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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눈이 땅에서 올라오네"-산아래에서 정상으로 불어오는 바람을 타고 눈이 날리며 운치를 더했다.
ⓒ 오마이뉴스 이승욱
"어~이! 친구야. 눈이 하늘에서 내리는 게 아니라 땅에서 올라오네."

'큰 눈'(大雪)이 온다는 소식이 믿기지 않았습니다.

날 때부터 자란 대구란 땅이 해마다 운좋게 큰 눈은 피해가는 곳입니다. 그래서 큰 눈 위협에 시달리는 소린 그렇게 귓전에서만 맴돈 모양입니다.

17일 서울·경기를 비롯해 강원도에 대설주의보가 내렸다고 TV방송은 새벽부터 시끄러웠습니다. 하지만 전 가벼운 봇짐을 챙기면서 대꾸했습니다.

머리위에도 사뿐히…-팔공산 갓바위로 오르다 보면 관암사에서 '약수'를 마실 수 있다. 이 곳엔 돌로 된 불상이 우두커니 목을 축이는 이들을 위해 합장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승욱
"그래도 난 간다."

저의 오기도 그저 마음이 답답했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새벽 잠이 없으신 어머니가 보셨다면 "큰 눈 온다는데 뭔 산이냐"며 핀잔이 비껴가지 못했을 법 합니다.

물론 큰 눈이 내린다면 낭패를 보겠지요. 그래도 오늘은 가뿐히 오를 팔공산 갓바위를 선택했으니 큰 눈의 위협 속에서도 용기가 납니다.

어쩜 큰 눈 내리는 갓바위를 은근히 기대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네요.

다들 아시겠지만, 해발 900여m 정도로 도시에 인접한 팔공산 갓바위는 불교의 성지(聖地)이면서도 지친 도시인들의 마음을 추스리게 하는 영적인 곳입니다. 이곳을 내리는 눈과 함께 오른다면 또 다른 맛이 나지 않을까.

'다행히' 예상대로였습니다. 역시 큰 눈은 없었답니다.

눈은 내렸지만 싸라기눈이 전부였습니다. 그래도 큰 눈 피해를 걱정해야할 다른 지역에 비하면 운이 꽤 좋은 거겠지요. 눈 피해 걱정없이 첫 눈을 맛보는 기회가 됐으니깐요.

제대로 한 시간 정도 눈발이 날렸을까. 흩뿌려 놓은 밀가루 마냥 산이며 나무 위에 싸뿐히 내려앉은 눈. 그렇게 하늘도 생색만을 낼 모양입니다.

매서운 바람이 산 아래에서 정상을 향해 몰아칩니다. 그 바람을 타고 흩날리는 싸라기눈의 모양새가 운치를 더 합니다.

아슬아슬 매달린 마른 잎사귀에도…
ⓒ 오마이뉴스 이승욱
먼저 바닥에 내려앉은 낙엽 위에도…
ⓒ 오마이뉴스 이승욱
기도
ⓒ 오마이뉴스 이승욱
어느 중턱에서 만난 중년의 한 남성은 신기한 듯 친구에게 이렇게 말하더군요. "눈이 하늘이 아니라 땅에서 올라오네."

하지만 산에서 만난 눈은 채 두 시간도 지나지 않아 산을 내려올 때쯤 자취도 없이 사라졌답니다.

벌써 올해도 보름이 채 남지 않았지요. 서른 넷, 또 익숙치 않은 나이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그만큼 서른세 번의 해는 지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흔히 눈이 내릴 땐 반가움으로 맞지만, 사라질 땐 언제인지 모르고 사는 듯 합니다. 저의 지나간 인생도 이 눈처럼 또 사라지는 것일까. 그래서 더 슬픈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큰 눈이든 작은 눈이든 녹아 땅 속으로 사라질 땐 또 다른 존재의 양분으로 채워지듯, 제 지나온 인생도 그렇게 허무하지만은 않겠지요.

그래서 내 가슴 속에 내리는 이 눈이 작지만 좋은가 봅니다.

갓바위에서 내려다 본 풍경-여느 산이 그렇듯 비나 눈이 온 뒤 풍경은 나즈막한 갓바위도 예외는 아니다.
ⓒ 오마이뉴스 이승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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