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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프르 장군의 동상. 뒤에 보이는 건물은 육군사관학교다.
ⓒ 한대일
파리는 두 말할 필요도 없이 세계에서 제일 가는 관광도시다. 비록 소매치기나 강도, 사기꾼이 극성인 곳이지만 샹젤리제나 에펠탑에서 풍겨져 나오는 파리만의 독특한 매력을 뿌리치기는 어렵다. 사람들은 '파리'의 호화스러움 혹은 여성적 이미지를 떠올리게 되고, 이로 인해 파리는 각 나라에서 온 관광객들로 늘 붐빈다.

이런 파리이기에 그곳의 관광지 또한 널리 알려져 있다. 몽마르트르, 루브르 박물관, 오르세 미술관, 에투알 개선문, 센 강과 함께 요즘은 라 데팡스 지역의 신 개선문도 유명해지고 있는 추세다. 하지만 그 어떤 관광지도 에펠탑만큼 파리를 대표하지는 못한다.

1889년 파리 만국박람회를 위해 세워진 에펠탑은 초기에 파리의 경관을 해친다면 수많은 시민들의 비난에 직면했지만, 지금은 파리 시민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장소이기도 하다. 거대한 존재감으로 인해 파리의 상징이 되어버린 에펠탑은 현재 관광객들이 가장 많이 찾는 관광지 중 하나가 되어서 에펠탑 안에 들어가려면 1시간의 기다림은 예삿일이 될 정도이다.

하지만 에펠탑 가까이에서는 에펠탑의 전체적 모습을 잘 볼 수 없다. 숲 속에 들어가면 정작 그 숲의 전체적 모습은 못 본다는 말이 있듯이 에펠탑도 그 전체적 모습을 잘 보려면 에펠탑에서 약간 떨어진 곳으로 가야 한다. 파리에는 이런 조건을 충족하는 곳이 두 곳 있으니 사요궁(Palais de Chailot)과 조프르 광장이다.

조프르 광장과 에펠탑, 사요궁은 상드마르소 공원을 사이에 둔 채 일직선으로 이어져있다. 이런 위치와 함께 거리도 알맞게 떨어져 있어 이 두 곳은 에펠탑을 감상하기에 더없이 좋은 장소다.

▲ 조프르 광장에서 본 에펠탑. 이곳에 와야 에펠탑 전체적 모습을 잘 볼 수 있다.
ⓒ 한대일
그러나 이런 똑같은 조건을 갖췄음에도 불구하고 조프르 광장은 사요궁보다 덜 알려진 편이다. 사요궁은 일단 그 자체가 박물관들의 집합체라는 점에서 볼 것이 많고, 게다가 에펠탑과 센 강을 한꺼번에 조망할 수 있으니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이다.

하지만 조프르 광장은 주변의 볼거리라고는 육군사관학교 말고는 딱히 없다. 물론 전에도 언급했듯이 에펠탑을 잘 조망할 수 있는 곳으로는 그만이지만 그밖에 더 볼 것이 있나 하며 주변을 둘러보면 금새 실망할 것이다. 하지만 필자는 사요궁보다 조프르 광장을 더 추천하고 싶다. 일단 사요궁 주변에 비해 조용한 분위기도 분위기려니와 조프르 광장에는 여행을 좀더 의미 있게 해 줄 수 있는 곳이 있기 때문이다.

조프르 광장과 상드마르소 공원 경계에 걸쳐있는 평화의 탑은 그 자체로서는 볼품없다. 규모가 큰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깊은 역사를 가진 것도 아니다. 하기사 개선문, 루브르 박물관, 노트르담과 같은 규모가 크고 역사도 유구한 건축물만 본 관광객들에게 평화의 탑은 그야말로 '별 것' 아니다. 그곳에는 단지 '평화'라는 단어가 세계 43개국의 언어로 여러 개의 기둥과 유리판에 새겨져있을 뿐이다.

이중에는 한국인 관광객에게 좀 특별하게 비춰질 것이 있으니, 그것은 평화의 탑들 중에 한글로 '평화'라고 적힌 탑도 있다는 점이다. (한국은 11번째로 새겨져 있다) 물론 이를 통해 잠시나마 한글의 세계성(?)에 대해 으쓱할 수도 있겠지만 우리가 평화의 탑에서 봐야 할 것은 그런 시각적인 것이 아니다.

▲ 세계 각국의 언어로 적힌 '평화'들. 맨 밑에 한글로 된 평화도 있다.
ⓒ 한대일
인류의 진보가 이루어졌다고 말하는 20세기 와중에도 인간의 폭력성만큼은 치유되지 못한 듯 하다. 단지 전쟁 때 사용하는 무기나 전술만 달라졌을 뿐 세계 곳곳은 아직도 고대나 중세와 마찬가지로 전쟁을 벌인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로 세계는 반성의 의미로 국제연맹 창설 등 평화 수호에 앞장섰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해서 수천 만 명의 인명이 살상되었다.

그리고 이에 대한 반성의 의미로 국제연합이 만들어진 이후에도 세계 곳곳에서는 한국전쟁, 베트남 전쟁, 중동 전쟁, 이라크 전쟁 등 전쟁이 끊이지 않는다. 인간은 역사를 통해 전쟁이 얼마나 끔찍한지 뼈저리게 느꼈을 것이다. 그런데도 전쟁의 행위를 반복하는 것을 보면 전쟁은 원래부터 인간 생활에 필수적으로 따라오는 것인지, 아니면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서 그렇게 된 것인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이렇게 전쟁이 반복되는 현실이라 할 지라도 평화에 대한 갈망이 무의미한 것은 절대 아니다. 그런 갈망마저 없었다면 세계는 먹는 자와 먹히는 자 사이의 싸움으로 진작에 멸망해버렸을 것이기 때문이다. 쿠바 위기 때 미국과 소련은 전면전 양상으로까지 가는 등 위기는 고조됐었다.

하지만 세계의 평화에 대한 강한 열망은 이 두 강대국마저 굴복시켜서 결국 소련의 흐루시초프의 양보로 이 위기는 무사히 넘어갈 수 있었다. 평화에 대한 요구는 얼핏 보면 부질없어 보이고 매우 희미해 보인다. 하지만 이런 작은 요구가 세계사의 방향 전환과 함께 이때까지 인류의 삶을 이어온 원동력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

▲ 평화의 기둥들. 기둥 곳곳에 '평화'가 적혀져 있다.
ⓒ 한대일
평화의 탑에 있는 평화의 기둥들도 이런 '작아 보이는' 요구들의 집합체이다. 평화의 기둥에 적힌 '평화'라는 문구는 이 세계를 지배하는 '통치자'에게 과연 그 의미를 제대로 전달할 수 있을지 요원해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앞에서 말했듯이 이런 작아 보이고 별 의미 없어 보이는 평화에 대한 요구가 바로 인류의 삶을 유지하게 한 원동력이었다. 전 인류의 평화에 대한 열망은 전쟁을 추구하고자 하는 지도자의 행위를 곳곳에서 차단해왔고, 그 운동은 지금도 이어져오고 있다. 평화의 탑은 이런 인류들의 거룩한 행위의 표현물이자 상징물인 것이다.

조프르 광장은 시각적인 볼거리는 많지 않기 때문에 그곳만을 목적지로 둔 채 찾아오기에는 뭔가가 약간 부족한 장소이다. 특히 시간이 생명인 배낭 족들에게 있어서 '별 거 없는' 조프르 광장을 가기 위해 시간과 수고스러움을 던다는 것은 부담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조프르 광장은 여행 와중에 잠시나마 평화의 의의에 대해 사색할 수 있는 여유를 제공해준다. 조프르 광장은 바로 이런 내면적인 볼거리를 제공하는 곳이다. 게다가 멀리서는 에펠탑도 보이니 일석이조가 아닌가. 이왕 에펠탑을 멀리서 잘 볼 수 있는 장소를 찾는다면, 조금이라도 의미 있는 여행을 선사할 수 있는 조프르 광장에 가보는 것은 어떨까.

덧붙이는 글 | 필자는 '입실론 (Epsilon)'이라는 필명을 쓰고 있으며, 현재 싸이월드에 '입실론의 C.A & so on Travel 가이드페이퍼'를 발행하고 있다. 조프르 광장에 대한 자세한 여행안내는 페이퍼 113호를 참조하면 된다. 유적지에 안경 쓴 어떤 젊은이가 손에는 디카, 수첩, 그리고 옛 영국식 보행용 지팡이를 들고 있으면 그는 십중팔구 필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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