로 내 땅에서 끝까지 농사를 짓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말을 전파하기는 어렵다. 내 땅을 지키고 농사를 짓다가 그 땅에서 묻히고 싶은 것은 거창한 욕심도 아니고 사회적 이슈도 아니다. 하지만 이미 그것은 소박한 꿈이 아닌 투쟁이 되었다.

그림이 큰 힘을 갖지 못할지도 모른다. 나는 갤러리가 아닌 거리에서 이들을 그리고 이들의 말을 전파하고 싶었다. 아직도 대추리를 지키고 있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고 그 희망이 유효함을 알리는 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화가와의 인터뷰)


대추리 주민 인물화, 세 번째 작업

이렇게 화가들이 대추리 주민을 그리는 것은 올해에만 세번째다. 첫번째는 2월 5일로, 민족미술인협의회(민미협) 소속 화가들이 삶의 터전을 지키려는 대추리 주민들의 모습을 학교 건물벽과 유리창에 그렸다. 그러나 5월 4일 대추초등학교가 철거되면서, 주민 인물화들은 학교건물과 함께 땅에 묻혔다.

대추초등학교 건물에 주민 인물 벽화 작업을 하는 화가들
대추초등학교 건물에 주민 인물 벽화 작업을 하는 화가들 ⓒ 오마이뉴스 문만식 기자
자신들의 작품 아니 대추리 주민들의 모습이 굴삭기에 의해 처참하게 파괴되는 것을 지켜본 화가들은, 분노를 삼키며 5월 대추리 농협 창고에서 <2006년 조국의 산하전>을 개최하였다.

이 전시회에는 70여 명의 화가가 참가했는데, 54명의 화가는 대추초등학교와 함께 사라진 54명의 대추리 주민 인물화를 모판에 재현하였다. 자신들의 모습이 땅에 묻힌 대추리 주민들에 대한 위로이자, 공권력에 대한 항의의 표시이기도 했다.

<2006년 조국의 산하 전, 평택, 평화의 씨를 뿌리고>에 전시된 대추리 주민들의 인물화.
<2006년 조국의 산하 전, 평택, 평화의 씨를 뿌리고>에 전시된 대추리 주민들의 인물화. ⓒ neolook.com
변변한 조명시설도 갖추지 못한 채, 임시로 설치된 백열등 아래서 진행된 <2006년 조국의 산하전>은, 농협 창고에서의 작품 전시뿐 아니라, 마을 곳곳에 벽화를 그리는 작업도 함께 진행되었다.

이종구 화백은 특유의 화필로 농민들을 그렸고, 80년대에 열심히 벽화운동을 하였던 류연복 화백도 다시 또 벽에다 그림을 그렸고 시도 썼다. 같은 시대에 걸개그림을 열심히 만들었던 최병수 화백은 용접기로 쇠철판을 잘라내 미대륙과 한반도를 만들었고, 이윤엽 화백은 아예 대추리에 살면서 판화작업을 했다.

이종구 화백의 대추리 벽화
이종구 화백의 대추리 벽화 ⓒ 박희주
벽화의 경우 전시장에서의 전시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다는 대중성이 있어, 우리나라에서는 1985년경부터 시도된 민중미술의 한 장르다. 그런데 이종구 화백은 벽화에다 '내 땅에서 농사짓고 싶다'는 대추리 농민들의 간절한 소망을 함께 써넣어, 보는 이들의 마음을 아리게 했다.

7월 2일 농협창고에서의 전시가 끝나자, 작품들은 다음 전시 장소인 수원으로 옮겨졌다. 그러자 주민들은 마치 자식을 떠나보내듯 서운해 했고, 대추리 마을의 김택균 대책위 위원장은 류연복 화백과 상의를 했다. 류화백은 대추리 문제가 거론되기 시작한 3년 전부터 대추리를 드나들며 마을 수호 장승까지 세워준 각별한 인연이 있기 때문이었다.

대추리 주민들의 마음을 전달받은 류연복 화백은 33점의 작품을 기증하겠다는 의사를 밝혔지만 외부인들의 출입이 통제된 상황에서 '민중판화'를 대추리 안으로 들여보내고 또 전시까지 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그러나 그 작품들은 우여곡절 끝에 마을 안으로 들어갔고, 9월 17일부터 대추리의 빈집을 개조해서 만든 대추리 역사관에서 전시되기 시작했다.

대추리 역사관에서 열리고 있는 류연복 화백 전시회. 전시기간은 9월 17일부터 강제철거 때까지
대추리 역사관에서 열리고 있는 류연복 화백 전시회. 전시기간은 9월 17일부터 강제철거 때까지 ⓒ 전진경
외부인들의 출입이 통제돼 오로지 대추리 주민들만 볼 수 있는 매우 독특한 전시회. 그리고 마무리 철거작업이 이뤄지면 건물과 함께 굴삭기에 의해 처절하게 파괴될 수도 있지만, 그는 그 기간 동안에라도 외로운 주민들에게 볼거리를 제공하고 싶다고 했다.

"대추리 주민들이 서운해 한다는 김택균 위원장의 말을 듣고 작품들을 살펴보니, 80년대와 90년대 초반에 만든 작품들이 현재의 대추리 상황과 맞아떨어진다는 걸 발견했다. 결국 10년, 15년의 세월이 지났어도 농촌의 상황은 변한 것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해 들은 반응으로는 보름달 아래 지게를 지고 있는 <대보름 빈지게>와 <잃어버린 터전>이라는 두 작품이, 가장 반응이 좋았다고 한다. 현재 대추리 분들이 처한 상황과 일치하기 때문인 것 같다." (화가와의 인터뷰)


류연복 <대보름 빈지게> 다색목판 54x 45 cm 1987년
류연복 <대보름 빈지게> 다색목판 54x 45 cm 1987년 ⓒ 류연복
그렇다. 이제 곧 고향을 잃게 될 농사꾼이 지게에다 볏단을 잔뜩 얹은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보름달이 아무리 풍요롭게 떠오른들 그들의 빈 가슴을 어찌 채워줄 수 있으랴. 그러나 그런 것이 가난하고 힘없는 농민의 삶이라면 그 또한 너무 허망하지 않은가.

그래서일까. 만신 변재석은 여러 신들을 종로 보신각 앞으로 청한 후 이렇게 고한다.

만신 변재석의 황해도 해주굿. 10월 17일
만신 변재석의 황해도 해주굿. 10월 17일 ⓒ 이승열
"대한민국 경기도 땅에 있는 대추리와 도두리의 사정을 아룁니다. 둥, 둥, 육지 속에 떠있는 대추섬, 도두섬의 억울함을 아룁니다. 주민은 90세대인데, 그곳을 지키는 경찰은 수십 수백 배. 장을 보러 대처에 나가려 해도 검문, 검색. 자식놈들이 부모 만나겠다고 고향 오는데도 검문, 검색….

조선례 할머니가 웁니다. 고향을 떠나 어디로 가느냐며, 김영녀 할머니도 웁니다…"


외로운 섬 평택 대추리와 도두리. 그곳은 이제 이렇게 잊혀지는 것일까?

덧붙이는 글 | * 행사명 : 평택 대추리 도두리 주민들과 1000인의 문예인이 함께하는 30일간의 거리 예술제 "평화를 원한다면 대추리를 지켜라"

* 장소 : 종로 보신각 옆

* 주관기관: 평택미군기지 확장반대와 대추리. 도두리 주민 주거권 옹호를 위한 문예공동행동 단체 '들사람들'

* 기간: 2006년 10월 13일부터 11월 11일까지  매일 오후 3시부터 7시

3시부터 대추리를 소재로 한 각종 판화, 그림, 만화 작품 전시와 판매, 화가들의 대추리 주민 초상 그리기, 7시부터 노래, 연극, 시낭송, 사물놀이, 굿, 무예 등 전통예술등 다양한 공연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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