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19개의 장면으로 구성된 이 작품의 무대는 화성 특별 수사본부 사무실이다. 서울에서 자원해 화성으로 온 김 반장, 명문대 출신의 시인 지망생 김 형사, 화성 토박이인 박 형사, 그리고 무술 9단의 조 형사. 이렇게 4명이 한 팀이 되어 화성 연쇄 살인사건을 수사하고 있다. 수사팀과 (표면적으로만) 협력관계에 있는 박 기자 역시 합류해 범인을 추적하고 있다. 수사팀의 사무실에 연쇄살인범 용의자들이 차례로 잡혀 들어오지만 증거 부족으로 풀어줄 수밖에 없다.
그러던 중 김 형사는 라디오에서 모차르트의 레퀴엠이 나오는 날마다 사건이 발생했다고 주장하며 라디오를 주의 깊게 듣는다. 그렇지만 수사는 진척되지 않는다. 언론은 일제히 비난의 화살을 수사팀에게로 돌리고, 수사팀은 기진맥진해진다. 살인사건은 또 다시 일어나고, 방송국에 모차르트 레퀴엠을 신청한 정인규가 체포된다. 혈액형 등의 검사결과가 범인의 것과 일치하자 모두들 정인규가 범인임을 확신하지만, 마지막 DNA 검사 결과 범인이 아님이 드러난다. 결국 김 반장은 충격으로 중풍을 얻고, 김 형사는 정신병원에 입원, 박 형사는 형사생활을 그만두게 된다.
저자 김광림은 연극 <날 보러 와요> 관련 인터뷰에서 "'죽은 사람이 있으니 범인은, 진실은 있지만 찾을 수 없다. 찾아도 알 수 없다' 는 철학적인 명제를 가지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가 내세우는 명제가 다분히 관념적이고 추상적이지 않나 싶었다. '진실' 이라는 것이 매우 애매모호하고 가변적이기는 하지만, 이 작품에 진실의 모호성이 적용될 수 있었던 것은 범인이 끝내 잡히지 않았기 때문이 아닌가.
나는 진실논쟁 여부를 떠나 이 작품의 주 테마인 '살인'에 관한 '찾으면 알 수 있는' 사실 관련 자료들을 짚어보기로 했다. 나는 첫 번째로 경찰대 표창원 교수의 연쇄살인 관련 저서를 집어 들었다.
"일반살인의 경우, 범죄 수사 과정 동안 피해자의 신원과 평소 인간관계 등 자연스럽고 상식적인 절차를 밟아나가다 보면 용의자가 나타나고, 증인과 증거가 확보되는 경우가 많다. 우리나라에서 일반 살인 사건 해결율(범인 검거율) 은 99%에 이르며 그 중 대부분은 사건 발생 1개월 이내에 해결된다. 반면에 연쇄살인의 경우에는 피해자 입장에서는 전혀 살해당할 이유를 찾을 수 없으며 대부분 살인범과 피해자 사이에는 아무런 관계도 없다. (중략) 한국의 연쇄살인을 정의해 보자면, '일반적으로 납득할 수 있는 살인의 동기나 계산 없이, 살인에 이르는 흥분 상태가 소멸될 정도의 시간적 공백을 두고, 2회 이상 살인을 저지르는 행위' 이다." - 표창원, <한국의 연쇄살인> 중에서
또한 표 교수는 지난 8월 22일자 <뉴스메이커>지의 살인 관련 칼럼에서 "일부 남성들에게 성행위는 여성을 정복하고 남성다움을 과시하는 것으로 왜곡돼있고, 특히 살인 외에는 일생을 통해 별다른 성취감을 느껴보지 못한 대다수 연쇄 살인범은 여성 피해자를 강간함으로써 정복감과 지배감, 소유감을 만끽하게 된다"면서 범죄자의 심리에 관한 의견을 피력했다.
그렇다면 '살인 이외에는 별 성취감을 느껴보지 못한' 사람들이 주로 살인범이 되는 것일까. 관련 자료를 찾다가 놀라운 통계를 접하게 되었다. 미국의 연간 살인 관련 통계를 살펴보니, 매 해 일어나는 살인사건의 87퍼센트가 남성에 의해 일어나는 것이었다. 텔레비전이나 신문에서 '연쇄 살인범 검거' 와 같은 타이틀 아래 잠바를 뒤집어 쓴 남자 범인이 연행되는 장면을 본 일은 수두룩하다. 하지만 살인 사건 십중팔구는 남성에 의해 일어난다니, 놀랍고 의아하게 느껴졌다. 남성에게는 그들만의 폭력성이 내재되어 있는 것일까.
이와 관련해 학자 데이비드 버스는 그의 저서 <이웃집 살인마>에서 "폭력을 휘두르는 남성은 여성들에게 아무런 매력이 없는 존재이고, 여성들이 원하는 것을 가지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짝짓기 시장에서 완전히 제외된다. 짝짓기 경쟁에서 여성에게 선택되지 못한 남성들은 폭력을 자신의 신분상승의 도구로 사용한다. (중략) 여성들이 살인을 매우 역겨운 행위로 여길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으나, 놀랍게도 오늘날에도 기소된 살인자들을 매력적으로 여기는 여성들이 있다"면서 여성들에게 수 천 통의 연애편지를 받은 연쇄살인범들에 관한 자료를 제시하였다.
'짝짓기 시장에서 배제된 남성들이 전략으로서 살인을 한다?' 다소 받아들이기 힘든 논지였다. 과연 평범한 시민의 일원이었을, 한때는 해맑은 얼굴의 어린이였을 한 인간이 그토록 잔혹한 살인범이 되기까지에는 어떤 환경들이 영향을 미쳤을까.
'살인' 이라는 단어에 익숙해져버린 건조한 심장의 현대인인 나는, 아무렇지도 않게 살인 관련 자료들을 찾아 읽어보며, 화성 연쇄 살인 사건의 실제 범인을 떠올려보았다. 그 역시 짝짓기 경쟁에서 탈락한, 내세울 것 없는 남성이었을까. '폭력과 살인이 짝짓기에 성공하기 위한 보잘것없는 남성들의 전략'이라는 의견에 마냥 동의할 수만은 없는 일이었다. 그러한 전략을 남용하기에 인간의 목숨은 너무나 소중하고, 이성은 그리 쉽게 마비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 사이버 문학광장 '문장(www.munjang.or.kr)' 에도 올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