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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씨가 아이들과 함께 노래 부르고 있다. 아이들의 표정이 하나같이 평화롭다. 건강한 먹을거리와 자유로움의 덕분이 아닐까.
안씨가 아이들과 함께 노래 부르고 있다. 아이들의 표정이 하나같이 평화롭다. 건강한 먹을거리와 자유로움의 덕분이 아닐까. ⓒ 이우성

홍성군 홍동면 복지회관 2층에 자리한 홍성여성농업인센터, 막 초등학교를 마친 아이들이 방과후 교실로 모여들어 왁자지껄 신나게 사는 소리를 토해낸다.

이곳은 농림부가 “여성농민의 고충상담, 농번기 영유아 보육, 방과후 학습지도, 농한기 프로그램을 통해 젊은 여성농민들의 농촌정착을 꾀하고자” 전국에 만든 38개 여성농업인센터 가운데 하나다. 이곳은 2002년 4월에 문을 열었으니 생긴 지 5년 정도 되었지만 활발한 활동으로 치면 전국에서 둘째 가라면 서럽다. 짜임새 있게 일도 많이 하고 농림부 지침과는 별도로 운영위원회를 만들어 토박이 지역농촌여성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도록 해 전국에 대표 여성농업인센터가 되었다. 지역의 자랑이기도 하다.

안정순씨가 이곳 대표를 맡은 것은 작년. 1대 대표가 설립 후 개인 사정으로 이곳을 떠나면서 지역 사람이 맡아 하자는 원칙 속에 운영위원이었던 안씨가 이곳을 추대받았다. 안씨는 센터장을 맡으면서 몇 가지 지역민과 약속을 했다. 개인사업처럼 운영되는 틀을 깨고 대표를 임기제로 바꾸었다.

자칫 대표 성향과 의지대로 센터 방향이 흘러갈 우려를 불식할 수도 있고 시간과 열정을 가진 사람이 있으면 새로 교대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대표이긴 하지만 호봉이 적어 월급도 적다. 가급적 수평적 관계를 유지하려고 한다.

선생님 5명, 시간강사 1명까지 6명이 일한다. 모두 홍동면에 살면서 농사도 짓고 있어 홍동 사람들과 친밀하고 집안 사정을 속속들이 파악하고 있기 때문에 아이들과 세심한 상담이 이루어질 수 있단다. 아이들도 이곳만 오면 긴장을 덜하고 속마음을 잘 드러내기도 한다.

이곳은 귀농자도 많고 아이들도 많다. 셋째, 넷째 낳기 운동이 일어날 정도로 아이들이 늘고 있다. 전체 인구는 줄고 있는데 그 폭이 다른 시골마을보다는 적다. 홍동초등학교에 135명의 아이들이 있는데 이곳 센터에 방과후 교실에 100여명 가까이 온다. 저학년이 46명이다.

12개월에서 24개월까지의 영아들은 5명만 받고 있다. 25개월 넘은 아이들은 이 마을 갓골유치원으로 보낸다. 영아들은 농어촌보육비 지원으로 면사무소에 서류만 내면 각 가정에 월 15만8000원이 지원된다. 방과후 교실은 급식비가 사업비에 포함 되지 않아 아이들 있는 가정에서 2만원씩 활동비를 받아 간식비로 쓰고 있다.

여성 프로그램도 다양하게 연다. 지위향상과 자아실현 교육에서부터 등산, 공연관람, 홈패션, 짚풀공예, 한지공예, 작은음악회, 나눔의 장터, 농민학당 등 가급적 센터에서 고민과 여가를 풀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농한기에 실시하는 각종 프로그램은 지역주민들의 열렬한 성원 속에 이뤄진다.

지금 이곳은 면 노인회에서 쓰던 것을 무상 임대해서 쓰고 있다. 아래층은 영아반, 윗층은 방과후반과 사무실, 도서관이 있다. 마을 면소재지 한가운데 센터가 있어 아이들은 학교에서 걸어서 이곳으로 오고 이곳에서 끝나면 센터의 차량으로 집까지 데려다준다. 심심하지 않게 하고 간식 주고 숙제 할 수 있고 차태워 집까지 데려다주니 아이들이 너무 좋아한다.

이곳은 젊은층이 실질적으로 움직이면서 일을 만들어가고 있다. 33개 마을별로 분산해 운영위원을 선정했는데 그 위원을 중심으로 마을사람을 규합해 헌신적으로 센터 일을 자원한다. 바자회 할 때도 운영위원이 나와 봉사하고 일을 꾸린다. 손이 필요할 땐 언제든 달려온다.

아이들한테 제공되는 먹을거리는 인근생활협동조합에서 사 온 유기농산물로 만든 것이다. 초등학생과 중학생을 위한 방과후 교실도 학습보다는 주로 미술치료나 자아성장 프로그램 등 마음을 살찌울 수 있는 내용으로 짜여 있다.

‘작은도서관’은 센터의 큰 자랑거리. ‘아이들이 책과 놀 수 있는 공간 하나 만들자’고 시작한 센터이므로 도서관이 생명이 되도록 신경을 많이 썼다. 운영비를 쪼개 어린이책 1000여권, 어른책 500여권, 비디오 150편을 갖춰 ‘작지만 가까운’ 도서관이 됐다.

이곳의 자랑거리인 도서실 내부 모습. 운영비를 나누어 신간을 구입한다고.
이곳의 자랑거리인 도서실 내부 모습. 운영비를 나누어 신간을 구입한다고. ⓒ 이우성

이곳도 결손가정의 도시아이들이 조부모를 찾아 많이 왔다. 센터 집계로는 홍동면 청소년의 약 40%가 조부모와 살고 있다. 센터는 비정기적으로 열리는 장터 수익금을 결손가정에 지원한다. 방치되기 쉬운 농촌 아이들을 맡기고 마음 편하게 농사를 할 수 있다는 게 센터의 큰 역할이다. 센터를 통해 여성농민의 정체성을 찾고, 여성의 힘으로 농촌을 변화시키는 일을 계속해 나가겠다는 결의를 보인다.

내 아이, 내 필요를 위해 풀 수 있는 것을 해보자고 해서 시작한 센터가 그 욕구가 맞물려 활발한 지역사회 조직으로 기능하고 있다. 만약 정부의 지원이 끝나도 자체적으로 운영할 생각이다. 필요한 것은 다 유지되고 사라지는 것은 다 이유가 있다는 생각이다. 시간이 지나서 필요성이 바뀌면 또 흐름에 맞게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안씨는 센터를 법인화하려고 한다.

개인사업으로 시작했다가 홍동면에 던져진 것이므로 모두가 주인일 수 있다는 것, 그래서 공공성을 강하게 띨 수 있도록 공적단체로 만들어 지역 공동의 센터로 만들고 싶은 것이다. 다만 공간이 모자라 애들을 돌려 보내는 것이 제일 아쉽다. 센터 뒤쪽 밭을 임대해 놀이터로 활용하고 싶고, 명실상부하게 지역에서 필요한 사업을 할 수 있는 건 하고 싶단다.

“순응하며 사는 농촌여성들의 희생이 참 값지다는 걸 새삼 느껴요. 푸근하게 농촌문화를 이루고 사는 사람이에요. 모두 관절염으로 고생하는 걸 보면 참 안쓰러워요. 마음 넉넉히 먹고 몸 건강한 게 최고라는 생각으로 자기 몸 돌보는데 소홀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안씨는 시골 아낙들을 볼 때마다 어찌 그리 아픈 부위도 비슷하고 고민도 비슷하고 속 썩는 것도 비슷한지 이웃사촌이라는 걸 실감한다.

안씨 역시 5~10년 후 농촌을 생각하면 끔찍하다. 텅빈 농촌이 될 것은 뻔한 일. 사라져가는 게 제일 큰 문제다. 그래서 학교와 센터가 기능을 잘 해야 한다고 결심을 세운다. 다행히 유기농 급식을 한다고 소문이 나서 홍동은 학교 때문에 외지에서 들어오는 사람도 많다.

홍동은 젊은 사람도 많고 환경농사도 많이 하고 지역여건이 다른 어디보다 좋다. 그래서 안씨는 홍동을 농민 스스로 이끌어가는 자족도시를 꿈꾼다. 행정도움 없이 소박하게 시작해 이뤄나가면 꿈이 이루어질 것으로 본다. 역량은 충분하다는 것이다.

대전이 고향인 안씨가 이곳에 온 지도 9년이 되었다. 안씨의 남편은 풀무학교 전공부 농업선생인 장길섭씨다. 서울에서 출판 일을 하다가 만나 결혼하고 양주에서 살다가 <녹색평론> 편집자로 들어간 남편 따라 대구에도 몇 년 살았다. 남편은 녹색평론에 있으면서 서서히 의식이 바뀌어갔다. 시골로 들어가 살자고 했다. 그러다가 다시 양주 풀무원농장에서 1년 살다가 친구 귀농처 알아보러 홍성에 들렀다가 생각보다 양주보다 싼 땅값 때문에 이곳에 눌러 살게 되었다.

안씨는 대전과 지리나 풍광이 비슷해 왠지 홍동이 낯설지 않았다. 처음에 빈집을 구하지 못해 고생하다가 장곡, 금평, 문당 2개면 3개리에 걸쳐 있는 논밭을 겨우 구해 자전거 타고 다니면서 농사를 지었다. 2년째 그렇게 농사를 짓다가 지금의 집으로 이사와 집 주변으로 본밭을 구해 수월해졌다.

지금은 논 2000평, 밭 2500평 농사를 짓는다. 콩, 고구마, 감자, 생강농사를 위주로 참깨, 고추, 마늘, 양파농사도 짓는다. 주로 주말에 농사를 지으니 월요일이 힘이 든다. 자신도 센터 일에 매여 농사일이 올해는 엉망이라고. 다행히 중3이 된 아들이 장정이라 큰일을 도와준다.

2년 전부터 암송아지 2마리를 길렀는데 4마리로 불었다. 내년에는 8마리까지 늘일 생각이다. 그래서 소 먹일 밀을 좀 늘여 심을 생각이다. 10마리로 늘어나면 번듯하게 축사를 지어야 할텐데 걱정이다. 요즘 꿈은 센터 잘 되고 축사 잘 지어 소 기르며 사는 게 전부라고 함박웃음이다.

정욱(중3)과 윤호(초등3) 아들만 둘을 두었다. 한번은 남자들만 자전거여행을 떠났는데 집에 불이 났다. 막막했다. 겨우 남편을 불러오고 마을회관에 입주해서 지내면서 집을 새로 지었다. 불난 해에 고추농가가 제일 잘 되었다. 목수와 어떻게 잘 연결되어 재료비 정도만 들여 집도 흙벽돌로 잘 지었다. 생각해보니 타버린 물건도 중요하지 않은 물건이 많았다. 그때부터 집착이 적어졌다. 집에 불나고 얻은 것이 참 많았단다.

“엄마, 아빠 선택 때문에 우리도 행복했다는 얘기를 아이들로부터 듣고 싶어요. 부모 농사 짓기 때문에 어린 시절 행복했다는 소리가 나오게 해주고 싶어요.”

농사도 중요하지만 아이들이 행복하게 지낼 수 있도록 만들어주어야 할 의무가 부모에게 있다는 것이다. 그 일부분을 센터가 할 수 있어 너무 다행이라고 안씨는 웃는다.

안씨의 신념이 가득한 이 말을 듣는 순간 코끝이 찡해왔다. 그의 아들과 센터 아이들, 홍동의 아이들은 참 행복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나는 농촌, 신나는 아이들이 가득한 홍동이 그려진다. 농촌여성들이 신나게 웃는 그날이 돌아올까? 지금 홍동 안정순씨에게서 부는 신바람이 멈출 줄 모른다. 그저 농사짓는 사람들이 고마운 세상이 되면 얼마나 좋을까.

여성농업인센터 입구를 배경으로 안 소장이 웃고 있다. 센터를 지역민이 함께 꾸려가도록 공공 법인화하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여성농업인센터 입구를 배경으로 안 소장이 웃고 있다. 센터를 지역민이 함께 꾸려가도록 공공 법인화하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 이우성

덧붙이는 글 | 유기농업의 메카라고 불리는 홍동은 이런 젊은 분들이 지역사회의 주춧돌이 되어주기 때문에 멀리 우리 농촌의 역할모델로 자리매김 되는것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흙살림(www.heuk.or.kr)신문 11월호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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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한그루 심는 마음으로 세상을 산다면 얼마나 큰 축복일까요? 세월이 지날수록 자신의 품을 넓혀 넓게 드리워진 그늘로 세상을 안을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아낌없이 자신을 다 드러내 보여주는 나무의 철학을 닮고 싶습니다. 그런 마음으로 세상을 산다면 또 세상은 얼마나 따뜻해 질까요? 그렇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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