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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임의로 만든 생활기록부 상의 종합란
필자가 임의로 만든 생활기록부 상의 종합란 ⓒ 정판수
나도 기억나지는 않지만 몹쓸 평가를 많이 했다. 학급 분위기를 흩뜨리고 사사건건 사고만 치는 애에게 좋은 평가를 할 수 없었고, 그래서 그대로 적은 적이 있다.

재작년 먼저 학교에서 가르쳤던 아끼던 제자가 교통사고로 하늘나라에 갔을 때 문상을 갔다가 그의 동기들을 만났다. 친구 잃은 슬픔에 술이 좀 거나해지자 그 중 한 명이 내게 따지듯이 말했다.

"선생님, 어떻게 그렇게 잔인하게 글을 쓸 수 있습니까?"

처음에 내가 어디 발표한 글을 갖고 하는 말인 줄 알았으나 역시 취직 때문에 생활기록부를 떼보니 거기 적힌 평가 때문에 아예 원서조차 낼 수 없었다고 했다.

생활기록부의 기록 때문에 취직과 결혼 등에 불이익을 당할 수 있다

위와는 반대로 내가 피해를 입은 적도 있다. 십여 년 전쯤 한 학교에 오래 있다 보니 타성에 젖어 있던 차 마침 부산의 신설고교에서 경력교사 초빙광고가 나 거기에 마음이 쏠렸다. 게다가 고3 담임 경력 몇 년 등 내 건 조건이 내게 더없이 유리하기까지 했으니.

원서를 내려고 했다. 그런데 그 전까지는 필요한 서류에 고교생활기록부가 없었으나 하필 그 해부터 고교생활기록부를 첨부하도록 돼 있었다. 해도 걱정이 없었다. 고교시절 순탄하게(?) 생활했기에 특별히 지적 당할 내용은 없을 거라는 자신감 때문에.

생활기록부를 떼와 대충 훑어보는데 2학년 때 출결란이 눈에 들어왔다. 헌데 전혀 생각지도 않은 기록이 있었다. 이틀이나 결석으로 처리되었다. 비록 오래 전의 일이지만 초등학교 때부터 단 하루도 결석하지 않음이 나의 유일한 자랑거리여서 이런 기록은 믿기지 않았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결석사유였다. '등교정지(징계)'로 돼 있는 게 아닌가. 그 기록 때문에 포기해야 했다. 징계로 등교정지를 당했으면 누가 보더라도 문제 있는 교사가 아닌가.

필자가 임의로 만든 생활기록부 상의 출결상황표
필자가 임의로 만든 생활기록부 상의 출결상황표 ⓒ 정판수
그 뒤 고교 동기회에서 그 말을 꺼냈다가 나와 같은 기록을 당한 동기로부터 사연을 알게 됐다. 수업료를 정해진 날짜에 내지 못하면 등교를 해도 출석부상에 기록을 남긴다는 것. 그러나 대부분의 선생님들은 엄포만 놓았지 실제로 그렇게 하지 않았는데 그때의 담임선생님은 철저히 문교부(교육부의 이전 명칭)의 명령을 따라서 그리 됐다는 것이다.

아이들은 변한다. 학창시절의 문제아도 사회에선 모범생이 될 수 있다

학창시절의 문제아는 대부분 성적 때문에 생긴다. 공부를 못하다보니 수업이 재미없고, 수업이 재미없다보니 딴짓을 하게 되고. 그게 한두 번 쌓이면서 아이는 선생님에게 소위 찍히게 되고, 그게 기록으로 남게 된다.

그러나 아이들은 변하게 마련이다. 비록 그때는 공부 못해 학교생활엔 적응 못했어도 나름의 소질을 개발해 사회에서 성공한 아이도 있다. 또 어린 시절 망나니였지만 성장 과정에서 어떤 깨달음을 얻어 바르게 자란 아이도 있다.

생활기록부는 그런 걸 다 무시한다. 상처를 줄만큼 아프게 기록한 내용으로 하여 눈물을 흘리게 만든 나와, 위(문교부)의 명령에 따라 철두철미하게 기록한 고교시절의 은사도 다 앞을 내다보지 못한 과오를 범했다.

범죄를 저지른 죄과도 시간이 지나면 그 전과를 없앤다는데 이상하게 생활기록부의 기록만은 없애지 않는다. 20년 보관, 30년 보관을 거쳐 이제는 영구보관인 생활기록부의 그 기록 말이다. 한 번 찍힌 낙인은 절대로 없어지지 않는 셈이다.

생활기록부 기록을 정정할 기회를 줘야 한다

이제 없앨 때가 되었다. 아니 바로잡을 때가 되었다. 적어도 생활기록부의 기재 내용으로 하여 취업이나 결혼 등에 막대한 지장을 주는 그런 기록은 말이다. 당사자가 원하면 인성에 관한 그런 나쁜 기록만은 정정해줘야 한다.

한 교사의 주관에 의한 평가 때문에 한 사람의 앞길을 막는 그런 일은 없어야 한다. 이제 교육부에서 올바른 지침을 내릴 때가 아닌가 한다. 그리고 기업체에서도 생활기록부를 읽고 평가함에 있어서 그런 점을 유의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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