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이곳 일본에서 만난 친구가 하나 있지요. 아주 좋은 친구 말이지요. 서로 다른 일본어학교를 다니기는 했지만, 광고지(속칭 '찌라시')를 돌리는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만난 친구입니다.

오전에 일본어학교 공부가 끝나면, 광고지 회사에 들러 광고지를 받고 그날의 배포 지역을 지시받지요. 무게가 30kg 정도 나가는 광고지를 메고 우리는 매일 같이 도쿄 전 지역을 복사해준 지도 한 장에 의지해 포스트에 광고지를 넣었지요.

사람들은 우리들을 무서워했던 것도 같습니다. 낯선 동네에 들어서면 어디선가 적대감에 번득이는 시선을 느끼지요. 지나가는 사람들에게는 아무런 반응이 없던 개들도 광고지맨들이 지나가면 누런 이를 드러내며 달려듭니다. 그리고 언제였던가, 아무개가 개한테 물렸다는 풍문도 들었던 것도 같습니다. 개들. 광고지맨들의 천적이지요. 그리고 또 하나의 천적이 있지요. 속칭 '짭새'들.

그렇게 우리는 몇 년을 도쿄의 길바닥을 헤매다, 친구는 돈을 벌겠다며 회사를 차렸고, 저는 조금만 더 공부해보겠다고 대학으로 갔지요. 우리는 아직 젊었고, 일본에서 광고지맨으로 살아남았으며, 서로 희망이라는 것을 가슴에 품고 있었지요. 생각한 대로만 됐다면 말이지요.

친구는 많이 변했습니다. 이제는 몇 년 전에 제가 알고 있던 친구가 아닌 것 같습니다. 그 사람의 눈빛을 닳아가는 것 같습니다. 월급을 미끼로 가게 바닥에 무릎을 꿇려 놓고 뒤통수를 때려가며 모욕을 주던 신주쿠 어느 한국가게의 사장의 눈빛. 일본에 온 지 얼마 되지도 않은데다 일본어가 되질 않아 어쩔 수 없이 했던 아르바이트였지요.

▲ 제가 사는 건물 옆에는 개울을 건너 숲으로 가려는 누군가가 만들어 놓은 작은 다리가 하나 있습니다.
ⓒ 양희진
제가 사는 곳에서 친구가 머문 것은 아마도 두세 번 정도인 것 같습니다. 같이 술을 한잔 마시다 밤늦게 불현듯 왔다가, 아침에 일 때문에 부산하게 가버렸지요. 그래서 아마도 친구는 제가 사는 건물 바로 옆에 아주 맑은 작은 개울이 있고, 여름밤에 베란다 창을 열어 놓고 앉아 있으면 시원한 개울물 흐르는 소리와 함께, 숲에서 들려오는 여름벌레들의 소리를 들어 보질 못했을 겁니다. 친구에게 꼭 들려주고 싶었는데 말이지요.

언젠가 친구가 시간이 된다면 개울에 걸쳐 있는 다리를 건너 숲으로 함께 들어가 보고 싶네요. 그리고 제가 보아둔 멀리 보이는 풍경이 좋은 자리에 앉아 술이나 한잔 해보았으면 하네요.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인터넷 한겨레신문의 제 블러그에 실려 있는 기사 입니다.http://wnetwork.hani.co.kr/sakebi/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