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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배가 고파 자리에서 일어납니다. 집안이 참으로 조용합니다. 아내는 아르바이트하러 가고 아이들은 학원으로 공부하러 가고…. 덩그러니 혼자 남아 어쩔 줄 모릅니다.

햇살이 따사로운 베란다 문을 열면 겨울의 찬 기운이 방안에 가득 찹니다. 크게 심호흡도 해보고 한쪽에 자리 잡은 햄스터 식구들 먹이도 주고 물도 갈아주고 햄스터들이 쳇바퀴 돌리는 모습도 바라다봅니다.

근무하는 곳이 월요일에 쉬는 터라 월요일 아침이면 벌어지는 우리 집 풍경입니다. 모두 자리를 비운 뒤 혼자 남아 있는 것이 너무 이상합니다. 혼자 있으면 밥맛도 나지 않나 봅니다. 아내가 차려놓은 밥상에 시선을 두지 못합니다. 입맛도 그렇고 찬장에 있는 라면봉지가 두 눈에 잡힙니다. '그래 얼큰한 라면으로 한 끼 때우지 뭐'하는 생각에 식사를 라면으로 때우려고 라면 물을 올려놓습니다.

어린 시절 큰형님은 충주 비료공장에 다니셨습니다. 그 시절 충주비료공장에 다닌다고 하면 신랑 얼굴도 안보고 딸을 준다고 할 정도로 복지시설이 좋은 직장이었습니다. 야근을 하고 오는 큰형님의 손에는 항상 라면 한 봉지와 밀크캐러멜이 들려 있었습니다. 캐러멜은 동생들 손에 들려주셨지만 라면만은 어머니께 드렸습니다. 그 덕분에 라면은 어머니의 손으로 찬장에 차곡차곡 쌓여갔습니다.

▲ 아이들이 저를 위해 끓인 라면입니다. 꽤 매워보이죠?
ⓒ 조용민
"엄마! 라면은 언제 먹는데?" 어머니는 "엄마 심부름 잘하면 이따 저녁에 끓여주마" 대답하셨습니다. 라면을 맛보고 싶은 생각에 어머니를 대신해 동네 우물가에서 물을 길어 커다란 물독에 가득 담아도 힘든 줄 몰랐습니다. 동네 아이들에게 '우리 저녁 때 라면 먹는다'고 자랑도 하고 말이죠.

저녁 무렵, 집안 가득 퍼지는 라면 냄새. 반은 국수였는데 그 사이로 꼬불거리는 라면 면발을 보면 입 안 가득 고이던 침. "아버지! 라면은 왜 이렇게 맛있데요?" 그러면 아버지는 웃으며 답하셨습니다. "그러면 매일 라면 먹을까?"

그날 저녁 일기장엔 라면 먹은 이야기가 펼쳐졌습니다. 이제서야 제대로 밥을 먹이지 못했던 부모님의 아픔이 웃음 뒤에 숨어 있음을 압니다.

▲ 장모님이 담가주신 배추김치입니다.
ⓒ 조용민
아이들이 학원에서 돌아오는 소리에 전 추억에서 깨어납니다. "아버지!라면 끓이시려고요?" "그래, 오늘은 라면 끓여서 밥을 말아 먹자." 이에 아이들은 좋아합니다. 인스턴트 식품이기에 몸에 안 좋다며 아내는 아이들이 라면 먹는 것을 좋아하지 않거든요.

연천에서 장모님이 보내주신 김치를 놓고 아이들과 라면잔치를 벌이렵니다. 뭐가 좋은지, 두 아들 녀석들은 신이 났습니다. 파도 넣어야 하고 달걀도 넣어야 한다는 등 의견이 분분합니다.

"너희들 그렇게도 라면이 좋으니?" "예." 아이들은 신나게, 커다란 소리로 대답합니다. 먼 훗날, 아이들에게 라면은 어떻게 기억될까요? 나중에 아이들에게 물어보렵니다.

햇살이 좋은 날씨입니다. 라면 잔치 후 아이들과 드라이브나 해야 할 거 같습니다. 문득 돌아가신 아버지를 뵙고 싶은 날입니다. '아버지! 라면 한 그릇 하실래요?'

덧붙이는 글 | 사이트 시골기차에도 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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