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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성희
공교육이 무너지고 사교육이 공교육을 대신하는 풍조가 만연돼 '교육망국'이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는 우리나라 교육 현실이 일본의 교육과 닮은꼴로 가고 있다는 연구 발표가 나왔다.

한국사회정책학회·서울대학교 사회과학연구원·일본사회정책학회가 공동주최한 '2006 국제학술대회'가 지난달 24일 서울시 중구 정동 사회복지공동모금회 강당에서 열렸다.

'사회정책의 핵심이슈와 과제'라는 주제로 열린 학술대회는 한국사회정책학회(회장 윤조덕)에서 조홍식(서울대 사회과학연구원장) 교수·정재훈(서울여자대학교) 교수·선우덕(한국사회보건원) 연구위원·김용일(한국해양대학교) 교수·한만길(한국교육개발원) 박사·정진곤(한양대학교) 교수 등이 발제와 토론을 맡았다.

일본사회정책학회는 타케가와 쇼고(도쿄대학교) 회장을 비롯해 우즈하시 타카후미(도시샤대학교) 교수·하시모토 겐지(무사시대학교) 교수 등이 발제를 했고, 한상돈(연변과학기술대학교) 교수가 토론에 나섰다.

이날 발표한 '공교육 비교 분석'에서 한·일 학자들의 연구와 토론을 발췌·정리 2회에 걸쳐 연재한다. 이날 1백여명의 학자와 관계자들이 참석한 국제학술대회에서 최초로 한국과 일본의 교육 문제점과 이를 위한 개선책이 비교 분석돼 관심이 쏠렸다.

1회에서 일본 하시모토 겐지 교수의 '현대일본의 교육기회불평등과 평등을 위한 교육-사회정책'편을, 2회에서 한국 김용일 교수의 '한국 공교육의 현황, 문제점 및 개선방향'을 싣는다. <필자주>


승자조와 패자조-일본 공교육의 현장

하시모토 겐지 교수
하시모토 겐지 교수 ⓒ 한성희
[하시모토 겐지] "최근 일본에서는 '격차사회', '승자조 패자조', '하류사회' 등이 유행어가 되고 있다. 이는 10여년 전만 해도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1990년 중반까지는 일본은 평등한 사회였고 일본인의 90%가 '중류'라고 하는 것이 상식이었기 때문이다.

1997년 심각한 불황에 돌입해 기업의 경영파탄과 도산이 속출해 고용흡수력이 급격히 상실되고 실업률이 급증했으며 중·고년 남성들의 자살이 급증했다. 이러한 사회의 배경에 격차(불평등)의 확대가 있다는 것에 관심이 집중하게 되었다.

일본 최대의 데이터베이스(문고잡지기사)에 의하면 '계급'을 키워드로 다룬 기사가 1995년부터 1999년까지 121건이었던 데 반해 2000년부터 2004년까지 194건으로 증가했고 2005년에는 64건에 달하고 있다.

조사데이터 분석으로도 계급(1970년대 이후 발전해온 네오마르크스주의적 계급개념)의 중요성이 부각하고 있다. 과거의 자본가계급과 노동자계급의 양대 계급은 부정되고 자본가계급과 노동자계급의 중간에 있는 신중간계급과 영세규모의 자영업을 하는 구중간계급을 포함해 4개의 계급으로 나눈다.

그렇다면 이러한 계급 간 격차는 교육과 어떤 관계가 있는 것일까. 일본은 수십 년간 계급구성이 크게 변화해 구중간계급이 격감하면서 노동자계급과 신중간계급이 증가해왔기 때문에 연령층에 의해 크게 다르게 나타난다.

일본의 '의무교육'은 초등학교 6년과 중학교 3년의 9년이다. 단기대는 고졸에 2∼3년, 대졸은 대학 4년 이상을 걸쳐 취학했다는 것을 나타낸다.

한눈에 알 수 있듯이 진학률은 출신계급에 크게 좌우된다. 가장 높은 것은 신중간계급(70.4%)이고 자본가계급(62.5%)은 비슷하지만, 노동자계급(18.9%)과 구중간계급(26.9%)은 진학률이 매우 떨어진다.

이를 계급소속의 결정요인으로 학력의 중요성과 함께 생각해본다면, 좋은 환경의 출신자가 높은 학력을 얻고 좋은 환경의 계급에 소속될 가능성이 크며 학력을 매개로 한 계급적 위치의 세대적 계승이 발생하고 있다는 것을 나타낸다. 성적으로 대학을 진학하는 비율이 1/3이고 나머지는 계급과 환경에 의한 진학으로 사회적 불평등이 확대되고 있다.

또 성적이 같은 수준이었던 사람끼리 비교해보아도 계급차이는 매우 크다. 자본가계급·신중간계급은 성적이 상위라면 대부분 진학하고 있고 하위라도 40%는 진학하고 있지만, 노동자계급은 성적이 상위라도 거의 과반수가 진학하고 하위라면 진학의 가망성이 없다.

일본에서는 1980년대부터 1990년대에 걸쳐 꽉 짜인 커리큘럼 하에서 장시간의 수업을 행하는 주입식 교육이 비판받았다. 이런 교육환경하에서 아이들이 육체적·정신적으로 피폐하고 획일적인 교육은 창조성을 잃어버릴 수 있다고 지적됐던 것이다. 당시 문부성은 '주입식 교육'을 '넉넉한 교육(유도리 교육)'으로 전환해 실습지도요령을 개정, 수업 일수와 수업시간을 줄였다.

그러나 1990년대 말이 되자 '넉넉한 교육'에 의해 학력이 저하됐다는 비판이 제기되었다. 하나는 일본의 국력이 저하된다는 점, 하나는 삭감된 교육을 커버하기 위해 사교육비 증가다. 결과적으로 사회 계층간의 학력격차가 확대되어 교육기회의 평등이 손상됐다는 비판이다.

그렇지만 현실적으로 볼 때 '넉넉한 교육'이 교육기회의 구조에 미친 영향은 그리 크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진학할 수 있는가 없는가는 학력보다는 계급속성 요인에 의해 결정 받는 부분이 크기 때문이다."

교육불평등 부추기는 일본 정부

한만길 박사
한만길 박사 ⓒ 한성희
[한만길(한국교육개발원)] "우수한 인재 육성은 각 국가의 국가 경쟁력을 위한 교육 경쟁력에 있다. 하시모토 교수는 일본의 교육불평등 문제가 심화하고 있는 현상을 이론적으로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태어나서부터 서열화된 일본의 서열구조를 타파하기 위해 하시모토 교수가 종합적 정책을 주장한다. 그 구체적인 대안은 무엇인가."

[하시모토겐지] "현재 일본은 비정규노동력이 증가하고 있다. 교육기회의 격차를 줄이는 일본 정부의 노력이 전혀 없으며 오히려 부추기고 있다. 정부 보조금은 구제국대학-지방국립대학-사립대학 순으로 지급된다. 특히 비사립대학에는 보조금을 강화했으나 사립대학에 대해 보조금을 계속 줄여버려서 결과적으로 소득이 높은 층만 혜택을 보고 있어 교육불평등의 원인이 됐다.

'넉넉한 교육'으로 서열화 비판이 높아졌다. 넉넉한 교육 결과 오히려 입시강화정책으로 가고 있다. 일본은 광역지자체(현)마다 고교입시제도가 다르다. 서열화가 덜 된 현에서 오히려 진학률이 높다는 데이터가 있지만 이 목소리는 크지 않다.

그렇다면 교육평등의 기회를 실현하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한가? 나는 두 가지를 제안하고 싶다. 첫째, 진학에의 장벽을 없애기 위한 시책이고, 둘째는 경제적 격차나 계급적 불평등 기 자체를 경감하기 위한 사회정책이다.

우선 학비를 당분간 국립대학(연간 약 54만엔, 사립대학은 약 114만엔) 정도로 묶어두고 사학지원을 충실하게 하면서 저소득층에 대한 학비감면이나 장학제도도 충실하게 할 필요가 있다. 일본에서는 고등교육에서 사립대학 비중이 높고(4년제 대학의 73.5%, 단기대학의 93.8%) 이를 위해서 거액의 재원이 필요하게 된다. 새로운 재원으로는 대졸자를 고용하는 기업으로 징수하는 교육세 도입이 검토돼야 한다.

교육기회의 불평등은 왜 발생하는 것인가? 중요한 것은 경제적 요인, 문화적 요인, 그리고 제도적 요인이다.

경제적 요인은 예나 지금이나 매우 중요하다. 대학교육을 받기 위해서는 돈이 많이 든다. 학생 1인당 연간 학비와 생활비는 194만엔이고 하숙이나 아파트 생활을 할 때는 227만엔이 든다. 거꾸로 고졸로 취업하면 정규직은 240만엔 정도, 비정규직이라도 100만엔 정도의 연간 소득이 기대된다.

그렇다고 한다면 저소득층 부모와 그 아이가 성적으로는 진학이 가능하지만 진학하지 않는 길을 택한다고 해도 불가사의한 것이 아니다. 졸업 후에 '프리타(젊은 비정규직)'가 될 예정의 고교생 41%가 그런 진로를 선택할 이유가 '진학에 돈이 너무 많이 들기 때문'을 들고 있다. 여기에는 경제력이 없는 가정에서 자란 젊은이가 진학의 길을 포기하고 저임금의 비정규직고용노동자가 된다고 하는 왜곡된 구조를 엿볼 수 있다.

문화적 요인은, 고학력자가 많은 상층의 부모들은 풍부한 학교경험을 가지고 노력을 통해 좋은 성적을 받는 것이나 진학하는 것의 가치와 그를 위한 노하우를 알고 있다. 피에르 부루드는 이를 '문화자본'이라고 한다. 말하자면, 부모로부터 아이에게의 문화자본 전달이 상층출신 아이들에게 유리하며 거꾸로 문화자본의 결여가 하층출신의 젊은이들에게 불리하다.

셋째로는 일본의 교육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계층적 구조, 즉 고등학교 간, 그리고 대학 간 서열의 구조라고 하는 제도적 요인이 격차를 넓히고 있다. 일본에서는 고등학교 간에 진학학교에서 '저변학교'에 이르는 일원적인 서열이 형성돼 있다. 좋은 환경에서 자란 젊은이들은 문화자본의 도움을 받아서 스타트닷슈에 성공하고 있지만 그렇지 못한 젊은이들은 비진학학교나 저변학교에 진학한다. 이렇게 해서 양자의 진학률 차이는 확대되고 고정되는 것이다."

정진곤 교수
정진곤 교수 ⓒ 한성희
[정진곤(한양대 사범대학)] "먼저 하시모토 교수가 제시한 데이터는 어디에서 구할 수 있었는가 궁금하다(하시모토 교수의 논문에 자세한 자료도표가 여러 개 제시됐다). 정부에서 공개한 자료인가? 우리나라에서 이런 자료는 정부가 공개를 못하게 한다. 2년 전 교육대학에서 연구자료로 수능시험 결과 자료를 공개했다가 교육부에서 대학교수에게 소송을 걸었다. 수능에서 계층별 대학진학자를 정부에서는 절대로 공개 안 한다. 데이터가 없어서 추측할 뿐이다. 이를 연구 분석할 자료조차 없는 형편이다.

한국에서도 요즘 사회과학대를 부자들이 선호하며 10년간 사회계층은 점점 더 벌어지고 있다. 빈곤 가정 아동들이 교육 못 받고 가난하게 살며 고소득층에게 반대현상이 일어나는 것이 계승되고 있다. 개천에서 용이 나는 현상은 더는 없다. 아버지 잘 만나면 좋은 대학 가고 부모 못 만나면 나쁜 대학 가는 현상(양반자제가 양반이 되고 상놈 자제는 상놈으로 사는) 조선시대로 되돌아간 것 같다."

[하시코토 겐지] "일본에서는 사회학자 그룹들이 만든 데이터가 공개돼 있고 외국의 연구라도 인용이 가능하다. 조사대상에 한국이 포함돼 있으며 현재 데이터를 작성 중이다. 현재 한국이 포함된 조사데이터를 작성 예정이라 내년부터는 한국을 포함한 자료가 나와 언젠가는 똑같은 자료로 연구할 수 있을 것이다.

일본에서도 대학진학을 못한 젊은이들의 비정규직 노동자로 취업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교육기회의 격차를 확대하는 한 요인인 고등학교의 서열구조가 완화되지 않으면 안 된다."

대기업에서 교육세 부담해야

[하시모토 겐지] "대학은 또 다른 문제가 있다. 일본의 국립대학은 저렴한 학비로 폭 넒은 계층에게 고등교육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사명이지만 현재까지 구 제국대학(동경대)을 중심으로 학력이 높은 젊은이 외에는 입학이 불가능하다. 그러나 사립대학은 대도시부 중심에 집중해 있기 때문에 학비가 비싸다. 현재로서는 대학정원에 상당한 여유가 있어 학비와 생활비를 부담할 수만 있다면 성적이 평균 이하라도 사립대학에 진학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하다.

대기업은 교육비를 부담하지 않고도 많은 대졸자를 고용하여 고등교육의 이익을 받아왔다. 그 이익의 일부를 세금으로 흡수하여 고등교육비로 충당하는 것이다. 이 방책은 기업이 고용한 무의미한 학력편중을 해소하는 차원도 될 것이다. 또 시설과 설비에서 많은 혜택을 받은 국립대학은 지역의 젊은이들을 보다 많이 폭넓게 받아들여야 한다.

다음으로는 경제적인 격차나 불평등을 격감하는 것이 요구된다. 교육기회의 평등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소득분배에서 어느 정도까지는 '결과의 평등'이 불가결하다. 격차가 축소되면 능력이나 노력이 정당하게 평가받지 못한다는 견해가 유력하지만 실제로는 별로 설득력이 없다.

안타깝게도 일본에서 일반국민에게 교육정책은 사회구조가 문제라는 인식의 생각이 적다. 사회정책과 교육의 결합이라는 생각을 이끌어나가야 한다. 사범대 학자와 경제학자의 교류도 거의 없는 실정이다. 이는 교육정책 부족과 학자들의 책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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