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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립극단 2006년 주요 작품 '우리읍내'와 '태'에서 주역을 맡은 김마리아. 170의 늘씬한 몸매에 눈에 장난기 가득한 흥미로운 미인이다.
ⓒ 김기
지난 11월 중순 국립극단이 올해 내놓은 작품 중에 '국가브랜드'라는 휘장을 걸고 무대에 올린 '태(胎)'는 연일 매진됐다. '태'는 국가브랜드 이전에 오태석 브랜드이기에 그 인파들 중에는 분명 오태석 마니아들도 적지 않았을 것이다. 장충동을 찾은 이유가 어떻든 정말 다행인 것은 정극 무대를 지키는 진지한 관객층 존재의 확인이었다.

극도의 상징과 은유적 기법이 동원되는 '태'는 집중해서 봐도 이해가 쉽지 않은 연극이다. 다행스럽게도 국립극단의 배우들의 연기와 대사 그리고 배우로서의 존재감이 풍부하기에 그들을 통한 이미지의 조화로 난해함을 극복할 수 있다. 그런데 이번 '태'에는 국립극단을 꾸준히 찾은 사람이라면 좀 낯선 얼굴이 주요 역할을 맡고 있다.

계유정란의 피비린내 난무하는 사건의 흐름 속에서 김마리아가 맡은 손부 역은 권력이 아닌 절손을 막고자 종친살해, 대리죽음 등 비인륜적 행위를 자행하는 장본인이지만 오히려 계유정란의 배경이 되는 권력에 의한 피해자로 인식된다.

'태'를 지적 과용이라고 보는 사람이 있을 정도로 세조와 손부의 대비효과는 대단히 복잡해, 중층의 함정을 피해가야 정리가 가능할 정도다. 그런 난해함을 간명하게 정리해주는 역이 바로 손부의 존재다. 제목이 암시하는 '태'와의 직접적인 연관도 그렇거니와 극 속에서 유일하게 죽음이 아닌 삶의 주제를 끌고 가기 때문이다.

▲ 김마리아에게 더 많은 사람들의 시선이 모아지게 한 '태'에서 손부로 열연
ⓒ 김기
오태석 국립극단 예술감독이 직접 연출한 '태'에서 손부로 발탁된 배우는 앳된(연극계로서는) 26살의 배우 김마리아. 김마리아의 모습은 이미 지난 7월의 '우리읍내'에서 볼 수 있었다.

'우리읍내'와 '태' 모두 배우 김마리아의 실제 나이와 비슷해서 우선 어색함이 없었다. 또 하나 흥미로운 공통점은 두 연극에서 김마리아는 죽게 되는데, 연출자들은 그녀에게서 비극의 조건을 발견하는 것 같다.

공통점부터 말했지만 '우리읍내'와 '태'는 천양지차의 경향을 가진 작품이다. 김마리아가 맡은 '우리읍내'의 영희와 '태'의 손부 역할 또한 유사점을 찾을 수 없는 전혀 다른 인물이다. 교과서 인물이라는 가장 평범한 이름 '영희'는 그야말로 순수하고 맑은 영혼의 가져 동화적 슬픔을 전달하는 인물이다.

그러나 '태'의 손부는 과거 권세가의 여식이라면 차마 꿈에도 생각 못했을 살인과 자살이라는 극한의 상황에 놓여 고통과 절망 속에서 절규하고 저주하는 끔찍한 비극의 주인공이다. 이 상반된 캐릭터의 공통점이라면, 관객들로부터 연민을 이끌어내야 하는 의무를 갖고 있다는 점이다. 영희가 멜로드라마적 순수 연민이라면, 손부는 대하드라마를 통한 역사의 고통을 대리해야 하는 같지만 다른 역할이다.

▲ '우리읍내'에서 김마리아는 극중 영희로 등장해 비슷한 또래의 맑고 순수한 영혼의 생전 일상에 대한 갈망을 표현했다.
ⓒ 김기
이런 역할이라면 누구라도 탐내기 마련이다. 그리고 국립극단의 작품에서 연거푸 주연을 따낸 낯선 얼굴 김마리아에 대한 궁금증도 시간이 갈수록 커졌다. '태'를 마치고 휴식을 취하고 있을 거라 예상하고 국립극단을 찾았다. 그러나 11일의 공연을 끝낸 지 며칠 지나지도 않았는데 배우들은 지방공연을 위한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김마리아 역시 연구과정생들의 결산공연 '임대아파트' 연습에 비지땀을 흘리고 있었다. 연습이 끝나기를 기다려 그녀와 만났다. 대작을 올리고 피로가 가시지도 않았을 텐데, 연습에 또 이렇게 인터뷰까지 너무 힘들게 하는 것 같아 적이 미안한 감이 들었으나 젊고 발랄한 성격의 김마리아는 생기가 넘쳐 보였다.

- 국립극단의 두 작품에서 연거푸 주요 역할을 맡아 좋은 평을 받은 것 같다. 우선 축하하고 소감부터 말해 달라.
"칭찬받을 만큼 잘한 연기가 없기 때문에 부끄러운 마음뿐이다. 좋은 역할이 온 것은 정말 행운이었는데, 아쉬움이 크다."

- 자기에 만족하지 않는 것은 배우로서 좋은 자세로 보인다. 어쨌거나 본인의 마음과는 상관없이 '태'를 본 많은 사람들이 마리아씨를 칭찬한다는 것을 기억하라. 언제 연극을 시작했는지 지금까지의 과정을 설명해 달라.
"안양예고를 들어가서 처음 연극을 접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연극 외에는 생각해본 적이 없을 만큼 그때 받은 충격과 감동이 너무 컸다. 예고부터 대학 때까지 학교서 하는 연극은 빠지지 않고 거의 다 했다."

▲ '태'를 마치고 바로 '임대아파트' 준비 중인 김마리아. 사진을 찍으려 하자 '가슴 보이는 거 아니에요?'하고 당황스러운 말을 거침없이 한다. 그런데도 불쾌하지 않은 것은 김마리아는 아직 앳된 배우로 장난기가 넘치기 때문이다.
ⓒ 김기
- 대학 졸업 후는 서울예술단에 입단한 걸로 알고 있는데, 국립극단 연구단원으로 온 까닭은?
"동국대 연영과 재학시절 꿈꿔온 곳이 국립극단과 유씨어터다. 그런데 졸업할 당시 두 단체 모두 정단원은 물론 연구단원 모집이 없었고, 마침 예술단에서 신입단원 모집이 있어 주변의 권유로 응모해서 2년 정도 다녔다. 그렇지만 연극을 하고 싶은 마음을 억누를 수가 없어서 사표를 내고 연구단원으로 오게 됐다."

- 수입의 차가 크고 무엇보다 안정적 직장을 버리고 스스로 어려운 길을 택한 이유는 역시 연극의 갈증인가?
"연극을 알게 된 후 지금까지 '난 연극만 하고 살 거'라고 선언해왔다. 예술단에 들어가서 우연히 작품 비디오를 봤는데, 물론 단역이어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넋 나간 사람처럼 멍하게 있는 내 모습을 보고 화가 났다. 내가 갈 길은 역시 연극이라는 생각에 오디션을 보기 위해 예술단 선배들이 퇴근할 때를 기다려 새벽까지 연습해서 다행히 국립극단 연구과정에 합격할 수 있었다. 그리고 사표를 냈다."

- 상당한 미인이다. 영화나 CF 등 유혹도 적지 않았을 듯한데.
"내 입으로 말하기 쑥스럽지만, 미스코리아 나가란 말도 많이 들었고, 대학시절 한 명품브랜드 매니저가 만나자 해서 잠시 만난 적이 있지만 하지 않았다. 사람을 상품처럼 대하는 것을 견딜 수 없어서 자리를 박차고 일어서면서 '난 연극할 거예요'하고 말했다. 그 후론 연락이 없었다(웃음). 처음에는 막연히 배우가 되겠다는 생각을 가졌는데 지금은 연극배우가 내가 갈 길이라는 신념을 갖고 있다."

- 마리아씨를 돋보이게 한 '태'로 들어가 보자. 가장 어려웠던 점이 무엇인가?
"태뿐만 아니라 우리읍내 할 때도 가장 힘든 점은 많은 선생님, 선배님들의 무게감을 견디는 것이었다. 물론 내 역할을 할 때면 잊혀지긴 하지만, 무대에 오르기 전 극복하지 못할 것만 같은 중압감을 준다. 그리고 태에서는 손부를 지탱하는 한의 연기가 무엇보다 어려웠다. 특히 대사를 받쳐주는 소리에 대한 고민이 너무 커서 한번도 먹어본 적 없는 개고기까지 먹었다.(웃음)"

▲ 극단 연습실에 남아 대본 연구를 하는 김마리아. 욕망이라는 전차의 블랑시 역을 꼭 해보고 싶다는 그녀는 한눈팔지 않고 연극에 목숨 걸겠다고 말한다.
ⓒ 김기
- 정말 연극만 할 건가? 요즘 연극배우들이 영화 진출이 눈부신데.
"아직 영화출연 제의를 받은 적은 없다. 그러나 나는 연극에 뼈를 묻는다는 생각으로 이미 부모님들한테도 선언했다. 내가 다른 것을 하기 위한 조건은 외부의 제안이 아니라 나 스스로와 연극계 모두가 김마리아라는 이름에 만족할 때까지 연극에만 전념하는 것이다."

김마리아는 젊은 세대답게 당차고 분명한 자기 생각을 펼쳐냈다. 무엇보다 예쁜 척하지 않아 예뻐 보였다. 국립극단의 기라성 같은 배우들 속에서 당당히 주역을 맡아 소화해낸 힘은 연극에 대한 큰 동경과 신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김마리아는 국립극단 연구과정생을 결산하는 연극 '임대아파트'를 통해 다시 무대에 선다. 12월 2일부터 6일까지 국립극장 별오름극장. 이 작품에서 김마리아는 산 사람이 아니라 죽은 영혼으로 등장한다. 연출자들은 그녀에게 비극의 요건을 발견하는 것 같다.

우리나라 드라마는 아직도 어쩌면 영원히 청순가련의 여배우만을 갈망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태'가 끝난 후 여러 곳에서 출연제의가 들어올 정도로 급부상한 김마리아. 2007년 연극무대를 빛낼 신세대 연기자로 주목하게 된다. 김마리아가 앞으로 또 어떤 무대에서 비극의 주인공으로서 관객의 심금을 울리게 될까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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