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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 밤새 내린 눈으로 내 글방에서 바라본 창밖 경치가 달라졌다.
ⓒ 박도
장엄한 설경

아침에 일어나 커튼을 열어젖히자 장엄한 설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내가 이 산마을을 사랑하고, 아무 연고도 없는 이 곳을 떠나지 못한 까닭도 네 계절마다 변화무쌍하게 펼쳐지는 대자연의 오묘하고도 현란한 쇼 때문일 것이다.

서울에서 이 곳으로 내려와서 세번째 겨울을 맞고 있다. 그동안 살아보니까 강원도의 겨울은 몹시 길고 추워서 겨울나기가 여간 고생스럽지 않았다. 서울보다 평균 기온이 4~5도는 더 낮은 것 같다. 그리고 눈도 엄청 많이 내린다.

▲ 집 뒤꼍까지 온통 비닐로 뒤덮고 지냈다.
ⓒ 박도
여기로 내려온 첫해는 엄청 힘들게 보냈다. 온 집안을 비닐로 덮다시피 둘러싸도 추위를 막아낼 수가 없었다. 그런 가운데 겨울가뭄이 계속되더니 갑자기 눈이 내리고 강추위가 닥쳤다.

그러자 수도가 그만 꽁꽁 얼어붙어 하는 수 없이 샘물에서 물을 길어 먹었다. 물통을 들고서 언덕을 오르다가 눈길에 다리가 겹질리어 골절상을 입고 난생처음 목다리를 집고 서너 달 지냈다. 강추위에 손을 써볼 수도 없어 언 땅이 녹을 때까지 다시 서울로 가서 아이들과 지냈다.

옆집 노씨 말에 따르면, 내가 쓰고 있는 아래채 글방은 원래 소 외양간으로 40여 년 전에 방을 들여놓았다고 한다. 우리가 이사 온 뒤 아래채 온돌방은 그대로 둔 채 전 주인이 화실로 쓰던 거실은 전기패널을 깔고 썼다. 온돌방은 구들을 놓은 지 무척 오래인데다가 그새 쥐들이 구멍을 뚫어놓아 연기가 굴뚝보다 옆벽으로 더 많이 샜다. 거기다가 단열이 전혀 되지 않아서 군불을 지피면 방바닥은 따근따끈하지만 눈은 따갑고 코끝은 냉기가 돌았다.

게다가 산에서 나무하는 일도, 군불 때는 일도 만만치않아 하는 수 없이 전기패널을 썼더니 전기료가 엄청 나왔다. 뱅뱅 돌아가는 전기계량기를 그대로 볼 수 없어 지난해에는 겨울로 접어들면서 아래채 글방을 폐쇄하고 본채로 옮겨갔다.

시집온 지 30년 동안 20평도 안 되는 좁은 공간에서 살았던 아내가 넓은 공간에서 살고자 산골마을로 내려왔는데, 다시 남편이 책이네 컴퓨터네 책상을 안채 거실에 퍼질러 놓으니 피차 불편해질 수밖에 없었다. 한겨울 함께 본채 거실에서 지내면서 남편 퇴직 후 황혼이혼이 많은 이유를 터득했다.

흙집 글방을 짓다

▲ 올 가으내 새로 지은 내 글방.
ⓒ 박도
지난 여름, 이 곳 강원 평창 횡성지방은 이 마을 오래 사신 분 얘기로 자기 태어난 이래 가장 많은 비가 내렸다고 한다. 내 집 안방까지 물이 스며들 정도로 정말 징그럽게 비가 내렸다. 마침내 아래채 낡은 벽이 오랜 장마에 견디지 못하고 허물어져 버렸다. 가을로 접어든 이 참에 벽을 새로 쌓으면서 화목 아궁이를 연탄보일러 아궁이로 고치기로 했다.

옆집 노씨가 손재주가 많은 분이라 마을 이장과 이웃에 사는 박씨 세 사람이 와서 벽을 손대자 그만 지붕까지 와르르 무너졌다. 기둥과 서까래가 모두 썩었기 때문에 그대로 내려앉은 거였다. 애초에는 집수리가 간단할 줄 알았는데 일이 크게 벌어졌다. 마음 같아서는 싹 허물고 다시 짓고 싶었지만 내 땅이 아니기에 대폭 보수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공사 기간 내내 땅주인이 드나들었다).

뒷산에서 나뭇가지를 베다가 벽에다가 발을 엮고 거기다가 뒷산의 진흙을 개어 엮은 발에 발랐다. 완전히 재래식으로 흙집을 지은 셈이었다. "가을에는 부지깽이도 덤벙인다"는 바쁜 계절이라 이웃에서 도와주는 분들이 농사일 하면서 틈틈이 짓다가 보니 지난달 말에야 겨우 공사가 마무리되었다.

완성된 집은 그런대로 초간모옥으로 내 분수에 족했다. 일하시는 분들이 현판이라도 달라고 권유하기에 작명에 고심하다가 '박도글방'으로 낙착을 본 뒤, 내 손으로 쓰고는 원주에서 목각을 하는 김진성씨에게 부탁하여 새겨 걸었다.

공사 기간 중, 때마침 마을회관 스피커에서 마을 이장님이 농협에 연탄주문을 하라고 하여, 천장을 주문하였더니 곧 연탄업자가 트럭에 싣고 와 광에 가득히 쌓아주었다. 한 장에 270원으로 모두 27만원이었다. 이만하면 올겨울은 충분히 넘길 듯하다.

새 일과가 하나 늘다

▲ 내 글방의 겨울땔감으로 광에 쌓인 연탄.
ⓒ 박도
공사가 끝나자마자 나는 곧장 글방을 쓰고 있는데 여간 따뜻하지가 않다. 강추위를 대비하여 세 구멍 짜리 연탄아궁이이건만, 두 구멍만 피워도 방바닥이 절절 끓는다. 하루 사용량이 여섯 장으로 월 6만원이면 올겨울은 따뜻하게 지낼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요즘 나는 아침저녁으로 새 일과가 하나 늘었다. 연탄불 가는 일이다. 서울에 살면서도 지겹도록 해본 일이라 연탄불 가는 일이 아주 익숙하다. 오늘 아침 눈이 내린 탓인지 한동안 보이지 않던 멧새들이 마을로 내려와서 연탄재를 버리는 나에게 뭐라고 조잘거렸다.

"아저씨, 안녕하세요."
"안녕, 멧새들아. 춥지 않니?"
"네, 조금요. 아저씨, 연탄아궁이로 잘 바꾸셨어요."
"왜?"
"얼치기 나무꾼이 낫과 톱 들고 산에 오르내리는 것 보기에 안쓰러웠거든요. 이제는 기름도 때시고 좀 편히 사시지 그러세요."
"글쎄 말이다. 예로부터 '팔자 길들이기에 달렸다'는데 나는 평생 연탄집게나 들고 사는 팔자로 태어났나 보다."

"아저씨, 안빈낙도(安貧樂道)란 말 아시죠. 저희가 아저씨를 좋아하는 건 고급 아파트에서 골프채나 사냥총을 들고 다니는 게 아니라, 두메 흙집에서 연탄집게 들고 다니기 때문이에요. 아저씨를 비웃거나 업신여기는 세상 사람들의 말에 너무 괘념치 마시고 사세요.

대부분 그 사람들은 하늘의 뜻을 거역하고 살아요. 어떻게 하든 자연을 파괴하거나 그런 사람들에게 손뼉을 치고 야단이죠. 이 세상 삼라만상이 다 하늘의 것인데도, 제 것인 양 욕심 많게 가지고 살면서, 생존에 가장 기본인 집을 가지고 장난치면서 가난한 사람을 울리지요. 지금 온 나라가 말이 아니지요. 온통 산과 들을 파헤치고…. 그래도 부족해서 강줄기도 틀고 바다도 메운다고 하지요."

"아쭈, 너희들이 모르는 게 없구나."
"저희의 삶이 매우 급박해요. 욕심 많은 사람 때문에 날마다 삶의 터전을 잃고 있어요. 그런데 곧 새나 짐승만 살 수 없는 세상이 아니라, 사람도 살 수 없는 세상이 오는 걸 사람들은 까마득히 모르고 있어요."

"고맙다, 멧새야. 너희들이 일깨워줘서. 너희의 말을 귀담아들을 사람이 몇이나 될지 모르지만 내 그대로 전하마."
"고맙습니다, 아저씨."
"아무쪼록 추운 겨울 잘 지내라."
"네, 아저씨. 겨울 잘 지내세요."
"안녕, 멧새야."
"안녕, 아저씨!"


[사진] 흙집 짓는 과정

흙집 짓는 걸 보지 못한 분을 위해 그 과정을 사진으로 올립니다.

▲ 흙집을 짓고자 기둥을 세우고 용마루를 얹고 있다.
ⓒ 박도

▲ 벽에 나뭇가지로 발을 엮고 있다.
ⓒ 박도

▲ 뒷산의 진흙을 반죽하고 있다.
ⓒ 박도

▲ 반죽한 진흙을 벽에 붙이고 있다.
ⓒ 박도

▲ 1차 마른 벽에 두 벌 흙칠을 하고 있다.
ⓒ 박도

▲ 마침내 완성된 흙집, 형편이 조금 나아지면 지붕을 짚으로 이을 예정이다.
ⓒ 박도

덧붙이는 글 | 헌 집을 새집으로 고쳐주신 이웃 노진한 김인순씨 부부, 안흥4리 전연철 이장님, 박경원씨에게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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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은퇴 후 강원 산골에서 지내고 있다. 저서; 소설<허형식 장군><전쟁과 사랑> <용서>. 산문 <항일유적답사기><영웅 안중근>, <대한민국 대통령> 사진집<지울 수 없는 이미지><한국전쟁 Ⅱ><일제강점기><개화기와 대한제국><미군정3년사>, 어린이도서 <대한민국의 시작은 임시정부입니다><김구, 독립운동의 끝은 통일><청년 안중근>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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