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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복이
중복이
여자들 수다 메뉴 중에 가장 기본은 식구들 이야기입니다. 이 집 저 집 가릴 것 없이 새끼들에 관한 이야기를 신나게 떠들다 마지막엔 '개 새끼' 얘기로 넘어가게 되었지요. 양수리 사는 후배 집엔 진도개 잡종 두 마리가 있답니다.

8살 된 암놈 중복이 그리고 중복이 새끼 붓돌이. 중복이란 이름이 하도 희한해 작명 배경을 물었더니 중복이의 일생이 나오더군요. 중복이는 후배 앞집에 있는 카페에서 살던 놈이랍니다.

@BRI@은행 지점장으로 명퇴한 사람이 운영하던 카페였는데 IMF로 그만 문을 닫게 되었습니다. 서울 아파트로 이사를 가야 하기 때문에 중복이를 데리고 갈 수 없었던 부부. 옆집에 사는 후배한테 와서 중복이을 맡아 달라고 사정사정 했겠지요.

2년 전 키우던 진도개 순이가 동네 염소를 두 마리나 해치워 없는 살림에 염소 값으로 무려 수십 만원의 거금을 물어줬던 후배. 개한테 하도 질려 다시는 안 키우겠다고 작심을 했지만 옆집에서 늘 보던 중복이를 박절하게 거절할 수는 없더라나요.

주인이 떠난 후 중복이는 한 달 동안이나 주인 집 현관문 앞에 엎어져 꼼짝 않고 있었다고 합니다. 주인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란 영리한 놈이니 그 이별의 슬픔을 어찌 쉽게 삭일 수 있었겠습니까. 중복이 엄마는 평소에 영리한 중복이를 무진장 예뻐했답니다.

"중복이가 태어난 집의 주인이 얼마나 무지막지한지 중복이를 얻으러 그 집에 가보니 강아지 세 마리 이름이 초복이, 중복이, 말복이더라고요. 이름이 하도 흉칙해 데려오자마자 이쁜 이름으로 붙여줬더니 아 이 놈이 거절을 하는 거예요."

새로 지은 이름을 부르면 들은 척도 하지 않는 놈이 중복이라고 부르면 그제서야 시키는 대로 말을 들었답니다. 할 수 없이 그때부터 중복이로 굳혀졌는데, 이 놈이 얼마나 영리한 놈인지 혀를 내두를 사건이 터졌습니다.

"1년에 두 번씩 새끼를 낳으니 감당할 수가 있어야지요. 새끼 9마리를 낳은 놈에게 그랬지요. '중복아 이렇게 새끼를 많이 낳으면 너를 키우기가 너무 힘들다'고 했더니 그 다음 날 감쪽같이 새끼가 없어진 거예요. 아무리 찾아봐도 찾을 수 없기에 '중복아, 새끼 어쨌니'하며 애간장을 끓였더니 아, 다음날 어디서 새끼 9마리를 몽땅 물어다 놨더라고요."

똥을 싸도 꼭 한군데에 그것도 똥싼 자리를 흙으로 덮을 만큼 정갈한 중복이. 집 주변이 돌밭이라 뱀들이 우글거렸는데 중복이가 온 뒤론 집 근처에 얼씬거리는 뱀들이 신기하게 없어졌다고 합니다.

"중복이 놈이 얼마나 웃기는 놈인 줄 알아? 이 놈이 내가 집을 비울 때마다 다른 집에 가서 외식을 하고 와. 그런데 밥을 먹고는 밥그릇까지 갖고 오는 거야. 집 마당에 밥 그릇 수가 무려 8개나 뒹굴더라니까. 나중에 보니 건너 편 식당에서 밥을 뺏어 먹고는 그릇까지 집어 온 거지. 그 집 개들 대부분이 중복이 새끼거든. 그러니까 제 밥이지 뭘. 하하하!"

중복이 새끼 붓돌이
중복이 새끼 붓돌이
꼬리가 붓처럼 말아 올라가 붓돌이라 이름 지었다는 중복이 새끼는 수놈이랍니다. 모자간 사고는 안치냐 했더니 어림도 없다네요. 붓돌이가 행여 덤비려고 해도 으르렁거리며 물어뜯으려 해 붓돌이가 에미 곁에 얼씬도 못한답니다.

혹시라도 낯선 사람이 집 근처에 얼씬하면 어찌나 사납게 짖어대는지 현관문 잠그지 않아도 중복이만 있으면 걱정이 없다나요. 그렇게 사나움을 떠는 놈이 일년에 한두 번 찾아오는 친척이나 지인들에겐 '멍멍'은커녕 꼬리를 흔들고 트위스트를 추며 열렬하게 환영한다니 이쯤 되면 개가 아니라 개의 탈을 쓴 '사람' 수준 아닐까요?

덧붙이는 글 | 중복이와 붓돌이의 사진은 후배 딸 홈피에서 퍼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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