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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겉그림
ⓒ yes24
2005년 그해 여름부터 겨울까지 여러 언론매체들은 동분서주했다. 그야말로 황우석 신드롬이 온 나라를 들썩였기 때문이다. 어디 언론매체뿐이었는가? 우리나라 과학계를 비롯해 정치·경제·사회·문화계뿐만 아니라 대통령으로부터 어린 꼬마들까지 열광치 않았던가. 마치 2002년 한일월드컵 축구를 보는 것처럼 미친 듯 흥분했다.

뭐든지 열광의 중심에는 같은 편과 상대편이 있기 마련이다. 당시 온 국민의 같은 편으로는 황우석 사단이었고, 그 상대팀으로는 MBC 〈PD 수첩〉팀이었다. 그 한 가운데에는 바로 한학수 PD가 포진하고 있었다. 이른바 과학자와 방송매체간의 싸움이었다. 당시 그 방송을 보던 모든 이들은 방송사의 일개 아마추어들이 어떻게 세계적인 과학자를 검증할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더군다나 그 무렵에는 이미 우리나라 사람들 모두가 ‘쇠젖가락 문화’에 대한 자긍심을 갖고 있는 터였다. 이른바 난자에서 핵을 제거하는 탈핵 기법 중의 하나인 ‘스퀴징 기법’이 황우석 사단의 독자 기술에서 비롯된 것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일본에서 이미 개발한 것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도 우리나라 국민들이라면 너나 할 것 없이 맹목적인 애국심을 부추기는 황우석을 떠받들었다. 편 보다는 오직 황비어천가 일색이었다.

그 진실의 공방은 2005년도 겨울까지 거듭됐다. 그리고 그 끝은 모든 사람들로부터 찬사를 받던 황우석 사단은 거짓으로, 당시 몰매를 맞고 있던 팀과 그 중심에 자리잡고 있던 한학수는 진실로 판명됐다. 그 피와 땀의 결실인 취재파일이 〈여러분! 이 뉴스를 어떻게 전해 드려야 할까요?〉(사회평론·2006)로 이번에 나왔다. 얼마나 보람찬 열매인가?

“나는 이 사건에서 희생양을 만들기 시작하면 끝이 없으며, 정녕 우리가 얻을 것을 다 놓치게 된다고 본다. 스스로에 대한 성찰이 없다면 ‘우리안의 황우석’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무얼 성찰해야 하는가? 부디 이 취재파일이 단지 한 사건에 대한 후일담으로 치부되지 않기를 바란다.”(서문)

사실 황우석은 보통 사람의 솜씨 그 이상이었다. 실로 무늬만 과학자였지 부동산 투기를 조장하는 개발업자와 다르지 않았다. 줄기세포는 하나도 없건만 그것이 여러 개나 되는 양 그리고 진짜인 양 꾸미고 부풀려서 온 국민을 열광케 했으니 부동산 개발업자와 다르지 않으며, 하나씩 하나씩 그 실체가 드러나는데도 계속 눈물을 흘려 동정심을 유발했으니 그것은 희대의 정치 사기꾼 모습이 아니던가.

더군다나 아랫사람의 난자 체취과정에서도 결코 자발적이지 않는 반 강제성까지 띠었다. 또한 배아줄기세포이라는 것도 그 이면을 보면 사실 암 덩어리와 같은 것인데 그것을 통제할 수 있는 능력이 배양된 뒤에라야 임상적용에 나설 수 있다. 그런데도 당장 몇 년 안팎에 뭔가를 해 낼 수 있는 것처럼 언론 플레이를 했으니 얼마나 파렴치한 사기꾼인가. 실제 동물의 경우에도 줄기세포를 주입한 개체 중에 30%가 암에 걸렸다는 연구 보고서도 있단다. 그런데도 그 부정적인 면을 속였으니 어찌 개탄치 않을 수 있겠는가.

그렇게 전 국민을 상대로 속임수를 꾀할 수 있었던 이유는 다른 데 있지 않았다. 거기에는 과학계와 정부, 그리고 언론이라는 삼각동맹이 똬리를 틀고 있었다. 어느 나라 과학 교수라 할지라도, 심지어 노벨상을 받은 과학자라할지라도 국보급 경호를 받은 일이 없건만 우리나라 정부에서만 유독 그 별난 대우에 앞장서지 않았던가. 거기에다 언론사들까지도 묘한 줄타기를 시도하며 자기 점유율을 높이기 위해 온통 황비어천가 일색이었다. 어쩌면 그 삼각동맹의 밀월관계야말로 민주화 이후 민주사회가 개탄해야 할 가장 큰 문제점이 아닐 수 없다.

“학맥과 지연의 끈을 이용해 권력의 중심부에 접근하는 과학자와 정치인이 있고, 스타를 키워 이공계 위기의 본질을 감추려는 약삭빠른 전략가들도 있다. 줄기세포가 있는지 없는지 너무나 뒤늦게 파악한 무능한 정보기관도 있고, 사태를 파악한 이후에는 오히려 이를 덮고자 배후에서 온갖 모사를 일삼는 권력자들도 있다.”

하지만 한학수 PD는 거기에 주눅 들지 않고 황우석 사단에 브레이크를 걸고 나섰다. 그 시도를 할 수 있었던 것은 최초 황 교수 실험실에서 실험에 동참했던 신경외과 의사인 K라는 제보자와 B라는 그 아내의 도움이 컸다. 그들의 제보와 도움은 그야말로 진실규명을 위한 한 줄기 빛이었다. 그리고 서서히 제보자 C와 다른 제보자 및 순수 과학자들이 그 희망의 빛을 이어갔다.

물론 그것을 취재를 하면서 한학수 PD 개인과 그리고 가족들에게도 엄청난 고통이 뒤따랐다. 무엇보다도 우선은 인문학을 전공한 그였으니 블라스토시스트(배반포), 파세노제네시스(처녀생식), 테라토마 포매이션(줄기세포의 생체실험) 등 난생 처음 보는 용어가 가득했다. 그는 밤낮없이 그것들과 씨름해야 했고, 어느 정도 내공을 쌓을 무렵엔 곳곳에서 밀려오는 회유를 극복해야 했다. 더군다나 김선종 연구원을 취재하면서 취재윤리를 위반한 탓으로 2차 방송도 중단해야할 위기에 처했으니, 주위 동료들의 눈총이 얼마나 따가웠겠는가.

“MBC 노동조합에서는 '진실은 밝혀져야 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특히, ‘무엇이 우리에게 유리한가’라는 질문보다는 ‘무엇이 진실인가’라는 질문에서 우리는 출발해야 한다는 글귀가 심금을 울렸다. 그러나 사내에서는 반발하는 기류도 만만치 않았다. 회사의 몇 몇 조합원들은 이 성명에 대해 노조에 내려와 항의했고, 며칠 사이에 조합원 10여 명이 조합을 탈퇴했다.”

그 힘겨운 줄다리기는 끝내 방송을 하는 것으로 가닥을 잡았고, 결국 그것은 크나큰 승리였다. 이른바 진실 규명을 위한 익명의 제보자들과 한학수 PD를 비롯한 취재원들 모두의 결실이었다. 거짓을 파헤치고 진실을 드러내기 위해선 삼각동맹의 밀월관계가 너무나 큰 장벽이지만, 결국에는 그 진실의 힘이 드러나고 만다는 귀한 교훈이었다. 진실 규명은 그처럼 포기하지 않는 한 줄기 희망의 불씨에서 싹트는 것임을 다시금 깨닫게 된다.

여러분! 이 뉴스를 어떻게 전해 드려야 할까요? - 황우석 사태 취재 파일

한학수 지음, 사회평론(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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