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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6일에 열린 '입시 KIN 페스티발'에 사용된 전시물
11월 16일에 열린 '입시 KIN 페스티발'에 사용된 전시물 ⓒ 이형빈
수능 시험이 끝났다. 이제 수험생들은 한 달 후면 수능 성적표를 받고 어느 학교에 지원을 해야 하나 또 다시 고민을 해야 한다. 전국의 모든 학생이 한날한시에 동일한 시험을 치르고 그 점수에 따라 서열화된 대학에 진학하는 나라, 대한민국이 유일하다. 그나마 현재의 고3은 사정이 괜찮은 편이다.

정작 지금쯤 가장 힘들어하는 건 자칭 ‘저주 받은 89년생’인 현재의 고2 학생들이다. 내신등급제로 인해 같은 반 친구를 경쟁자로 여기게 되었고, 수능을 준비하기 위해 밤늦게까지 학원을 다녀야 하고, 논술 본고사를 준비하기 위해 주말에는 고액 과외를 받아야 한다.

대학입시의 영향력은 막강하다. 국가가 지정한 교육과정도, 교과서도, 교사 개개인의 교육철학도 EBS 문제집 앞에서 무기력하다. 논술교육도 독서교육도 대학입시에 반영되는 순간 다만 줄 세우기 경쟁의 도구로 왜곡될 따름이다. 이 모든 입시 정책의 뿌리에는 서울대를 정점으로 하는 대학서열화체제가 있다.

국공립대 통합 전형으로 대학평준화의 토대를

해방 이후 현재까지 10차례가 넘는 입시제도의 변화가 있었지만 가혹한 입시경쟁체제는 조금도 완화되지 않았다. 그 근본 이유는 서울대를 정점으로 한 대학서열화체제가 완강히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대학서열화체제가 해소되지 않는 한 어떤 입시제도가 도입된다 하더라도 아이들의 고통은 사라지지 않는다.

대학서열화체제의 해체는 곧 대학평준화를 의미한다. 프랑스의 공교육 제도의 핵심은 대학평준화를 통한 대학의 문호 개방이다. 고등학교까지의 학교 교육을 충실히 받은 학생이라면 누구나 바칼로레아에 합격하여 평준화된 대학에 진학할 수 있다. 신자유주의적 교육정책을 근간으로 하는 미국의 경우에도 공립대학만큼은 평준화 체제에 가깝다. 서울대를 정점으로 하여 전국의 모든 대학이 한 줄로 등수가 매겨져 있는 한국의 대학 체제는 전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는 가혹한 대학서열체제이다.

한국의 대학은 대부분 사립대학이어서 평준화 체제가 성립되기 어렵다. 그러나 적어도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고 교육부의 직접적인 지도 감독을 받는 국공립대학만큼은 평준화되어야 한다. 2002년 현재 4년제 국공립대학은 총 26개로 입학정원은 6만8000명이며 교육대학을 합치면 7만3000여명으로 전체 대학생의 25%정도가 이에 해당한다.

서울대의 특권적 지위를 폐지하고 전국의 국공립대학을 하나의 네트워크로 묶어서 15만 명 정도에 달하는 신입생을 공동으로 선발하고 엄격한 학사관리를 거친 후 공동 학위를 수여하는 ‘국공립대학 통합네트워크’가 이루어진다면 현재와 같은 대학서열체제는 상당 부분 완화되고 대학평준화라는 궁극적 목표에 단계적으로 접근할 수 있다.

이를 위해 교육부는 적어도 전국의 국공립대학의 전형 요소부터라도 단일화해야 한다. 그리고 향후 1~2년은 단일한 전형 방식을 가지고 각 국공립대학이 별도로 신입생을 선발하더라도 그 이후에는 국공립대학의 통합 모집과 동일 학위 수여가 이루어져야 한다. 이는 교육부 및 국공립대학이 공교육에 대한 책무성을 회복하고 공교육 정상화에 기여하는 길이고, 가혹한 입시경쟁의 근원인 대학서열화체제를 극복하기 위한 출발점이다.

학교 교육의 과정을 중시하는 입시 제도를

ⓒ 이형빈
현재 문제가 되고 있는 논술 본고사 및 2008학년도 입시안은 대학이 자체적인 선발 기준을 마련하고 이에 맞춰 학생들을 촘촘히 서열화하겠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 그리고 그 선발 기준은 매우 자의적일뿐만 아니라 교육과정에 따른 학교 교육의 과정을 무시한다는 점에서 또한 문제가 있다. 대학 입시는 학교 교육을 충실히 받아 일정한 성취 수준에 도달하기까지의 과정 자체를 중시하는 선발 방식으로 바뀌어야 한다.

따라서 내신은 입시에 있어서 가장 중시되어야 할 요소이다. 지역 간, 학교 간 학력 격차가 존재하기 때문에 단위 학교별 내신 자료를 그대로 수용할 수 없다는 주장은 공교육에 대한 몰이해에서 비롯된 것이다. 지역 간 학력 격차가 생기는 이유는 지역마다 다양한 경제적, 문화적 여건의 차이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러한 격차에도 불구하고 한 학생이 그러한 여건에서 최상의 결과를 냈다면 그것 자체로 존중되어야 한다. 교육 여건의 좋은 지역에서 공부한 학생과 그렇지 않은 지역에서 공부한 학생을 전국 단위의 기준으로 평가하는 것이 공정한 것이 아니라, 각기 다른 여건에서 나타낸 교육활동의 결과를 그대로 반영하는 것이 공정한 것이다.

앞서 지적했듯이 현행 내신등급제는 교육학의 원칙에서 벗어나 있는 제도이다. 만약 대학평준화, 혹은 국공립대 통합 전형이 실시된다면 내신은 절대평가 체제로 다시 돌아가야 한다. 그래서 학생들이 고등학교까지의 학교 교육을 충실히 받아 교육과정상에 정해진 성취 수준에 어느 정도로 도달하였는가 하는 점만 확인하면 된다.

반면에 여전히 서열화된 대학에 진학하기 위한 자료로서 내신 성적이 활용되어야 한다면 불가피하게 상대평가를 시행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학생들의 내신 점수를 절대 평가와 계열별 석차를 동시에 기록하여 국공립 통합 전형의 경우에는 절대평가를, 사립대의 개별 전형에는 상대평가를 반영하는 방식을 과도기적 방안으로 제시할 수 있다.

이렇게 내신 성적을 가장 중요한 선발 요소로 중시한다면 수능 성적은 보조적인 자료로 삼아야 한다. 예를 들어 수능을 자격고사로 전환하여 최소한의 지원 자격 조건으로 삼는다든가, 아니면 전체 입학 정원 가운데 70% 정도를 내신 성적으로 선발하고, 나머지 30% 정도를 수능 성적으로 선발하는 식의 이원화된 전형 구조를 갖추는 것이다. 그리하여 학생들이 내신이나 수능 둘 중 하나를 전형 요소로 삼도록 선택하게끔 하는 것이다.

학교 교육을 충실히 한 학생이라면 내신 전형에 대한 선호도가 높을 것이고, 상대적으로 내신 성적이 불리한 특수목적고 학생, 학교 부적응 학생, 고교졸업생 등은 수능 전형에 대한 선호도가 높을 것이다. 이렇게 된다면 현재의 과도한 사교육과 입시 부담을 줄이고, 공교육 정상화의 가능성은 한층 높아질 것이다.

논술 등 대학 본고사는 폐지되어야

대한민국의 모든 학생들은 국가가 정한 교육과정에 따라 단위 학교에서 교육을 받는다. 현행 교육과정이 수많은 문제점을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는 해당 사회가 지향하는 교육적 인간상과 교육철학을 담고 있는 사회적 합의에 해당한다. 따라서 대학입시는 학생이 고등학교 교육과정을 얼마나 충실히 이행하였는가에 따른 결과를 중시해야 한다. 현행 고등학교 교육이 갖는 수많은 문제점은 교육과정 개편, 교육여건 및 교육방법의 개선을 통해 해결해야지 대학입시의 방법으로 해결하려드는 것은 본말이 전도된 것이다.

따라서 현행 교육과정과 학교 교육을 왜곡하는 논술 본고사는 폐지되어야 한다. 또한 이른바 학생 선발의 변별력을 확보한다는 명분으로 시행되고 있는 구술 면접, 인적성검사, 서류 심사 등 온갖 형태의 대학별 본고사 역시 폐지되어야 한다. 다만 학생들의 창의력과 비판력을 기르려는 논술교육의 취지는 그 자체로 존중되어야 한다. 그리고 논술교육의 취지는 교육과정의 개편, 교수학습 및 평가 방법론의 변화, 교육 여건의 개선 등을 통해 살려야 한다.

덧붙이는 글 | 이형빈 기자는 이화여고 교사입니다. 논술 본고사의 문제점을 총7회로 연재하고 있습니다. 

[논술 본고사, 무엇이 문제인가?] 

1. 2008학년도 입시안은 건국 이래 최악의 입시안 
2. 논술 본고사, 창의력 평가가 아닌 변별력 확보의 도구 
3. 논술 본고사와 사교육비 증가 
4. 논술 본고사와 교육 불평등 심화 
5. 대학에 학생 선발권을 맡겨야 하나? 
6. 외국의 논술 고사는? 
7. 입시제도 개혁을 위한 제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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