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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사다 지로의 <칼에 지다> 상
아사다 지로의 <칼에 지다> 상 ⓒ 북하우스
2005년 봄, 나는 꿈을 잃었다. 대학교 4학년을 앞두고, 한창 꿈을 향해 달리기도 바빠야 할 시기에 나는 ‘하고 싶은 것’과 ‘할 수 있는 것’의 차이를 맞닥뜨린 것이다. 현실에 타협한 청춘이 얼마나 가혹하고, 꿈이 없는 젊은이의 모습은 얼마나 초라한가. 때문에 나는 항로 잃은 배처럼 방황했다.

'훌륭한 스승'이 소개한 '좋은 책'

그해 1학기, 이전 학기에 한 전공강좌를 통해 알게된 한 교수님의 또다른 강의를 듣게 되었다. 인터넷뉴스를 만드는 방법을 가르치는 강좌였다. 평소 기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라곤 해본 적 없는 나였지만, 이전 강좌에서 그 교수님이 가르치는 것이 비단 학문적 지식뿐만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무작정 수강하게 된 것이었다.

첫 주, 교수님이 한 책이야기를 꺼내셨다. 언젠가 갑작스럽게 관련 과제를 낼 것이니 ‘아사다 지로’의 <칼에 지다>라는 책을 읽어두라는 것이었다. “아니, 인터넷뉴스 관련 강좌에서 웬 ’소설‘을 읽으란 것인가.” 다소 의아했지만 책을 읽지도 않아도 늘 써먹는 편법이 있으니 과제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런데 책이야기를 하던 그 교수님의 ‘표정’이 잊혀 지지 않았다. 교수님은 책이야기를 하는 내내 상기된 표정으로 설레고 있었다. 결국, 나는 ‘도대체 어떤 소설이기에 그럴까’ 하는 궁금한 마음에 <칼에 지다>를 손에 들었다.

할복을 망설이는 ‘사무라이’, 가족을 위해 헌신하는 ‘아버지’

<칼에 지다>는 일본역사소설이다. 소설은 일본 메이지 유신(1867년) 직전, 메이지유신 주체세력 반대편에 서서 막부의 최후를 함께 한 사무라이 무사집단 ‘신센구미’의 이야기를 재조명한다. 그리고 그 신센구미 일원인 ‘요시무라 간히치로’(이하 간히치로)의 삶을 그린다.

이야기는 전쟁에서 패한 간히치로가 부상을 입은 몸으로 고향 모리아카를 찾아 귀대를 청하며 시작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옛 주군이자 친구인 오노 지루에몬을 만나지만 고향을 버리고 떠난 그에게 돌아오는 것은 ‘할복’뿐.

진정한 무사로서 충과 의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할복도 마다하지 않는 것이 ‘사무라이정신’이다. 그런데 사무라이 간히치로는 할복을 앞두고 혹시라도 ‘살 수 있지 않을까’ 망설인다. 더욱이 그는 동료들로부터 ‘수전노’라는 소리까지 들으며 돈을 밝힌다. 때문에 처음 ‘뭐 이런 사무라이가 다 있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이러한 의아함은 번갈아 나오는 간히치로의 독백과 ‘정체를 알 수 없는’ 사람의 물음에 떠올리는 간히치로 주변 인물들의 회상을 통해 해소된다.

사실 간히치로는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고향도, 자존심도 버린 애처로운 사무라이였던 것이다. 이가 다 빠지고 휘어진 칼을 들고 다닐 정도로 돈을 아끼고, 동료들로부터 손가락질을 받을 정도로 악착같이 돈을 모아 고향에 붙이는 ‘한 가정의 아버지’였다. 때문에 이야기 후반부에는 오히려 그가 제발 죽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마저 생긴다. 그가 올곧은 사무라이는 아닐지언정, ‘훌륭한 가장’이자 ‘진짜 남자’임은 분명하기 때문이다.

‘진짜 남자’란 무엇인지 가르쳐준 책

그 설레던 표정의 교수님은 언젠가 사석에서 한 학생에게 <칼에 지다>에 대해 이렇게 말씀했다.

“나중에 네가 결혼을 할 남자가 생겼는데 믿어도 될 만한 녀석인지 잘 모르겠으면 이 책을 한 번 읽어보게 해라. 이 책을 읽고 나서 눈물 흘리는 녀석이라면 믿고 결혼해도 될 거다. 그 남자 눈물 흔한 것이 아니라 ‘괜찮은 남자’라 흘린 눈물일 테니 말이다.”

교수님의 말씀처럼 <칼에 지다>는 진짜 남자가 무엇인지 오롯이 가르쳐준 책이다. 더욱이 책 속 간히치로의 삶은 내게 ‘진짜 남자가 되라’ 말했고, 덕분에 나는 용기를 내어 다시 새로운 꿈을 그릴 수 있었다.

덧붙이는 글 | <당신의 책, 그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응모글


칼에 지다 - 상

아사다 지로 지음, 양윤옥 옮김, 북하우스(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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